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마이 파더스 아이스'

김환기

발행일 2017-10-02 제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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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잃은 아빠의 슬픔을 노래한 에릭 클랩튼
이시대 아버지들 자식 잘못으로 비난 받는 삶
책임져야 할 법적·도덕적 한계 어디까지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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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환기 사회부장
아파트에서 추락해 숨진 네 살 배기 아들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을 담은 '기타의 신' 에릭 클랩튼의 노래 '천국의 눈물(Tears In Heaven)'과 '내 아버지의 눈 (My Father's Eyes)' 을 들어보셨습니까.

아들을 잃은 아버지의 슬픔을 노래한 두 곡은 26년 전 세상의 모든 아버지들의 심금을 울렸다.

이 노래는 지난 1991년 미국 뉴욕 맨해튼의 고층 아파트에서 추락해 숨진 4살짜리 아들을 기리는 내용으로 그래미상을 받았고 영화 '러시'의 주제가로 사용됐다.

"천국에서 너를 만난다면 이 아빠를 기억할 수 있겠니? 내가 널 천국에서 본다면 넌 변함없이 그 모습 그대로일까?" '천국의 눈물(Tears In Heaven)'의 가사 일부다.

이어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던 에릭 클랩튼이 당시의 심정을 고스란히 담아 만든 곡이 바로 '마이 파더스 아이스(My Father's Eyes)'다.

천국에 있는 아들이 자신을 그리워하는 아버지의 눈을 보는 모습을 상상하며 노래하고 있다.

세월이 약일까. 그러던 에릭 클랩튼이 어느 날 "아들 잃은 슬픔을 노래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이유는 "상실의 감정을 더 느끼지 않아 노래를 부르는 데 어려움이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절절하게, 하늘을 향해 절규하듯 아들을 그리며 단절된 천륜의 아픔을 외쳤던 그가 '아들을 잃었을 때 창자를 끊는 심정으로 부르던 곡을 행복할 때도 불러야 한다는 사실에 갈등을 느낀다'고 했다.

에릭 클랩튼은 "그 곡들은 이제 휴식이 필요하다. 나중에 훨씬 더 초연한 입장에서 그 곡들을 다시 소개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무리 아픈 과거나 혹독한 괴로움도 시간이 지나면 잊혀 지고 희석되는 게 인생일까. 사람들은 그렇다고들 한다.

필자는 맞벌이로 어린 두 아들을 키울 때 어느 여성학자를 만나 물어봤다. 어떻게 키워야 하냐고. 머리가 눈처럼 하얀 백발의 할머니 학자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함께하는 시간이 짧더라고 눈을 맞추고 진심으로 안아주고 대해 주라고.

아이는 모는대로 가는 자동차가 아니다. 아이는 스스로 자란다. 가는 길이, 가진 생각이 부모와 다를 수 있다. 그러니 부모는 곁에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환경을 만들어주면 된다는 것이다.

노심초사 키웠던 아이들이 이제는 성장했다. 군 입대와 집 떠나 대학을 다니는 두 아이에게 감사함은 물론이다.

지난 주말에는 군 제대를 두 달 남겨놓은 아들이 면회를 오란다. 피곤한 몸 휴식이 필요하지만 말년 병장에게 아이 엄마랑 시장을 본 뒤 면회를 다녀왔다.

필자의 군 생활을 되돌아 볼때 두 달 뒤면 장남도 언제 그랬느냐는 식으로 귀가해 군 생활을 잊고 늦잠에 빠질 것이다.

가끔은 자식에 대한 부모 마음도 휴식이 필요한 듯하다.

최근 남경필 경기도지사가 아들의 범죄행위로 도마에 올랐다. 남 지사는 범죄행위는 응당한 처벌을 받아야 하지만 아들을 안아주고 싶다고 했다.

수많은 정치인을 비롯한 이 시대 아버지들이 자식들의 잘못으로 비난을 받고 지적의 대상이 됐다. 그래도 이들은 아버지의 역할과 도리를 저버리지 않았다.

이 시대 아버지로 살아간다는 것. 아버지라는 이름으로 책임져야 할 법적, 도덕적 한계가 어디까지일까.

/김환기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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