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영직의 여시아독(如是我讀)]자존심과 자존감의 차이

고영직

발행일 2017-10-30 제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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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영직 문학평론가
자존심과 자존감의 차이는 무엇인가. 가난하고 소외된 백인 하층민의 빈곤문화를 당사자의 눈으로 냉정히 성찰하는 J.D.밴스의 회고록 '힐빌리의 노래'를 덮으며 드는 생각이다. '힐빌리의 노래'는 가난이 가난을 낳고, 가난이 대물림되는 미국 애팔래치아 산맥 인근 쇠락한 공업지대인 오하이오 미들타운에서 성장한 저자가 사회적 고립과 학습된 무기력이라는 빈곤문화를 형성해온 비관적 무리에서 벗어나 어떻게 계층이동의 사다리를 밟으며 아메리칸 드림을 이루었는지를 회고하는 책이다.

오해는 마시라. 이 책은 결코 상투적인 아메리칸 드림 신화를 회고하는 책과는 거리가 멀다. 저조한 사회적 신분 상승에서부터 빈곤과 이혼, 마약 중독과 십대 임신에 이르기까지 오만 가지 불행의 중심지인 미국의 '힐빌리 문화'를 내부자의 눈으로 신랄히 성찰하며 더 나은 삶을 향한 희망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역작이다. 힐빌리 문화는 레드넥, 화이트 트레이시라는 모욕적인 이름으로도 유명한데, 이들의 문화는 지독히 의리를 중시하고 외부인을 난폭하게 다루는 것으로 악명이 높다. 다시 말해 법보다 주먹이 더 가깝고, 복지 여왕을 비난하며, 가난이 가풍(家風)이 되어버린 가난한 백인들의 빈곤문화를 의미한다. 지난 미 대선에서 가난한 백인 남성들이 민주당의 포퓰리즘 정책을 혐오하며, 왜 트럼프를 대통령으로 선출했는지 이해할 수 있는 책으로도 유명하다.

J.D.밴스는 1984년생 스코틀랜드계 아일랜드인 출신의 후손이다. 그는 힐빌리 문화권에서는 '세상에 믿을 놈 없다'는 것을 신봉하는 마음의 습관을 형성하게 된다고 말한다. 기회를 가로막는 장애물들은 집과 학교 주위에 널려 있고, 노력 부족을 능력 부족으로 착각하는 문화 또한 완고하다. 그런 환경에 둘러싸인 저자가 자신의 학창 시절을 회상하며 '덫에 걸린 기분'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전혀 어색하지 않다. 쉽게 말해 이들은 자존심이 센 척하지만, 자존감이 그리 높지는 않았던 것이다.

저자는 십대 시절을 회상하며, 자신은 완전히 다른 세상으로 옮겨간 '문화적 이주자'라고 비유한다. 자신이 문화적 이주자가 된 데에는 자신을 이해하는 사람들에게 터놓고 이야기하는 것이 중요하고, 타인과 대화하는 법을 배워야 하며, 낙관을 배웠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해병대에 입대하고, 오하이오주립대를 다니고, 예일대 로스쿨에서 법을 공부하며, 저자는 그런 환경에 노출되는 경험을 통해 배웠다고 말한다. 그리고 가난이 가난을 낳으며, 가난이 대물림되며 형성되는 빈곤문화를 극복하는 방안으로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정치학자 로버트 D. 퍼트넘이 '나홀로 볼링'에서 역설한 사회적 자본이란 개인들 사이의 연계와 사회적 네트워크 형성 그리고 호혜성과 신뢰의 규범을 의미한다. 러스트 벨트(rust belt) 지역 고유의 자신을 비하하는 '골창 문화'를 바꾸려는 교육의 힘을 역설하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힐빌리의 문화'는 힐빌리의 한국적 버전인 '태극기 부대' 시위에 참여하는 우리나라 가난한 노인들의 빈곤문화를 돌아보게 한다는 점에서 퍽 유의미하다. 또 가난한 사람들은 왜 보수정당을 지지하는가에 대한 사회문화 보고서로서도 의미가 없지 않다. 책을 보며 십대 시절의 암담했던 고립의 나날들이 연상되어서인지 책을 꼼꼼히 탐독했다. 계층이동의 사다리를 어떻게 놓아야 하고, 사회통합을 위한 좋은 정책은 무엇인지 고민하게 한다. '힐빌리의 노래'를 보며 자존심과 자존감의 차이를 이해하는 것이 퍽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결국, 나 자신의 노래를 부를 수 있고, 또 기꺼이 부를 줄 아는 건강한 마음생태학이 중요하다. 교육과 문화의 힘을 바탕으로 한 좋은 정책이 좋은 정치라는 점을 인식하고 실천해야 할 때이다.

/고영직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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