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리더십 파산

윤인수

발행일 2017-10-16 제13면
글자크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링크
  • 메일보내기
  • 인쇄
  • 페이스북
  • 트위터
  • 구글플러스
  • 메일전송
영광의 세기 연 두 정치적 세력간 반목
위기 속에 놓인 국가 위해 가하는 형국
영화 '남한산성' 삼배구고 서글픈 공감


2017101501000580300028361
윤인수 편집국 국차장(총괄부국장)
영화 남한산성이 화제다. 대륙의 신흥 패권(覇權)인 청나라의 침공으로 산성에 갇힌 조선의 내분과 통치자의 무기력, 백성들의 참담한 고통이 몇 세기를 격한 현재 대한민국에서도 재생되고 있다는 '서글픈 공감' 때문이다. 최명길의 주화론이나 김상헌의 척화론은 주장 자체로는 모두 의미가 있다. 백성을 살리려면 청과 화친해야 한다는 최명길의 실리적 주장은 현실을 고려한 최상의 방책이었다. 반면 청과의 전면전을 주장한 김상헌의 척화론은 중화를 중심으로 한 조선 사대부의 세계관을 지탱해 줄 최소한의 명분이었다. 주화론이나 척화론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지향하는 가치의 차이였다. 문제는 신하들의 이견에 휩쓸려 스스로 리더십을 파산시킨 인조다. 그는 결단하지 못했다. 그 결과 군사도 잃고 백성을 사지에 몰아넣었으며 언 땅에 삼배구고를 바치는 치욕을 감수했다. 리더십 파산이 초래한 재앙이다.

병자호란 당시의 조선을 오늘의 대한민국에 곧이곧대로 대입할 수는 없다. 경제대국의 면모는 그때와 다르고, 지정학적 약소국이라는 숙명은 당시와 차이가 없다. 다만 리더십 파산 현상만은 그때와 같거나 오히려 악화됐다는 걱정을 지울 수 없다.

성군과 혼군의 리더십에 의해 백성의 삶이 달라지고 세대의 명암이 엇갈리는 왕조시대의 리더십과 달리, 민주주의 리더십은 대의정치를 구성하는 정당과 정치인에 의해 발현된다. 국민은 대통령과 여야 정당의 리더십을 감시하고 심판하니 예전처럼 혼군이 절대권력을 수명이 다할 때까지 독점할 수 없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몰락이 이를 증명한다. 문제는 우리시대에 대의민주주의의 장점을 찾을 수 있는지 확신할 수 없는 점이다. 보수세력과 진보세력의 무한 정쟁은 조선시대의 당쟁보다 훨씬 집요하고 고질적이다. 조정 가능한 실리와 명분의 충돌이 아니라 이념적 도그마의 적대적 대립의 경지에 이른 탓에 대승적, 통합적 리더십의 발휘가 불가능한 지경이다.

보수정당인 자유한국당은 여태껏 박근혜 탄핵이 상징하는 산업화 시대의 적폐와 결별하지 못한 채 해묵은 보수 이데올로기에 갇혀있다. 그들은 산업화 세력의 공만 강조할뿐 과는 외면해왔다. 산업화 시대가 유보했거나 탄압했던 인권과 민주주의를 회복하고 누적된 적폐를 걷어내는데 인색했다. 박근혜의 제왕적 통치행태를 방관하다 공멸했음에도 그들의 관념은 여전히 산업화 시대의 영광에 머물러있다. 국가안보라는 중요한 가치가 자유한국당의 안보 과잉 행태로 희화화되는 실정이다. 자유한국당이 유난히 안보를 강조하면 대중은 선거가 임박했음을 짐작한다. 그들에게 진보진영은 친북·종북 집단에 다름 없다.

더불어민주당도 다르지 않다. 대한민국에 민주주의를 만개시킨 세력으로서의 자부심으로 그들만의 울타리를 견고하게 세웠다. 울타리 경계 밖의 정당·정치인은 적폐세력이고, 적폐세력을 지지하는 세력은 우매한 '꼰대'들이다. 지금 누리는 풍요를 산업화 시대의 결과로 인정하는데 인색하고, 민주화 시절에 체화시킨 피아, 적과 동지의 구분법으로 세상을 본다. 실리보다는 명분과 가치를 앞세워 자본과 산업을 천대하고, 적과 동맹 사이에서 좌충우돌이다.

반세기 넘게 상대의 가치 있는 리더십을 가차없이 매몰해 온 시간의 누적이 국가 운명에 위해를 가하는 형국이다. 중국의 사드 몽니와 미국의 통상압력, 일본의 역사침략의 한 가운데서 북한핵 위기를 대면하고 있는 지금, 이를 극복할 대의민주주의 리더십은 파산 상태다. 산업화 시대를 거쳐 경제적 풍요를 누리고, 민주화 시대를 통해 민주주의를 꽃피우며 누려 온 대한민국 70여 년의 번영이, 그 영광의 세기를 연 두 주역의 적대적 반목으로 위기에 봉착했으니 비극적이다. 대한민국이 흥망성쇠를 순환하는 역사의 수레바퀴 어디쯤을 돌고 있는지, 정치하는 사람들의 깊은 성찰을 요구한다.

/윤인수 편집국 국차장(총괄부국장)

윤인수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