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호근 칼럼]돈으로 살 수 없는 것

전호근

발행일 2017-10-10 제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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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믹스 따로 팔 수는 있지만
탄 커피 돈 받을 수 없다는 할머니
돈으로 못 살것 없는 지금의 세상
진심어린 친절 감동이기에
값어치로 환산할 수 없는 환대
거래할 수 없는 가치 지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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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내가 한창 골목 사진을 찍으며 돌아다니던 시절 이야기다. 2009년 어느 가을날에 나는 카메라를 챙긴 다음 사진을 좋아하는 친구와 함께 서울의 후암동 골목길을 찾았다.

용산고등학교를 지나 남산으로 통하는 소월길에 이르기까지 꼬불꼬불 이어지는 후암동 골목길은 갈래가 꽤나 복잡해서 다 돌아보는 데 반나절 가까이 걸린다. 그날은 빛이 좋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여러 차례 골목길을 오르내리면서 마음에 드는 컷을 많이 건졌다.

부지런히 돌아다니던 우리는 커피를 마시고 싶었지만 골목길에는 커피숍이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 소월길 못미처 용산초등학교 언저리에서 작은 구멍가게를 찾았다. 우리는 전에 다른 곳에서 그랬던 것처럼 믹스커피를 타달라고 해서 마실 요량으로 구멍가게로 들어갔다.

안에는 여든이 훨씬 넘어 보이는 할머니가 혼자 가게를 지키고 있었다. 믹스커피를 타 주실 수 있겠느냐고 여쭙자 할머니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주전자를 꺼내 불에 올렸다.

가게는 아주 작았다. 둘러보니 진열된 물건들도 유행 지난 과자가 대부분이었고 양도 많지 않았다. 가게 입구에 설치된 평상에는 커다란 호박이 하나 덩그러니 놓여 있었고 가게로 연결된 좁다란 길은 콘크리트로 포장되어 있었지만 울퉁불퉁 파손된 곳이 많았다.

이윽고 주전자 안의 물이 끓기 시작했고, 잠시 후 우리는 할머니가 타주신 커피를 마실 수 있었다. 많이 걸었던 터라 그런지 커피가 유난히 맛있었다. 천천히 커피를 다 마시고 난 뒤 우리는 할머니에게 얼마를 드려야할지 여쭈었다.

그런데 할머니는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면서 돈을 받지 않겠다고 하셨다. 놀란 우리는 그러시면 안 된다고 말하며 돈을 꺼내 드리려고 했으나 할머니는 손사래를 치면서 돈을 절대 받을 수 없으니 그냥 가라고 하셨다.

할머니 말씀은 커피믹스를 따로 팔 수는 있어도 손님에게 커피를 타주고서 돈을 받을 수는 없다고 하신다. 그리고는 "우리는 그렇게 살아오지 않았다" 고 하셨다.

우리는 할 수 없이 건강하시라고 인사드리고 가게를 그냥 나올 수밖에 없었다. 이후 나는 커피를 마실 때면 종종 까닭 모를 감동과 함께 그 할머니의 말씀을 떠올렸다. 커피를 따로 팔 수는 있지만 손님에게 커피를 타주면서 돈을 받을 수 없다는 그 할머니의 말씀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돈으로 못 살 건 아무 것도 없어 보이는 지금 세상에서는 사람과 사람의 만남 또한 대개가 거래의 다른 이름이기 십상이다. 거래에는 손님과 주인이라는 고유한 관계는 사라지고 소비자와 판매자라는 무미건조한 관계만 남는다. 소비자는 누가 만들었는지 모르는 물건을 사고 판매자 또한 물건을 사는 사람이 누구인지 모르고 관심도 없다. 물건을 만드는 사람도 물건을 사용할 사람이 누구인지 생각할 필요 없이 그저 가격에 맞춰 상품을 만들기만 하면 된다.

애덤 스미스가 말한 것처럼 우리가 맛있는 빵을 원한다면 빵집 주인의 자비심에 기대할 것이 아니라 그의 이기심에 호소하는 것이 더 나은 방법인 세상이다. 이기심을 충족시키는 방법은 무엇이든 교환할 수 있는 돈을 지불하는 것이다. 이것이 이미 오래 전에 뿌리 내린 자유 시장의 거래 원칙이다. 물건만이 아니다. 돈의 힘은 더없이 편리하고 강력해서 돈을 지불할 준비가 되어있는 한 우리는 어디서나 한껏 친절한 응대를 살 수 있다.

하지만 그날 나는 커피를 타주는 할머니의 환대를 돈으로 살 수 없었다. 진심어린 친절이기에 거래할 수 없는 가치를 지닌 것이기 때문이다. 마르크스의 말처럼 사랑은 사랑으로만 교환할 수 있고 우정은 우정으로만 교환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비로소 까닭 모를 감동이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환대를 받았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얼마 전 일이 있어 후암동에 들렀다가 할머니 가게가 있던 곳을 찾았지만 이미 그곳에는 아파트가 들어섰고 가게가 있던 골목은 흔적조차 보이지 않았다. 집으로 가려고 그곳을 떠나 지하철역에 이를 때까지 내 귀에는 계속 할머니의 목소리가 맴돌았다.

/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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