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칼럼]사교육 망상

홍정표

발행일 2017-09-20 제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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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중 여덟 3수 해서라도 대학 가는 '이상한 나라'
청소년들 다양한 진로 탐색·준비 환경 조성돼야
금수저 독식·흙수저 대물림 극복 교육부가 할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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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정표 논설실장
#A(57)는 마흔 가까이 늦둥이 딸을 얻었다. 6살 때 유치원과 예능학원에 보냈다. 바이올린 선생님은 딸이 소질 있다고 했다.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사교육은 끊고 바이올린만 가르쳤다. 멘델스존을 연주하는 딸이 대견하고 기뻤다. 자라면서 걱정이 커졌다. 레슨비가 만만치 않았다. 아내가 피자 가게를 열었다. 둘이 벌어도 늘 버거웠다. 그렇게 12년이 지났다. 예술고 3학년 딸은 국내 유명대학에 가지 못하면 유학을 가겠다고 했다. 날벼락이다. 딸과 같은 생각이라는 아내와 크게 다퉜다. A는 "딸 키우느라 생활이 쪼들리고 삶이 오그라들었다"며 "더는 해 줄 마음도 능력도 없다"고 했다. 정년을 앞둔 경찰 얘기다.

#영업직 회사원 B(57)는 중학생 딸과 아들을 미국으로 보냈다. 둘 다 유학을 졸랐다. 국내에서 사교육을 시켜야 한다면 유학을 보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밤낮으로 일했지만 대학에 가면서 경제적 압박이 더 심해졌다. 한계선을 넘었다. 두 자녀는 휴학계를 내고 귀국했다. 딸은 알바를 했고, 아들은 군에 갔다. 딸은 복학해 학위를 받았다. 국내로 왔지만 취업하지 못했다. 아들은 복학을 포기하고 국내에 남았다. 대학 중퇴 학력으로 전공과는 무관한 일을 한다. B는 "후회는 없다. 그래도 앞날이 걱정되는 건 어쩔 수 없다"고 했다.

#회사원 C(48)는 딸(고2)을 실업계에 보냈다. 사교육비가 부담이었고, 대학을 안 가도 되는 세상이라 믿었다. 어느 날 딸이 대학에 가고 싶다며 인문계로 전학하고 싶다고 했다. 편입하면 내신 불이익을 감수해야 한다. 정시를 준비하려면 낯선 과목에 매달려야 한다. 딸은 정보고에 다니면서 대입을 준비하고 있다. C는 "실업계 학생은 대학이 더 절실해진다"면서 "딸도 주위 환경을 이겨내지 못한 것 같다"고 했다.

교육부가 '2021 수능개편안'을 1년 미뤘다. 김상곤 장관은 "충분한 소통과 공론화를 통해 합리적 대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취임 전 공언(公言)에서 한 발짝 물러선 것이다. 외고·자사고 등 특목고 폐지 구상도 저항에 막혔다. 대신 일반고와 동시에 학생들을 뽑기로 방향을 틀었다. 특목고를 무력화하겠다는 미련은 여전하다.

수능을 바꾸고 특목고에 재갈을 물려도 사교육은 달라질 게 없다. '강남 도사'는 새 틀에 맞는 옷으로 갈아입고 호객할 것이다. 맞춤형 사교육을 위한 사교육 컨설팅까지 생겨나는 판이다. 수십 년 전 무덤에 들어간 고입 재수생이 환생할지 모른다.

고려대 허태균 교수는 '공부 못하는 자식을 대학 보내려 사교육 시키면 안 된다'고 한다. 그 돈 모아 자녀들 창업자금으로 주라는 거다. '적어도 2억 원은 모을 수 있고, 아이가 나중에 기사자격증이라도 따면 중장비를 사줄 수 있다. 2대 정도는 거뜬하다. 하나는 직접 끌고, 한대를 임대하면 대기업 직원 부럽지 않다. 사교육비 쏟아부은 자식이 백수가 되면 줄 돈도 없고, 그 자식은 결국 남의 자식 중장비 기사가 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입시 철이다. 수시모집이 한창이고, 수학능력고사가 코 앞이다. 응시생이 처음 60만 명 아래로 떨어졌다는데 경쟁은 더 치열하다. 전국 사찰과 교회가 합격을 기원하고 수능 고사장이 생중계된다. 고교생 열 중 여덟이 3수를 해서라도 대학에 가고야 마는 '이상한 나라'다.

장삼이사(張三李四)가 사교육에 매달리고 실업계가 대입 전선에 뛰어들면 입시 문제는 풀어낼 도리가 없다. 청소년들이 다양한 진로를 탐색하고 준비하는 환경과 분위기가 조성돼야 한다. 그래야 사교육 경쟁, 금수저 독식, 흙수저 대물림을 극복할 수 있다. 그게 정부가, 교육부가 할 일이다. 제도를 바꿔 사교육을 없애고 계층 사다리를 복원한다는 발상은 망상(妄想)이다. 역대 정부가 다 그랬다. 정부가 다시 그 길을 가겠다고 한다.

/홍정표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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