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식의 야구란 무엇인가·28]패전처리 투수

신인급 유망주 '실전경험' 기회로

경인일보

발행일 2017-10-17 제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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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전투수 보호용 마무리 보직
깔끔한 승부·제구력도 갖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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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식 야구작가
2004년에 영화 '슈퍼스타 감사용'이 개봉된 이후 널리 알려진 단어다.

'슈퍼스타 감사용'은 원래 패전처리 전문투수인 주인공 감사용이 당대 최고의 슈퍼스타 박철순(당시 OB)과 맞서 아무도 기대하거나 원하거나 응원하지도 않는 1승의 희망을 버리지 않고 싸우는 한 경기를 묘사한 영화다.

하지만 프로원년 꼴찌팀 삼미에서 뛰었던 실제 인물 감사용은 '내내 패배만 당했던 투수'이긴 했지만 '패전처리 투수'라고 보기는 어려웠다.

패전처리를 통해 보호해야 할 필승조가 따로 없었던 프로 원년의 삼미 같은 팀에는 당연히 패전처리 투수란 존재할 수도, 그럴 필요도 없었기 때문이다.

이미 많은 점수를 내준, 이길 희망이 없는 경기에 등판해 남은 이닝을 마무리하는 역할을 맡는 투수를 패전처리 투수라고 부른다.

프로야구에만 존재하는 보직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그것은 프로야구가 가지고 있는 두 가지 특징 때문이다.

우선, 아마추어 무대와 달리 프로야구에는 어지간히 점수차가 벌어졌다고 해도 콜드게임을 선언하고 경기를 중단하는 제도가 없다.

또한 프로야구는 시즌 중 매주 여섯 경기씩 치러지기 때문에 프로야구팀은 오늘 져도 내일, 모레 계속 경기를 치러야만 한다.

따라서 아무리 많은 점수차가 나더라도 경기는 9회 말까지 이어지기 때문에 투수들의 투구수는 계속 불어나게 되고, 그렇게 무리를 감수한 투수들을 이어진 경기에 계속 투입하게 되면 팀이 연패에 빠지는 것은 물론 투수들의 선수생명도 단축시키는 악순환에 빠질 수 있다.

따라서 프로야구팀의 감독들은 이미 이길 희망을 접은 경기에 내세워 뒤처리를 맡김으로써 다음 경기에 투입해야 하는 주력투수들의 어깨를 아끼는 방법을 쓸 수밖에 없다.

말하자면 팀의 승리를 위해 꼭 필요한 투수들의 휴식시간을 벌어주는 임무를 띠고, 이미 포기한 경기의 무의미한 시간들을 메워내는 역할을 맡는 투수가 패전처리 투수이다.

하지만 패전처리 투수가 그 말이 주는 어감만큼 비참하고 서글픈 역할은 아니다. 패전처리 투수 역시 우리나라의 10개 구단이 각각 26명씩 밖에 보유하지 못하는 1군 엔트리 명단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패전처리로서나마 프로야구 1군 무대에 선다는 것은 그가 대한민국에서 가장 야구를 잘 하는 260여 명 안에는 들어간다는 증거다.

그의 자리나마 목표로 삼고 땀 흘리는 2군 선수들, 신고선수들, 혹은 해마다 드래프트에서 지명을 받지 못하고 내년을 기약하고 있는 수많은 재수생들보다는 훨씬 높고 영광스러운 자리에 서 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또한 패전처리 투수에게도 반드시 요구되는 덕목은 있다.

점수를 더 내주느냐 마느냐는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더라도, 과감하고 깔끔하게 승부함으로써 최대한 빨리 경기를 마무리해 동료 야수들 역시 최대한 빨리 쉴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는 점이다.

따라서 구위나 코너워크는 둘째 치더라도 의미 없는 4사구와 폭투를 남발하지 않을 정도의 제구력은 반드시 필요한 조건이며, 불필요한 공명심 따위에 휘둘려 타자와의 승부를 복잡하게 만들지 않을 정도의 상황인식과 헌신성도 갖추어야 한다.

더구나 1군 엔트리 진입에 대한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는 최근에는 '패전처리 전담투수'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가뜩이나 부족한 엔트리의 한 자리를 그렇게 허비하기보다는, 신인급 투수들이 부담 없이 실전경험을 쌓을 기회로 활용하는 것이 훨씬 낫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최근에 말하는 패전처리 투수란, 이미 '경쟁에서 뒤처져 선수로서의 가치를 대부분 상실한 퇴물'이 아니라, '아직 필승조에 합류할 만큼은 아니지만 미래를 위해 실전경험을 쌓고 있는 유망주'를 의미하는 것에 더 가깝다.

/김은식 야구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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