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화 경기도립국악단장(오른쪽)이 올해 입단한 안경연 단원과 아쟁을 들고 다양한 국악의 길에 대해 이야기 꽃을 피우고 있다. 사진/임열수기자 pplys@kyeongin.com |
"국악을 뛰어넘어 재밌게 음악을 했어요. 사물놀이도 하고 현악기, 관악기 가리지 않고 배우고 연주하면서 국악이 얼마나 창조적이고 역동적이고 진취적이고 민주적인지를 깨달았어요."
경기도립국악단 최상화(60) 단장은 17살부터, 45년쯤 국악을 했다. 올해 국악단에 입단한 안경연(25) 단원은 중학생이 되면서 본격적으로 아쟁을 배우기 시작해 10년이 조금 넘었다. 두 사람은 아주 다른 이유로, 판이한 상황에서 국악을 시작했다. 그러나 오늘 만난 그들은 같은 바람을 품고 있었다.
'자연스러워지길'.
누군가에게 '나 국악해요'라고 말했을 때 '어머, 진짜?'라고 반문하며 놀란 눈으로 사람을 다시 보는 게 아니라 '아, 그렇구나'하며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최상화 단장은 돈이 없어서 국악을 시작했다. "우리 때는 다 비슷했을 것 같은데, 고등학교 등록금이 없어서 국악예술학교를 갔어요. 거기는 학비가 무료였거든요. 국악인이 없어 양성할 때였거든요."
부모 형제 일가 친척 중 국악을 하는 사람이 없었고 어디 가서 국악을 보고들은 적이 없지만, 진학을 해야 하니 국악을 하게 됐다. 국악으로 돈도 벌어야 했다.
"18살부터 대금으로 무용 반주를 해서 돈을 벌었어요. 그때는 굿판이나 무용판에서 일을 할 수 있었는데, 열심히 하면 넉넉히 벌 수 있었죠."
"모든 것이 음악의 재료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죠. 국악을 뛰어넘어 재밌게 음악을 했어요. 사물놀이도 하고 현악기, 관악기 가리지 않고 배우고 연주하면서 국악이 얼마나 창조적이고 역동적이고 진취적이고 민주적인지 깨달았어요. 사물놀이만 봐도 연주자에 따라 자기방식대로 변형해서 연주하잖아요. 즉흥성과 다이내믹이 엄청나죠."
안경연 단원은 초등학교 5학년 때 국악인의 길을 가리라 마음먹었다. 학교 과제를 하느라 국악공연을 보러 갔는데 아쟁 소리가 집에 와 숙제를 끝내고 나서도, 며칠이 지나고서도 귀에 맴돌았다. 예술중학교를 거쳐 최 단장이 다닌 국립전통예술고등학교에 입학했다. 입학부터 쉽지 않았다.
"제가 입학하던 해에 사립에서 공립으로 전환되며 경쟁률이 훨씬 높아졌어요." 대학 진학도 개인 레슨을 받으며 무던히 애썼다. 도립극단 입단은 더 어려웠다. 국악단원 신규채용도 별로 없지만 아쟁 연주자를 뽑는 경우가 최근 몇 년 동안 없던 터였다.
지원자 숫자도 많았지만 스승 연배의 실력자들이 오디션에 몰렸다. "제가 국악을 하겠다고 했을 때 고모가 말리셨었어요. 고모도 국악을 하셨거든요. 어려운 길이라는 것을 알고 시작했는데, 저는 정말 운이 좋은 케이스에요." 주변 또래 중에 국악을 배우거나 좋아하는 친구가 없었다.
음악을 하는 친구들이 있었지만 다들 양악을 했다. 외로웠을 법도 한데 안 단원은 그게 좋았다고 한다. "다들 하는 게 아니라서 국악이 좋아 보였고, 국악기가 내는 소리는 들으면 쉽게 사라지지 않고 오래 머무르더라고요. 도구 없이 맨손으로 연주하는 것도 좋고요. 저는 아직은 국악을 하는 게 힘든 줄 모르겠어요."
최 단장은 군 제대 후 서울시립관현악단에 대금주자로 입단해서 10년을 있었다. 전북도립국악관현악단 상임지휘자로, 국립국악관현악단 예술감독으로 활동했다. 그러는 동안 우리 국악계의 상황은 급변했다.
"국악 전체적으로 보면 전공자가 100배 정도는 많아진 것 같아요. 80년대 들어 대학이 늘어나면서 관련 학과도 많아진거죠. 한동안 수요에 비해 공급이 많았어요. 그래서 예술가끼리의 시장이 형성됐죠."
최 단장은 이때문에 국악이 대중 속으로 녹아들지 못한 채 '전통의 박제화'라는 운명에 처했다며 안타까워했다.
"저와 같은 시기 국악을 배운 사람들은 악감을 바탕으로 국악을 대했어요. 대금을 했지만 민요도 알고 장구도 쳤죠. 예술가들이었어요. 그런데 지금 배우는 학생들은 인간문화재 종목에 종속돼서 도제식으로 배웁니다. 학교가 문화재 양성기관이 된거예요. 아쟁으로 시작하면 아쟁으로만 끝나죠. 우리 국악은 유독 예술계에서는 독특하게 창조성을 북돋지 않아요."
안 단원은 최 단장의 이런 지적에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그러나 국악의 미래에 거는 기대가 크다고 했다. 경기도립단원이기 때문에 더 그렇다고 했다.
"10년 넘게 국악을 배웠지만 돌아보니 입단하고 몇 달 사이에 훨씬 더 공부를 많이 하게 됐어요. 국악 작품을 오케스트레이션이 가능하도록 악보와 악기를 개량하는 '치세지음'프로젝트 덕분에 우리 음악을 더 넓은 시야로 보게 됐어요. 우리 악기가 가진 한계를 벗어나 모든 음악을 연주하게 되면 더 많은 사람들이 국악을 익숙하게 여기고 즐겨 듣게 되겠죠?"
국악인으로서 안 단원의 바람은 사람들이 국악에 이질감을 느끼지 않는 것이다. "아무래도 '나 바이올린 전공했어'라고 말할 때와 '나 아쟁 전공했어'라고 말할 때의 반응이 다르니까요. 국악이나 양악이나 같은 음악으로 편안하게 생각하게 되면 좋겠어요."
최 단장도 같은 마음이다.
"제가 골프를 치면 국악 하는 사람도 골프를 저렇게 잘 치냐고 말해요. 이런 말을 듣게 된 것은 국악인에게도 책임이 있죠. 보통 예술계가 하는 노력들을 국악은 하지 않았어요. 많이 뒤처져 있기때문에 열심히 따라잡아야 합니다. 이에 더해 우리가 해야 하는 것은 국악방송과 국립국악원을 없애는 것이에요. 국악이라는 말을 없애고 모든 방송에서 국악이 나와야 해요. 국립국악원이 아니라 국립음악원이면 됩니다. 그래야 우리 음악에 숨겨진 예술성을 온전히 발견할 수 있어요."
최 단장은 요즘 악기 개량에 정성을 쏟고 있다. 해금과 아쟁보다 한 옥타브씩 낮은 소리를 내는 저해금과 저아쟁을 제작해 국악관현악에서 부족한 베이스를 보강한다는 계획이다.
아쟁을 연주하는 안 단원은 더 바빠질 예정이다. 그러나 기꺼운 마음으로 새 아쟁을 기다린다. 이를 통해 더 재미있게 음악을 할 수 있게 되리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최 단장은 어깨가 무겁지만 마음은 들떠있다.
"음악인으로서 무엇이든 연주할 수 있게 되는 것, 단원 개개인이 가진 예술성, 창조성을 최대한 발현하도록 조건을 갖추는 것이 도립극단이 지향하는 바입니다. 사실 이건 모든 음악인, 예술인들에게 아주 자연스러운 길이죠. 도립극단은 변하고 있어요. 그래서 기대가 되고, 희망을 품을 수 있죠."
/민정주기자 zuk@kyeongin.com
사진/임열수기자 pplys@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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