[김은식의 야구란 무엇인가·25]콜드게임

경기종료 선언 '타이밍 싸움'

경인일보

발행일 2017-09-19 제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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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연 작전·속도전에 경기력 엉망
6이닝 던지고 노히트노런 행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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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식 야구작가
막 장마가 시작되던 2008년 6월 4일, 광주 무등경기장에서 홈팀 기아는 2회 말에 터진 장성호의 만루홈런에 힘입어 원정팀 한화를 상대로 6-1의 승기를 잡았다. 하지만 시작 전부터 부슬부슬 내리던 빗줄기가 3회 쯤부터 심상치 않게 굵어지기 시작했고, 그로부터 사상 초유의 희극이 야구장에서 펼쳐지기 시작했다.

한화 투수들은 와인드업 동작도 거의 없이 기아 타자들을 향해 밋밋한 배팅볼을 던지기 시작했고, 수비수들 역시 멋쩍은 몸짓으로 타구들을 피해 다니기 시작했다. 5회 초를 마치기 전에 빗줄기가 더 굵어져서 경기 종료가 선언되면 승패를 비롯한 모든 기록들도 백지화된다는 점을 노린 의도적인 지연작전이었다.

물론 기아 쪽 입장은 달랐다. 어떻게든 5회 초 수비까지 끝낸 뒤 경기종료가 선언되면 일단 그날의 경기는 정식경기로 인정받게 되고, 1승을 챙길 수 있기 때문에 5회 초까지는 공격과 수비 모두 최대한 빨리 끝내야만 했다.

4회 말, 당대 최고의 준족으로 꼽히던 기아의 이용규는 일부러 배트를 어설프게 휘둘러 평범한 땅볼을 굴려놓고 1루까지 느릿느릿 걸어 나감으로써 일부러 아웃 당했다.

그러자 한화 수비진은 이종범의 뜬공과 장성호의 투수땅볼을 일부러 놓쳐 살려줌으로써 응수했고, 다시 기아는 이재주와 김원섭이 공과 1미터쯤 떨어진 허공으로 세 번 헛스윙 하는 '자살삼진'으로 맞받아쳤다.

그 뒤로도 두 팀 선수들은 서로가 아닌, 시간과의 싸움을 계속했다. 한화 타자들은 거듭 연습스윙을 하고 물을 마시고 배트를 고르며 시간을 죽였고, 기아의 타자들은 혹시 실수로라도 공을 맞힐까봐 하늘로 땅으로 방망이를 휘두르며 공 세 개로 스스로를 죽였다.

하지만 한화의 간절한 소망과는 달리 7회 말까지 이어진 끝에서야 종료선언이 떨어졌고, 경기는 성립됐다. 최종점수는 그대로 6-1, 기아의 승리였다. 비록 역사적인 추태의 한 장면이긴 했지만, 야구에서 콜드게임이라는 규칙이 승부에 미치는 영향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장면이다.

야구는 9회(대회 규정에 따라서는 7회나 5회)까지 공격과 수비를 번갈아 하며 얻은 점수를 대조해 승패를 가르지만, 때로는 심판의 선언에 의해 경기가 끝날 수도 있다. 그런 경우를 콜드게임(called game), 즉 선언에 의해 종료된 게임이라고 한다. 아마추어 야구에서 가장 흔한 콜드게임은 점수차에 의한 것이다.

청소년이나 아마추어 야구에서는 이미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점수차가 벌어진 경우(대개 5회까지 10점, 7회까지 7점) 심판의 선언을 통해 경기를 중단한다. 승패와 기록 이전에 선수들에 대한 정신적, 육체적 보호를 먼저 생각해야 하는 아마추어 야구의 취지에 따라 무의미한 체력소모나 정신적 모욕감을 피하기 위한 것이다.

점수차에 의한 경기중단 규정이 없는 프로야구에서는 날씨에 의한 콜드게임이 가장 흔한데, 갑자기 비나 눈이 쏟아지거나 하는 천재지변으로 더 이상 경기를 진행할 수 없게 되었을 때 선언된다. 그리고 그런 경우에는 주심의 선언이 내려지기까지 경기가 진행된 정도에 따라 처분과 기록이 달라진다.

앞의 사례처럼 홈팀이 앞선 상황이라면 5회 초가 마무리된 시점이 경기의 취소와 성립을 가르는 기준이 된다. 즉, 5회 초가 끝나기 전에 주심의 선언에 의해 종료된 경기는 취소가 되지만 5회 초가 끝난 뒤에 종료된 경기는 그대로 정식경기가 된다.

반면 홈팀이 뒤진 상황이라면 5회 말의 종료가 그 기준이 되는데, 그것은 '양 팀에게 똑같은 공격기회가 보장된 상태에서만 점수의 비교를 통해 승패를 가른다'는 야구경기의 대전제 때문이다.

경기가 취소될 경우에는 승패는 물론이고 그날 작성된 선수들의 개인기록들도 모두 무효가 되며, 성립될 경우에는 반대로 승패와 개인기록 모두가 유효한 것으로 인정된다.

예를 들어 1993년 5월 13일 롯데 자이언츠와 쌍방울 레이더스의 부산경기는 비 때문에 6회에 종료되었는데, 그때까지 볼넷 1개만 내주며 무실점으로 버티고 있던 롯데의 투수 박동희에게는 생각지도 않았던 노히트노런의 영예가 주어지기도 했다.

/김은식 야구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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