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일보 창간 특집, 다문화]이주언어 강사 몽골인 히시게씨…육아·직장 일 '행복찾는 워킹맘'

'다문화 정착' 앞장서고 있는 두 이주민 여성의 하루

신지영 기자

발행일 2017-09-29 제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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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들 잠든 오전 6시부터 일과 시작
아침 준비하고 1시간30분 거리 출근
어둑해진 후에야 퇴근길 열차에 올라
"어디에서 왔든, 편안한 사회 됐으면"

 

거리와 학교, 식당과 공장 그리고 옆집까지. 생활 어디에서나 만날 수 있는 이주민들은 이제 친숙한 일상이 됐다. 이처럼 '다문화'가 우리 사회로 자연스레 스며들기까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노력한 이들이 있다.

이제는 고국보다 한국이 익숙하다고 말하는 이들은 새롭게 한국을 찾는 이주민들에겐 '길잡이'로, 한국인들에겐 다른 나라의 문화를 알리는 '스승'으로, 그리고 무엇보다 누군가의 '어머니'이자 '아내'로서 사회 곳곳에서 활약을 펼치고 있다.

한국 땅에서 '다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해 그 누구보다 바쁜 하루를 살아가는 두 이주민 여성을 만나봤다.


어슴푸레 날이 밝아오는 지난 20일 오전 6시. 몽골인 이주여성인 이슬기(37·몽골명 히시게)씨의 하루가 시작됐다. 이주언어 강사로 일하는 이 씨는 육아와 직업활동을 병행하는 '워킹맘'이다. 성남의 한 초등학교로 9시까지 출근해야 하는 이 씨는 매일 오전 6시 30분이면 집을 나선다.

남편과 중학교 1학년인 아들·초등학교 3학년인 딸이 아직 잠든 시간, 이 씨의 아침은 가족들의 식사를 준비하느라 분주하다.

이 날은 오믈릿과 채소와 소시지를 볶은 음식이 식탁에 준비됐다. 아이들이 후식으로 먹을 요거트까지 챙긴 뒤에야 이씨는 출근복장으로 갈아 입었다. "오래 전부터 사회생활을 해왔기 때문에 아이들이나 저나 이런 상황에 익숙해요."

아이들의 방문에는 공부, 샤워, 운동, 밥 먹는 시간까지 표시된 시간표가 붙어 있다. 자녀의 일과를 일일이 챙기지 못하는 이씨는 시간표에 아이들이 해야 할 일을 표시해뒀다.

이주언어 강사, 주한몽골이주여성회 감사, 다문화상담교육센터 이사까지 이씨의 직함은 다양하다. "엄마 잘 자녀오세요." 졸린 눈을 비비며 배웅하는 딸을 안아주고, 이씨는 집 밖으로 나섰다.

이씨는 군포역에서 일산역까지 꼬박 1시간 30분을 이동해 초등학교에 도착했다. 이 곳에서 한국 학생에게 국제문화, 다문화 학생에겐 한국어 초급을 가르치는 게 이씨의 일이다.

수업은 40분씩 하루 다섯 차례다. 이씨가 이주언어 강사를 시작한 것은 지난 2010년. 경인교육대학에서 900시간 짜리 몽골어 강사 연수를 받은 뒤에 교육청을 통해 일자리를 찾았다.

꼬박 8년 째 쉬지 않고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기억에 남는 학생도 많다.

"다른 나라에서 태어나 한국에 들어오는 중도입국 학생들은 한국에서 태어난 다문화 학생보다 적응하기가 힘들어요. 제가 가르친 중국 학생 한 명은 처음 만났을 때, 의자에 자기 머리를 부딪치거나 손만 잡으면 이상한 춤을 추는 등 이상한 행동을 했습니다. 한국어는 쓸 줄도 몰랐고요. 그 학생을 붙잡고 '사랑한다'고 말해주고, 복도에서 뛰지 말라고 손가락을 걸고 약속하고 하루에 한 번씩 한국어로 그림책을 읽어주고. 그렇게 일주일이 지나니 아이가 똑바로 앉아서 공부를 시작하는 거예요. 그 때 알았습니다. 다문화 학생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관심'이란 것을." 이 씨의 말이다.

특히 다문화 학생들은 선생님이 자신과 같은 사람, 이주민이라는 사실에 보다 친근감을 느낀다고 한다.

이씨는 "한국 학생들도 다문화에 대해 전혀 거리낌이 없이 받아들입니다. 아이들 스스로가 다문화에 대해 왜 알아야 하는지 알고 있죠. 제가 한국에 처음 온 2004년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일입니다. 한국이 빠르게 글로벌 사회가 되고 있다고 느껴요"라고 말했다.

오후 1시. 수업을 모두 마친 이씨는 서울시청에서 열리는 다문화취업박람회로 향했다. 한국에 온 지 3년 된 몽골인 친구에게 직업을 소개 시켜주려 마련한 자리다. 몽골인 친구와 이씨 모두 몽골 현지에서 공무원 생활을 했던 경력이 있지만, 본국의 경력을 살리는 일이 녹록지 않다.

이씨는 "요즘 이주민들은 의료관광을 겨냥한 의료코디네이터나 관광통번역사로 많이 일합니다. 하지만 여전히 지속적인 일자리는 부족하죠. 이주민에게 가장 힘든 것이 바로 안정적인 직장을 구하는 것입니다"라고 설명했다.

체류 외국인이 200만 명에 달할 정도로 한국은 다문화 사회로 접어 들었지만, 이들에 대한 지원은 각종 행사를 개최하거나 직접적인 비용을 지원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언어강사를 하고 있어도 항상 불안합니다. 한국은 워낙 변화가 급속하게 진행되다 보니 정보가 부족한 이주민들이 따라가기가 힘들어요. 이것 때문에 나라 별로 네트워크를 만드는 일에 집착합니다. 네트워크를 통해 일자리 정보를 공유하고 있죠."

취업박람회를 둘러본 이씨의 발걸음은 서울글로벌센터로 향했다. 23일 서울에서 열리는 외국인 축제에 이씨가 속한 몽골여성회가 참여하기 때문이다. 센터 직원과 행사 부스·프로그램 등을 논의한 이씨는 날이 어둑해진 오후 7시가 돼서야 집으로 돌아가는 열차를 탔다.

이씨는 "몽골은 남녀가 평등하다는 인식이 있지만, 한국은 아직 남성 중심 문화가 있다 보니 처음에는 남편과 조금 갈등도 있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아이들을 돌보는 것부터 집안일까지 도맡아 하는 저의 가장 든든한 후원자가 됐죠"라고 말하며 웃었다.

이씨는 모든 일과를 마친 후, 가족 모두가 함께 하는 운동 시간이 가장 행복하다고 말한다. 매일 2시간씩 아이들은 자전거를 타고, 부모들은 걸으며 가족간에 마음을 나눈다. 이날 하루 이씨가 가장 많이 사용한 단어는 '스스로'라는 말이었다. 이씨는 이주민도 한국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주민 자신이)다문화 세계에 있다고 생각하지 말고 한국 사회에 있다고 생각해야 해요. 다문화라는 말이 나온 지 10여 년 만에 이주민을 어색하게 생각하지 않는 풍토가 생겼습니다. 한국이 이정도 발전한 만큼, 이주민들도 '스스로' 한국에 기여할 방법을 찾을 때 입니다."

그는 "저는 진정한 다문화 사회란 다양성을 인정하는 사회라고 생각해요. 자기 나라의 전통 의상을 입고 거리를 활보해도 어색하지 않는 사회. 자기 나라의 음식을 먹고 살아도 불편함이 없는 사회. 그렇게 생각하면 한국 사회가 나아가야 할 길이 멉니다. 언젠가 어느 나라에서 왔든 편안하게 살아갈 수 있는 한국사회가 되길 소망합니다"라고 덧붙였다.

/신지영기자 sjy@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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