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구의 한국재벌사·30]삼호방직-5 도약, 그리고 위기

재계 2위 금융자본, 4·19로 환수조치

경인일보

발행일 2017-10-17 제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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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호방직 광고
1966년 당시 삼호방직 광고 /'방협20년지' 수록

은행간 '상호출자' 줄줄이 행운
동화통신 설립, 업계 리더 성장
군사정부가 부정축재자로 지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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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구 경인일보 부설 한국재벌연구소 소장·수원대 명예교수
정재호가 제일은행을 소유할 당시 주목해야 할 것이 있었으니, 은행 상호 간 주식을 보유한 '상호출자'였다.

은행들끼리 서로 지분을 소유한 상호주(相互株)는 신탁은행 64.4%, 저축은행 56.5%, 조흥은행 41.0%, 상업은행 35.4%, 상호은행 24.8%, 조선은행 20.3%, 식산은행 14.1%에 달했으며, 특히 환금은행은 자본금 전액이 상호주였다.

일제하의 한국인 지분을 이어받은 민간소유주는 조흥은행 53.7%, 상업은행 35.6% 등으로, 이를 제외하고는 모든 은행들의 지분 중 상호출자가 아닌 경우는 전체 주식의 10%도 안됐다.

따라서 시중은행 하나를 불하받을 경우 상호출자로 연결된 여타 은행들까지 줄줄이 낚을 수 있는 행운이 따랐다. 삼성그룹의 이병철 회장은 이런 매카니즘을 이용해 최대의 금융자본으로 변신했던 것이다.

한편 언론에도 뜻이 있었던 정재호는 1954년 12월에 동화통신(주)를 설립하고 1956년 9월 1일에 창간호를 발행해 보도활동을 시작했다. 1956년 4월 미국 AP통신과 수신계약을 맺은 것을 비롯해서 프랑스의 AFP(1956년 9월), 영국 로이터(1960년 6월) 등 세계 유수의 통신사와도 계약을 맺었다.

1957년 2월부터는 영문경제판(英文經濟版)을, 1959년 2월에는 월간화보 '동화(同和)그라프'를 각각 발간했다. 동화통신은 이후 합동통신, 동양통신과 함께 국내 통신업계의 리더기업으로 부상했다.

정재호는 또한 제일화재, 삼양(三洋)흥업, 유창(裕昌)물산, 원양수산 등을 잇따라 설립해서 1950년대말에는 모기업인 삼호방직을 비롯해 제일은행, 대전방직, 삼호무역, 조선방직, 동화통신, 삼호공업, 경북메리야스염색가공, 삼양흥업, 제일화재보험, 원양수산, 대한가스 등을 거느리게 됐다.

이로써 삼성그룹에 이에 재계순위 2위의 금융자본으로 부상할 수 있었다.

이처럼 대부분의 재벌들이 6·25전쟁으로 인해 파산당하는 비운을 겪은 것과 달리, 삼호는 전쟁 때문에 최대 재벌로 도약하는 행운을 얻었다.

삼호그룹은 결국 한국전쟁이 만들어준 재벌이었던 것이다. 삼호가 짧은 기간 내에 재벌로 성장할 수 있었던 이면에는 당시 급부상한 재벌집단처럼 정재호 또한 집권당인 자유당과 유착한 것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해방과 더불어 혜성처럼 등장해 1950년대 말 삼성그룹과 함께 국내최정상의 기업집단으로 성장했던 삼호그룹은 1960년에 접어들면서 위기에 직면했다. 정재호가 1960년 4·19혁명과 함께 부정축재자로 지목된 것이다. 당시 그가 신고한 정치자금 제공액은 85억환(현재 가치 약 860억여원)으로 부정축재자들 중 1위를 기록했다.

이 금액은 삼호그룹이 은행권으로부터 대출받은 융자총액과 거의 비슷할 정도로 엄청났다. 당시 정치자금은 정치권으로부터의 비호 내지 정부 제공의 각종 경제적 이권 수수에 대한 반대급부이기도 했다. 삼호는 국내 최정상의 기업집단을 형성한 만큼 이승만 정권과의 유착이 상당했음을 시사한다.

군사정부는 1961년 6월 14일 부정축재에 대한 행정상, 형사상 특별처리를 목적으로 한 '부정축재처리법'을 공포한다.

휴전직후인 1953년 7월 1일부터 쿠데타 직전인 1961년 5월 15일까지의 부정행위를 대상으로 했다. 국가 공직 또는 정당의 지위나 권력을 이용하거나 거짓 혹은 부정한 방법으로 재산을 축적한 부정축재자를 부정공무원, 부정이득자, 학원부정축재자로 구분하였다.

8월 2일 부정축재처리위원회는 이병철 240억환, 정재호 100억환 등 총 831억2천400만환 등 기업주 58명의 부정축재 환수액을 통고했다. 8월 13일에 위원회는 최종으로 부정축재 기업인 27명에게 환수액 477억1천만환으로 처벌대상과 환수금액을 대폭 줄여주었다. 당시 정재호는 36억환을 환수 당했다.

/이한구 경인일보 부설 한국재벌연구소 소장·수원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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