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일보 창간 특집, 다문화]수원이주민센터 대표 킨 메이타씨… 봉사의 삶 수년 '일상이 된 분주함'

'다문화 정착' 앞장서고 있는 두 이주민 여성의 하루

배재흥 기자

발행일 2017-09-29 제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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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 수업 점검하면서 점심도 챙겨

마라톤 회의 끝마치고 영어 강의까지

"다 내려놓고 쉬고 싶단 생각들기도

경험 살려 책 집필하는게 최종 목표"

 

거리와 학교, 식당과 공장 그리고 옆집까지. 생활 어디에서나 만날 수 있는 이주민들은 이제 친숙한 일상이 됐다. 이처럼 '다문화'가 우리 사회로 자연스레 스며들기까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노력한 이들이 있다.

이제는 고국보다 한국이 익숙하다고 말하는 이들은 새롭게 한국을 찾는 이주민들에겐 '길잡이'로, 한국인들에겐 다른 나라의 문화를 알리는 '스승'으로, 그리고 무엇보다 누군가의 '어머니'이자 '아내'로서 사회 곳곳에서 활약을 펼치고 있다.

한국 땅에서 '다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해 그 누구보다 바쁜 하루를 살아가는 두 이주민 여성을 만나봤다.

"모두 맥주 좋아하시죠? '맥주 한 병 주세요', '이 맥주는 얼마예요?' 자, 큰 소리로 따라 해보세요."

지난 20일 오전, 킨 메이타씨가 대표로 있는 수원시 매산동의 '수원이주민센터'를 찾았다. 센터가 위치한 건물에 들어서자마자 한국어·중국어·캄보디아어 등이 뒤섞인 활기 넘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한국어를 배우기 위해 갓난아기를 데리고 센터를 찾은 캄보디아 결혼이민자 여성, 중국인 청소년 등 인종과 문화는 서로 다르지만 '한국어'라는 같은 목적을 가진 이들의 열기가 센터 안을 가득 메웠다.

센터는 지난 2000년 문을 열고 현재까지 한국에 체류하는 외국인들을 상대로 한국어교육을 진행하는 등 외국인들의 성공적인 한국 정착을 돕고 있는 시민단체다. 킨 대표는 지난 2015년 센터 대표에 선출돼 3년째 센터를 운영 중이다.



센터 안의 풍경은 학구열이 뜨거운 학교를 방불케 했다. 총 4곳의 강의실에서 한국어 강의가 한창이었고, 공간이 모자라 복도 한쪽에 커튼을 친 간이 강의실에서도 강의가 진행됐다. 외국인 학생들은 한국어 선생님의 선창을 서툴지만 큰 목소리로 따라 발음했다.

부엌에서는 자원활동가들이 공부하는 이들에게 제공할 점심 준비로 분주했다. 킨 대표는 한국어 강의 진행 상황을 점검하는 동시에 점심을 챙기는 등 누구보다 분주한 모습이었지만, 별거 아니라는 듯 기자를 향해 웃어 보였다.

킨 대표는 "센터 회원 대부분이 외국인 노동자이기 때문에 이들이 쉬는 주말에는 센터에 사람이 바글바글하다"며 "센터 활동가들에게 이 정도의 분주함은 일상이다"라고 말했다.

킨 대표는 지난 1998년 현재 한국인 배우자를 만나 결혼하면서 한국에 정착했다. 한국생활만 20년 가까이 되는 베테랑(?) 한국인인 셈이다. 그가 처음부터 외국인들을 위한 '봉사활동'에 나선 것은 아니었다. 수원이주민센터 대표를 맡게 된 배경을 묻자 그는 '고마움' 때문이었다고 답했다.

그는 "2년 전쯤 내 고향인 미얀마에서 큰 홍수가 났다. 이때 센터가 모금활동 등을 하며 고향을 많이 도와줬다. 이제 내가 도움을 줄 차례라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점심을 먹은 뒤 얼마 지나지 않아 킨 대표는 외출 준비를 서둘렀다. 오후 1시 30분부터 수원시청에서 진행되는 수원시 다문화 유관기관 단체 연석회의에 참석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날 논의는 곧 있을 '외국인 주민 한국어 말하기 대회' 행사 내용과 계획 등에 관한 것이었다.

버스를 타고 시청으로 이동하는 동안 킨 대표는 다음 달 15일 센터가 주최하는 '바자회' 홍보도 빼놓지 않았다.

그는 "센터의 운영은 전적으로 300여명의 회원들이 내는 회비와 후원으로 이뤄지고 있다"며 "기관에서 운영하는 단체들보다 재정적으로는 열악할지라도 종교, 국적, 인종을 가리지 않고 가장 독립적인 단체다"고 자부심을 드러냈다.

그는 연석회의가 끝나면 곧바로 '수원시민 300인과 함께하는 지속가능발전 토크쇼'에 참석해 '다문화 사회 실현'을 설파했다. 연달아 있는 회의가 모두 끝나면 오후 6시다. 물론, 킨 대표가 이날 해야 할 일이 회의 종료와 함께 끝나는 건 아니다.

두 아이의 어머니로서 아이들을 챙겨야 하고, 봉사가 아닌 돈을 벌기 위해 영어 교습소에서 강의도 해야 한다. 킨 대표는 "회의가 끝나면 영어 교습소로 가서 오후 10시까지 강의를 해야 한다. 집에 가면 밀린 집안일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하늘이 점차 어두워지면서 모든 회의가 끝났다. 교습소 원장으로서 킨 대표의 하루는 지금부터 시작이었다.

킨 대표는 "불교의 가르침과 같이 모든 걸 내려놓고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쉬면서 다문화와 관련한 경험을 살려 책을 집필하는 게 최종 꿈"이라며 "하지만, 아직 나와 같은 다문화 가족과 외국인들을 위해 할 일이 남아있어 지금은 쉴 수 없다"고 말했다.

또다시 버스를 타고 세류동에 위치한 영어 교습소에 도착했다. 녹초가 될 법도 한데 킨 대표는 말수가 조금 줄어들었을 뿐, 힘든 내색을 전혀 하지 않았다. '슈퍼우먼' 같다는 말에 킨 대표는 웃으며 '철의 나비(Steel Butterfly)'를 외쳤다.

킨 대표는 "미얀마에서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흔들림 없이 추진해 나가는 사람을 '철의 나비'라고 표현한다"며 "한국에 사는 외국인들을 위해 내가 하고 있는 일, 할 수 있는 일을 '철의 나비'같이 해 나가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배재흥기자 jhb@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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