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칼럼]정찬민의 길 공재광의 길

홍정표

발행일 2017-10-25 제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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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탄상수원보호구역 해제 놓고 '갈등' 틀어져
12월 존치여부 용역결과 발표 따라 처지 갈려
결과 승복 감정 풀고 상생지혜 모으는게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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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정표 논설실장
정찬민 용인시장과 공재광 평택시장은 닮은꼴이다.

정 시장은 신문기자 생활을 접고 정치에 입문했다. 공 시장은 서기보(9급)로 공직에 입문, 청와대 행정관(서기관, 4급)을 하다 출사표를 던졌다. 정치를 위해 생업(生業)을 내던진 '벤처 유전자(DNA)'를 나눠 가졌다. 둘 다 초선에, 자유한국당이다.

2014 지방선거에서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의 체면을 세웠고, 남경필 도지사를 일으켰다. 당시 새누리는 세월호 참사 여파로 쑥대밭이 됐다. 도내 대도시는 죄다 민주당이 점령했다. 정찬민이 버틴 용인만 예외였다. 평택은 초반부터 시종 새누리 페이스였다. 남 지사는 민주당 김진표 후보에 4만3천177표 차로 신승했다. 평택 2만3천496표, 용인 처인구 1만2천330표 우세가 명운을 갈랐다. 취임 초 남 지사는 '평택과 용인에 예산을 많이 줘야겠다'고 했다.

그런데, 둘 사이가 싸늘하다. 사석은 물론 공식 행사에서도 같이 있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덕담은 없고, 서운함을 감추지 않는다. 같은 당에, 이웃사촌 지자체장 사이라기에는 참으로 불편하고 어색한 일이다. 둘이 틀어진 건 송탄상수원보호구역 해제를 둘러싼 갈등에서다.

38년 전, 정부는 평택 시민들의 식수원 보호를 위해 진위천 상류인 용인시 남사면 일대를 보호구역으로 묶었다. 팔당 광역상수도망이 연결돼 쓸모는 적어졌지만 규제는 풀리지 않았다. 용인 땅에 집을 짓는데 평택시장의 도장을 받아야 했다. 남사면 길거리는 여전히 1980년대 풍경인 영화 세트장이다. 참다못한 주민들은 족쇄를 풀어달라며 악을 썼다. 용인시의회가 힘을 보탰고, 시의회 의장이 1인 시위를 했다.

정 시장도 나섰다. 2015년 가을 시민 1천 명과 함께 평택시청 앞에서 시위를 벌였다. '시장 나오라'는 함성이 십 리 밖까지 들렸다.

공 시장은 출장을 핑계로 나타나지 않았다. 정 시장은 분노했다. 비겁하게 꽁무니를 뺐다는 거다. 용인이 지역구인 이우현 의원도 그를 비난했다. "시장으로서 책임감이 부족하고 정치 감각도 떨어진다"고 했다. 평택 원유철 의원과 함께 4명이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는 모습을 그렸지만 그는 요지부동이었다.

공 시장은 "남의 집 앞에 몰려와 떼쓰는 게 단체장이 할 일이냐"고 반문한다. 정치쇼에 말려들지 않고 평택시민만 바라보겠다고 했다.

경기도 중재로 사태는 일단락됐다. 늦어지긴 했지만 3자가 합의해 용역에 착수했다. 올 상반기 설명회를 연 경기연구원은 12월 초 결과를 발표한다. 결론은 났고, 마무리 작업이 한창이다.

보호구역 해제냐 존치냐. 어느 쪽이든 또 한차례 태풍이 몰아칠 것이다. 양쪽 다 만족하는 결론은 기대할 수 없는 사안이다.

존치 여부에 따라 정 시장과 공 시장 처지도 확연히 갈리게 된다. 12월이면 내년 지방선거가 6개월도 남지 않은 시점이다. '물 전쟁'은 지역 민심을 가를 결정적 변수가 분명하다. 두 사람 다 죽도록 뛰어도 부러지고 찢긴 보수당 깃발로는 재선(再選)이 가물가물한 판이다.

용역 결과는 '정치적 고려'가 배제된 온전한 결정체일 것이다. '보이지 않는 손'을 쓰는 건 남 지사가 감당치 못할 부담이고, 그럴 이유도 없다.

용인은 벌써 수십 년 족쇄가 풀릴 것으로 예단한다. 평택은 물러설 생각이 없다. 어느 한쪽은 들고 일어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두 사람의 정치력이 절실한 이유다.

정 시장과 공 시장은 결과에 승복하되 구원(舊怨)을 풀고 마주 앉아야 한다. 그래야 살 길이 보일 것이다. 나만 살자는 게 아닌 상생의 지혜를 이끌어내는 게 정치(政治)가 할 일 아닌가. 둘은 어느 길을 가려는가.

/홍정표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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