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광장]고향을 잃어버린 사람들

채효정

발행일 2017-10-11 제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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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이 사라진곳엔 아파트가
다랭이 논은 모두 풀숲에 묵히고
전망 좋은 곳엔 펜션·카페 들어서
옛날의 이웃공동체도 없어지고
장소의 의미도 변해 버렸으니
흔적 지워진 곳에서 고아된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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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효정 정치학자·오늘의 교육 편집위원
이번 추석에도 그랬다. 언제부터인가 고향에 갈 때마다 고향을 잃어버린 느낌이 든다. 마을도 사라지고, 옛날부터 같이 살던 이웃공동체도 없어지고, 장소의 의미도 모두 변해 버렸으니, 기억과 흔적이 지워진 곳에서 점점 고아가 되는 것만 같다.

고향집 앞 골목길이 2차선 차로로 확장되었을 때는 1980년대였다. 동네 집들이 길 만드는 터를 내느라 허물어지게 되었다. 다행히 우리 집은 살아남았다. 그 때 '살아남은' 집들은 행운이라 여겼고, 떠나게 된 이웃들은 위로를 받았다. 친근한 이웃들과 함께 살던 곳을 떠난다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이웃공동체의 상호부조 체계가 작동하는 곳에서는 무언가 아쉽고 위급할 때 손 내밀어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사람들의 관계에서 떨어져 나온다는 것만큼 위험하고 불안한 일은 없다. 갑자기 밥이 떨어져도, 연탄불이 꺼져도, 옷을 빌려 입거나 돈을 꾸어야 할 때도, 옆집 문을 두드려야 했으니까. 보상금이 얼마든, 새로 정착하게 될 동네가 어디든, 처음부터 다시 관계와 신용을 쌓아야 하는 시간이 지나야 문을 두드릴 수 있는 이웃을 얻게 될 것이니 새로운 곳으로의 이주는 설레는 일이 아니라 살처럼 익숙한 고장을 잃고 낯선 사람들 틈을 헤매야 하는 실향의 고통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90년대가 지나고 한 이십년이나 흘렀나, 그랬을 때인데 이번에는 소방도로를 낸다고 오래된 동네 한 토막이 허물어지게 되었다. 그 때도 고향집은 살아남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행과 불행이 바뀌었다. 떠나는 사람들이 축하를 받고 남은 사람들이 위로를 받았다. 부동산 시장도 그닥 형성되어 있지 않은 소도시에서 낡은 집을 짐처럼 지고 있던 사람들은 보상금을 받고 집을 처분하게 된 것을 행운이라 생각하고 좋아하였다. "관광객들이 많이 와서 길은 좁고 차도 막히고 자꾸 개발을 해야 한다고들 하니 곧 성님도 좋은 일이 있겠지." 동기간처럼 친하게 지냈던 이웃사촌이 그런 말을 하고 새 아파트로 떠났을 때 어머니는 민심이 얄궂게 변했다고 하셨다.

그 동안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아파트 단지가 들어선 곳에는 대형 마트와 편의시설들이 따라 들어왔다. 돈만 있으면 밥 한 끼 정도야 24시간 어디서든 해결할 수 있고, 친구와 이웃이 없어도 돈이 모든 것을 해결해주는 세상이 되었다. 하지만 금융자본이 강화되는 곳에서 우정이나 신뢰 같은 사회적 자본은 약화된다는 것을 너무 쉽게 생각했다. 이제 사람들은 옆집 문을 두드리는 대신 관공서나 대출회사의 전화번호를 누른다. 작은 항구를 낀 어촌 마을이 전국적으로 유명한 관광지가 된 덕분으로 연휴만 되면 모든 도로가 막히는 낯설어진 고향에서, 20분이면 돌아올 길을 2시간이 넘게 차에 갇혀 있으면서 나는 생각했다. 얼마나 많은 집들이 허물어져야 이 손님들을 위한 새 도로를 낼 수 있을까. 더 많은 도로가 필요하다지만, 저 자동차들의 행렬은 언제까지 계속 이어질 수 있을까. 무엇보다도 저 행렬에 우리의 미래를 의탁해도 되는 것일까.

바닷가 비탈진 구릉마다 알뜰히도 농사짓던 다랭이 논은 모두 풀숲에 묵히고, 전망이 좋다 하는 밭이며 논자리에는 펜션이나 카페가 들어섰다. 관광산업 여가산업이 주요 소득원이 되면서 자급의 경제는 무너지고 금융과 투자의 경제가 지배하게 되었다. 돈도 사람도 넘쳐나지만 모두 흘러가는 것일 뿐이다. 유동성이 정주성(定住性)을 해체하는 것은 90년대 이후 가속화된 세계화 시대의 특징이다. 산업화 시대와 다른 것은 이주(移住)가 아니라 이산(離散)이라는 점이다. 파편화된 삶의 양식은 소비적으로 재구성되었지만, 돌아갈 곳도 머무를 곳도 없는 유민의 땅, 떠돌이의 땅은 불안하고 위험하며 황폐해진다. 살 수 없는 곳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 교육은 계속 '떠나는 사람'이 되라고 가르친다. 언제든 떠날 수 있고 어디에서든 살 수 있는 글로벌 인재가 되라고 한다. 그러나 그런 '세계 시민'으로 살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의 상류사회 엘리트에 불과하며 대다수 사람들이 처하게 된 현실은 주거 불안과 불안정 노동에 시달리는 글로벌 난민화였음을 이미 목도하지 않았는가.

/채효정 정치학자·오늘의 교육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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