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광장]역사보존과 도시개발

양윤재

발행일 2017-11-01 제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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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만 살다가는 곳이 아니라
후손들도 살아가야 하기에
삶의 흔적 새겨진 곳이 역사
미래도시에서의 삶과 모습
그려보는 지혜 절실하게 요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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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윤재 대우재단 이사
우리는 살다보면 매우 난처한 질문을 받는 경우가 가끔 생긴다. 어릴 때는 엄마가 좋은지 아빠가 좋은지를 물어봐서 당황스럽고, 좀 더 커서는 사랑과 우정 중에 하나를 선택받기를 강요당하기도 하며, 술자리에서는 진보와 보수라는 정치적 입장을 분명히 하라고 다그치는 경우도 있다. 문재인정부가 들어서고 나서는 원자력에너지냐 대체에너지냐로 나라가 시끄럽고 각종 사안마다 이거 아니면 저거라야 한다는 흑백논리와 이분법적 편 가르기가 언제부터인지는 몰라도 이 나라의 모든 의사결정방식을 지배하고 있는 듯하다.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에서도 비슷한 일들이 심심치 않게 벌어진다. 시장이나 관료들은 물론 전문가들에 따라 도시의 흔적이나 역사유적 그리고 중요한 역사적 건물을 보존해야 한다는 입장과 개발과 변화를 통해 도시를 발전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팽팽하게 맞서서 개발이 지연되기도 하고 행정이 마비되어버리기도 한다. 이런 일은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나라마다 도시마다 항상 겪는 일이고보면 이런 논쟁은 도시민들이 가지고 있는 역사에 대한 가치관의 차이이기도 하고 도시의 변화와 발전에 대한 인식의 차이일 수도 있다.

역사적 가치가 있는 건물이나 도시의 흔적들을 보존하는 일은 누가 뭐라 해도 매우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역사보존이 개인의 이해나 공공의 필요에 따라 상충되는 경우에는 그 해법이 상당히 까다로워진다. 80년대 초 일본의 역사도시 교토의 철도역 복합개발을 두고 보존과 개발이라는 가치가 충돌한 예는 유명하다. 10년이라는 지루한 공방 끝에 1993년 드디어 개발로 결정되었고, 그 과정에서 역사보존과 개발에 대한 다양한 연구와 논의가 이루어진 것도 건축과 도시계획분야로서는 커다란 의미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세계적으로 역사적 유적이나 주요건물과 함께 도시경관에 대한 규제는 오래된 역사도시의 경우는 매우 엄격하게 시행되고 있다. 영국 런던의 경우는 도시경관을 보호하기 위해 신축되는 건물의 높이를 세인트폴 대성당의 돔을 가로막지 않도록 규제하고 있으며, 파리의 경우 건물 하나하나마다 외관, 구조, 용도 등에 대한 조사가 철저하게 되어있어 개인의 재산이라도 함부로 손을 댈 수 없도록 강력하게 규제하고 있다. 미국의 워싱턴 디시도 워싱턴 기념탑과 국회의사당을 가로막지 않도록 하는 건물의 높이규제가 행해지고 있다. 우리나라도 서울을 비롯한 여러 도시들이 문화재보호법에 근거하여 건축규제를 하고 있지만 문화재관련 전문가들의 과도한 집착과 제도의 경직된 운용으로 현실성이 결여되거나 시행의 일관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많이 받고 있다.

도시에서 역사경관을 보호하고 역사유적이나 역사적 건물의 보존이 시작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신은 죽었다'라고 주장한 독일의 철학자 니체의 파시즘에 영향을 받은 무쏠리니와 히틀러는 일차세계대전 이후 유럽의 혼란기를 틈타 전체주의를 앞세워 정권을 장악한 후 권력의 정당성을 확보하고 자국민의 우월성을 과시하기 위해 선조들이 남긴 역사유적을 보존, 복원하여 이를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파시즘을 선전하는데 이용하였다. 이차세계대전 이후 미국은 역사가 깊은 유럽에 대한 콤플렉스를 극복하기 위해 유적발굴과 역사보존에 유별난 관심을 보이면서 이 분야의 발전을 선도해 나갔고, 도시와 건축분야에서도 이에 뒤처질세라 적극적으로 역사복원과 보존을 마치 신성한 의식처럼 인식하게 되었다.

우리나라에서도 나라경제가 좋아지기 시작한 80년대 중반 이후 도시역사연구가 활발해지고 역사유적보존과 복원, 주요 건축물의 보존 등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높아지면서 도시개발과 역사보존의 갈등이 시작되었다. 도시란 사람이 살아가는 장소이며 삶의 터전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의 필요와 욕구에 따라 도시는 변화가 일어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보존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개발을 마치 도시를 파괴하는 행위로 간주하고 이를 적극 반대하는 반면, 개발의 필요성을 내세우는 측에서는 도시는 박물관이 아니기 때문에 시민들의 삶이라는 현실에 더 비중을 둬야한다는 주장이다. 그런 가운데 주요도시들은 저마다 역사유적보존을 중요한 정책으로 내세우고 적지 않은 예산을 들여 시행하고 있다.

도시는 오랜 세월에 걸쳐 수많은 사람들이 살아오면서 남겨둔 흔적 위에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살고 있다. 도시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만 살다 없어지는 곳이 아니라 우리의 후손들이 계속 살아가야 하는 곳이기 때문에 우리의 삶의 흔적이 새겨진 이곳이 바로 도시의 역사이다. 현대의 첨단정보통신사회는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변하고 있으며, 지금 우리가 사는 도시가 미래의 변화에 얼마나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느냐에 우리의 생존이 달려있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유적도 중요하고 건물의 보존도 의미가 있겠지만 미래도시에서의 삶과 도시의 모습도 함께 그려보는 지혜가 우리들 모두에게 절실히 요구된다.

/양윤재 대우재단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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