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집주인과 사냥꾼

이진호

발행일 2017-10-26 제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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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핵기술 '설마'하는 동안 실질적 위협 닥쳐
도둑맞은 주인처럼 '…하기만 해봐라'식 안돼
'무조건 대화'는 쫓아오는 늑대에 먹이 주는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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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호 인천본사 사회부장
#1. 한밤중에 도둑이 물건을 훔치려고 호시탐탐 집 주변을 맴돌고 있었다. 이를 목격한 집 주인은 속으로 "설마 들어올 수 있겠어. 들어오기만 해봐라. 가만두지 않겠다"며 지켜봤다. 도둑이 담장을 넘자 집주인은 "집 안으로 들어오기만 해봐라. 혼쭐을 내주겠다"고 다짐했다. 도둑이 집 안으로 들어오자 집주인은 "안방으로 들어오기만 해봐라. 몽둥이찜질로 두들겨 패주겠다"고 생각했다. 도둑이 결국 안방으로 들어오자 집주인은 숨죽여 자는 척했다. 그러면서 "물건만 훔치기만 해봐라. 다리를 부러뜨리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도둑은 아무런 제재도 없이 금품을 들고 유유히 달아났다. 집 주인은 도둑이 나간 뒤 "다시 오기만 해봐라. 그땐 뼈도 못 추리게 하겠다"며 소리를 쳤다.

#2. 추운 겨울 산속에서 사냥꾼이 10여 마리의 늑대 무리에게 쫓기고 있었다. 마차를 달려 도망가던 사냥꾼은 잡은 고기를 늑대 무리에게 던졌다. '던져준 고기를 먹고 쫓아오지 말라'는 거였다. 늑대 무리는 사냥꾼이 던진 고기를 나눠 먹으면서 쫓기를 멈췄다. 그것도 잠시 고기를 다 먹은 늑대들이 다시 사냥꾼을 쫓기 시작했다. 이러기를 수차례 반복하다 결국 사냥꾼은 잡은 고기를 늑대에게 다 내어주고 말았다. 고기를 먹고 힘을 낸 늑대 무리는 결국 끝까지 쫓아와 사냥꾼마저 자신들의 먹잇감으로 만들었다. 집주인은 당차게 도둑과 맞서지 못해 소중한 재산을 빼앗겼고, 사냥꾼은 늑대가 지쳐 쓰러져 못 쫓아올 수 있었는데도 불안한 마음에 고기를 던져주다 목숨을 잃었다.

만일 국가가 이런 위협을 받고 있고, 그런 위협이 되풀이되는 상황이라면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북한이 앞서 일화에 나오는 도둑이고 맹수라면 우리는 집주인처럼 외면하고, 쫓기는 사냥꾼처럼 먹이를 던져주는 일을 되풀이할 것인가. 지금 여야가 북핵에 대한 대응 방안을 두고 각기 다른 입장을 피력하고 있다. 여기에 미국은 '군사적 옵션', '김정은 참수 작전' 등 극단적인 표현까지 불사하면서 한반도를 전쟁위기 상황으로 몰고 갈 수도 있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십 수년 전 북한이 핵시설을 가동하겠다고 할 때만 해도 우리 정부는 "핵무기까지 발전할 수 있는 기술력이나 재원이 낮다"고 평가했고, 이후 북한이 중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할 때도 소형 핵탄두 제작 기술에 의문을 제기했다. 액체연료에서 고체 연료로 발전시키는데 고도의 기술이 필요하기 때문에 실질적 위협으로 보기에는 시기상조라는 등 북한의 핵기술을 애써 낮게 평가했다.

최근 북한이 발사한 중장거리 미사일에 핵탄두 장착이 가능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장거리 미사일도 문제지만 세계 각국이 우려하는 것은 여기에 핵탄두가 장착될 수 있다는 점이다. 이제 북한의 핵무기는 막연한 것이 아니라 실체가 있고, 실현 가능한 현실이 됐다. 북한의 핵기술을 폄하하고 '설마'하는 동안 북한 핵은 실질적 위협으로 코앞에 닥쳐온 것이다. 세계 각국의 전문가들도 북이 핵을 쉽게 포기할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일각에서는 "대화로 풀고 북한이 원하는 것을 주기만 한다면 핵을 포기하지 않겠느냐"는 기대를 하는 것 같다. 하지만 북한이 원하는 것을 얻고 난 뒤에도 또 다른 것, 더 큰 것을 원할 때마다 유용하게 사용할 핵무기를 포기한다는 것은 설득력이 약하다. 당장 전쟁을 벌이자는 게 아니다. 도둑맞은 집주인처럼 'OO 하기만 해봐라'는 식으로 대처해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 아직 우리 안 마당에 폭탄이 떨어지지 않았다는 이유로, 혹시라도 '무조건 대화로 달래는 것'만이 북핵에 대처할 유일한 방법으로 생각한다면 늑대에게 먹이를 던져주면서 쫓아오지 말라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이진호 인천본사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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