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면의 장르문학 산책·93]매트릭스, 시오니즘, 그리고 금강경

경인일보

발행일 2017-11-15 제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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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면 문학평론가·수원문화재단 시민문화팀장
인생은 흔히 꿈에 비유된다. 세계와 존재의 실상을 환영이자 물거품으로 보는 '금강경'도 그러하고, '장자'의 호접지몽(胡蝶之夢) 고사도 그러하며, 월창 김대현(?~1870)의 '술몽쇄언'(1884)도 그러하다. 앤디&래리 워쇼스키 형제(혹은 남매)의 '매트릭스'(1999) 또한 그러하다.

인공지능이 지배하는 미래사회. 평범한 회사원이자 해커인 네오는 자신이 살고 있는 현실에 대해 항상 데카르트적 회의를 품고 살아간다. 이내 그는 자신을 포함한 수많은 인간들이 매트릭스라는 거대한 컴퓨터 프로그램이 만든 환각 속에서 살고 있으며, 기계들을 위한 생체 건전지로 사용되고 있다는 충격적인 진실과 마주한다.

인간이 기계의 동력원으로 사육, 이용되고 있다는 발상은 다분히 만화적이지만 '매트릭스'가 제기하는 철학적인 물음들과 스토리와 경이로운 비주얼은 영화사의 걸작으로 기록되기에 충분하다. 존재하는 모든 것이 환영이었다니.

영화에서는 인간들의 구원자로 묘사되는 네오와 기계의 지배에서 벗어나 있는 인간들의 마지막 거주지인 시온마저 인공지능에 의해 계획된 플랜이었음이 밝혀진다. 그러나 영화의 반전보다 더 놀라운 것은 우리의 삶과 현실이다. 그렇게 치열하게 땀 흘리며 살아왔건만 인생에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는 공(emptiness)뿐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보자. 그토록 치열했던 과거는 어디에 있는가. 이 글을 읽기 시작했던 방금 전의 순간들은 어디에 있는가. 과거는 존재하지 않고 미래는 오지 않았으며 현재는 속절없이 순식간에 지나가버린다.

영화 '매트릭스' 속의 매트릭스만 환영이 아니라 어쩌면 우리의 현실과 삶 그 자체가 매트릭스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이 영화는 불교적인가. 아마 우연의 일치였을 것이다.

영화는 철저하게 성서적인 관습을 따르고 있다. 인공지능이 지배하는 묵시록적 세계가 우선 그러하다.

또 네오를 진실의 세계로 인도하는 모피어스는 세례 요한에, 오라클은 선지자 이사야에, 인간 반란군의 배신자인 사이퍼는 유다에, 트리니티는 예수를 사랑했던 여인 마리아에 근사(近似)하며, 심지어 트리니티는 '삼위일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렇다고 이 영화가 성서적인 것만도 아니다.

윌리엄 깁슨의 '코드명 J'(원제는 단편소설 'Johnny Mnemonic', 1981)와 오시이 마모루의 '공각기동대'(1995) 같은 사이버펑크들, 오우삼의 '영웅본색'(1986) 등의 홍콩 느와르 영화를 모두 포괄하고 통섭한 B급대중문화의 집약체요, 패러디이기 때문이다.

'매트릭스'는 B급 사이버 펑크 속에서 피어난 우연한 걸작이며, 인공지능 시대를 넘어 마음혁명과 정신적 각성의 중요성을 다시 생각하게 하는 역대급 영화다.

/조성면 문학평론가·수원문화재단 시민문화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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