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연인]시마(詩魔)

권성훈

발행일 2017-09-25 제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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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넓고 넓은 속이 유달리 으스름하고

한낱 반딧불처럼 밝았다 꺼졌다 하여

성급한 그의 모양을 찾아내기 어렵다//

펴 든 책 도로 덮고 들은 붓 던져두고

말없이 홀로 앉아 그 한낮을 다 보내고

이 밤도 그를 끌리어 곤한 잠을 잊는다//

기쁘나 슬프거나 가장 나를 따르노니

이생의 영과 욕과 모든 것을 다 버려도

오로지 그 하나만은 어이할 수 없고나

이병기(1891~19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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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성훈 (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인간에게 상상력은 무한한 에너지다. 상상 속에서는 이루지 못하는 것이 없으며, 불가능한 것도 가능하게 만들어 준다. 그렇지만 불가해 한, 상상이 구체화될수록 상상은 생각에서만 그치지 않고 현실화되기도 한다. 그 세계는 성급하게 찾는다고 해서 찾아지는 것도 아니며, 그 속은 너무 "넓고 넓은 속이 유달리 으스름"하기도 하고, "한낱 반딧불처럼 밝았다 꺼졌다"하기도 한다.

이것은 시인에게 창작의 과정이며 상상을 언어로 현현시키는 고뇌인 것으로써 흔히들 '영감'이라고 부른다. 시인에게 "말없이 홀로 앉아 그 한낮을 다 보내고" 있는 밤의 시간은 휴식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잠을 건너가는 '노동의 새벽'이 된다. 마찬가지로 '기쁘나 슬프거나 이생의 영과 욕과 모든 것을 다 버려도' "그 하나만은" 어찌할 수 없는 것. 당신이 오늘도 놓치지 않고 잡고 있는 자신이, 바로 한편의 시다.

/권성훈 (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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