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연인]마치……처럼

권성훈

발행일 2017-10-23 제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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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주저앉은 그 자리에

새끼고양이가 잠들어 있다는 거


물든다는 거


얼룩이라는 거

빨래엔 피존도 소용이 없다는 거


흐릿해도 살짝, 피라는 거

곧 죽어도 빨간 수성 사인펜 뚜껑이 열려 있었다는 거

김민정(19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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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성훈 (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마치 단풍이 날 것의 하늘 끝자락을 물고 있다. 붉은 입술로 가을이 열리는 것은 너무 많은 것들을 허공에 쏟았기 때문이 아닐까. 내가 누군가에게 그랬던 충혈된 말처럼 그렇게 다녀간 흔적은 마음에 얼룩이 되고 만다. 생채기에 남은 자국은 '새끼고양이'의 발톱같이 자라나 '흐릿해도 살짝' 내 몸을 번지게 한다. 그러한가, 어느 날 가슴을 쓰다 만 지워지지 않는 '빨간 수성 사인펜 벗겨진 뚜껑'같이 힘없는 가을에 열리는 것이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물든다는 거야' 말로 '수동적 슬픔'처럼 알 수 없는, 우리는 이제 곧 떨어질 만큼의 부피만 하나씩 나눠 가진 피로한 가을 하늘을 한 없이 높게 매달게 될 것이다.

/권성훈 (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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