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식의 야구란 무엇인가·29]테이블세터와 클린업트리오

최적의 타순 짜기, 이유있는 조합

경인일보

발행일 2017-10-24 제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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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번 번트 능력 겸비 좌타자 많아
강타자 4번보다 3번에 배치 경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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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식 야구작가
꼭 그러라는 법은 없지만, 그리고 가끔 통계적인 근거를 대며 출루율이 높은 선수부터 순서대로 타선에 늘어세우는 것이 최선이라는 식의 도전을 받기도 하지만, 어쨌거나 오늘날에도 '타순 짜기'의 기본은 테이블세터(tablesetter)와 클린업트리오(cleanup trio)의 배치로 인식되고 있다.

테이블세터란 말 그대로 '상을 차리는', 즉 누상에 나가서 투수와 수비진을 흔들어대다가 홈으로 들어와 득점을 올리는 것을 임무로 하는 선수들을 말한다. 그리고 클린업트리오란 '차려진 밥상을 싹 쓸어 담아' 타점을 올리는 역할을 맡는 선수들을 가리킨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1, 2번 혹은 9번 타순에 타율이 높지 않더라도 출루율이 높고 발이 빠르며 작전 수행과 주루플레이에 능한 선수들을 배치하게 되며, 3, 4, 5번에는 안타를 때려 누상의 주자들을 불러들일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선수들을 배치한다.

하지만 좀 더 세밀하게 보면 같은 테이블세터라고 해도 1번과 2번의 역할이 조금씩 다르고, 같은 클린업트리오라고 해도 3, 4, 5번의 역할이 또 조금씩 다르다.

1번 타자는 무조건 많이 출루해서 도루를 하거나, 혹은 상대 배터리와 수비진에 도루할 수 있다는 위기감을 줌으로써 수비망에 균열을 만드는 역할을 해야 하기 때문에 선구안과 빠른 발, 주루센스를 최고의 덕목으로 삼게 된다.

반면 2번 타자는 먼저 출루한 1번 타자를 진루시키는 임무를 맡게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보내기 번트나 치고 달리기 같은 작전을 차질 없이 수행할 수 있는 세밀한 기술과 침착함을 가진 선수들이 선호된다.

특히 2번 타자가 왼손잡이일 경우에는 포수의 시야로부터 1루 주자의 움직임을 가릴 수 있어 1루 주자의 행동반경을 더 넓게 확보해줄 뿐만 아니라 번트를 대거나 치고 달리기 같은 작전을 시도할 때 1루까지 더 빨리 도착할 수 있어 병살의 위험을 덜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따라서 2번 타순은 '타격이 정확하고 발이 빠르며 번트에도 능한 왼손 타자'의 자리로 인식되는 경향이 강하다.

3, 4, 5번 타자는 그렇게 득점권으로 진출한 1번 혹은 2번 타자를 홈으로 불러들이는 역할을 맡게 된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먼저 나서게 되는 3번 타자가 우선 점수를 내면서 찬스를 뒤로 잇는 역할을 요구받는 반면 4번과 5번은 1, 2, 3번 타자가 만든 성과들을 확장하면서 기회를 마무리하는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그래서 3번에는 타율이 높은 타자를, 4번과 5번에는 홈런을 비롯한 장타를 때리는 데 능한 파괴력 있는 타자를 배치하는 경향이 많다(최근에는 강타자가 조금이라도 더 많이 타석에 나설 수 있게 하는 것이 유리하다는 점이 고려되면서, 보다 강한 타자를 3번에 배치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테이블세터와 클린업트리오를 지나면 6, 7, 8번 타선이 흔히 말하는 '하위타선'이 된다. 그들은 공격보다는 수비 측면에서 더 많은 기여를 해야 하는 선수들로 배치되는 경우가 많은데, 포수, 유격수, 2루수, 중견수, 혹은 지명타자제도가 없는 미국 내셔널리그의 경우에는 투수가 주로 이 타순에 배치된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강팀과 약팀의 차이가 드러나는 대목은 오히려 중심타선보다도 하위타선인 경우가 많다. 약팀 중에도 내로라할 만한 중심타선을 가진 경우는 그리 드물지 않지만, 생산적인 하위타선을 가지고도 약팀이 되는 경우는 흔치 않다는 것이다.

물론 그것은 하위타선에서도 기회를 만들거나 타점을 만들어낼 수 있는 팀은 공격의 리듬을 늦추지 않고 끊임없이 몰아치면서 상대팀을 지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며, 또한 그런 팀은 선수들의 수준이 전반적으로 상향평준화되어 선수들 간의 격차가 크지 않다는 점이 반증되기 때문이기도 하다.

/김은식 야구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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