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천년]'위성도시' 경기 남부, 성남·안양·과천·용인… 그들이 진정 원하는 건 뭘까?

숨쉬는 자연&공동체 마을 '모두의 행복' 꿈꾸는 사람들

공지영 기자

발행일 2017-10-30 제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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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가는 워크숍' 군포·수원 등 발걸음
'버릴 것' 물음에 통념깨고 '개발' 1순위
'난개발 NO' 흙길·실개천·숲 복원 바라

지역 친환경마켓·화폐·사랑방·축제…
이웃 어울리는 '커뮤니티 공간' 소망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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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허벌판에 도로가 어딨어. 기차역도 없었는데..그때는 다 논이고, 밭이었어. 누런 들판이 가끔 그립네." 경기 군포시에서 나고 자라 결혼하고 아이도 낳으면서, 한번도 군포 땅을 떠나 본 적 없다는 1946년생 김순영씨의 기억이다.

이경득씨는 군포의 아파트를 분양받으면서 25년째 군포에 거주하고 있다. "처음에 군포로 이주했을 때 불빛도 별로 없고, 공장들만 있어 '회색빛'같이 칙칙했어요."서른 살의 김도현 씨는 엄마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전했다.

"제가 아주 어린 시절에 군포 산본은 양계장 천지였대요. 어렴풋이 기억나는 게 산본은 논과 밭이 펼쳐진 자연이었는데, 지금은 아파트로 다 바뀌었어요."

군포

특정 행성을 공전하면서 그에 의존하며 살아가는 위성, 그 위성의 특징과 닮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 '위성도시'. 위성도시는 경기도 남부 지역의 도시를 설명하는 가장 쉬운 단어다. 군포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는 비단 군포 만의 것은 아니다.

인근의 성남, 용인, 안양, 과천, 수원 등 대다수 경기 남부의 도시가 수도 '서울'로 집중되는 인구와 산업을 분산하기 위해 도시로 계획되고 개발돼왔다.

서울과 통근이 가능하다면, '신도시'라는 미명 하에 어디든 아파트가 지어졌고 도로가 건설됐다. 아파트 층층이 불이 밝혀지듯 빠르게 사람들이 그 곳을 채워나갔고 금세 도시는 화려한 네온사인에 휩싸였다.

논과 밭이 사라지고 산과 강이 훼손되는 것 쯤은 개발이 되고 아파트가 들어서고 사람들이 몰려오면 상쇄되는 것이라 여겼다. 그런데 지금, 그곳에 사는 이들의 생각도 같을까. 경기천년플랫폼 '찾아가는 워크숍'을 통해 군포, 수원, 과천, 안양 등 경기 남부 도시에 사는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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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릴 것과 버릴 것


경기 남부 도시에서 만난 시민의 답변은 우리의 통념을 깨는 것 투성이였다. 미래를 위해 살릴 것과 버릴 것을 주문하자, 버려야 할 것에 '개발'이 우선 순위로 꼽혔다. 사람들은 도시 곳곳에서 벌어지는 난개발에 진저리가 난 듯 했다.

과천 워크숍에 참여한 한 시민은 "과천의 자랑은 도심에서 만끽하는 풍요로운 전원도시다. 그런데 최근 여기저기서 난개발이 횡행하고 있다. 그린벨트 해제를 무조건 못하게 할 순 없지만, 원칙도 없이 자연이 훼손되고 그 곳에 아파트, 쇼핑몰 등 개발이 되는 것은 반대한다"고 꼬집었다.

군포에서 만난 시민도 "수리산이 마음에 들어 1997년부터 이 곳에 살기 시작했는데, 고속도로가 생기고 산과 들이 망가지고 아파트와 공장이 우후죽순 생기는 모습을 보면서 가슴이 아팠다"고 이야기했다.

시민들이 살려야 할 것으로 꼽은 1순위는 '자연'이었다. 군포 시민 임은정 씨는 "길과 길이 만나는 도시가 됐으면 좋겠다. 도로가 아니라, 흙길을 아이들이 밟을 수 있는 도시를 꿈꾼다. 특히 군포에 '대야리' 라는 농촌마을이 있는데, 이 곳은 개발자들이 제발 손대지 말았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다른 시민들도 '숲이 우거진 쉼터' '과천 야생화 단지' '군포 실개천 복원' 등을 살려야 할 것으로 꼽으며 자연과 도시가 어우러진 모습을 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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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 함께 살려야 할 것으로 시민들은 '공동체'를 꼽았다. 안양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 할머니들은 "안양 안에서 아이와 부모가 모두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져야 한다. 3대가 함께 어울려 살며 삶을 이루는 도시가 되면 얼마나 좋은가"라고 말했다. 비슷한 의견은 경기 남부의 다른 도시에서도 속속 발견됐다.

군포에서는 기발한 아이디어들도 나왔다.

"밥그릇 5개 캠페인을 벌이면 어떨까 한다. 최소한 한 상에 밥그릇이 5개 이상 되는, 동네 사람들이 함께 어울려 밥을 먹을 수 있다면 얼마나 삶이 풍요로워질까 생각한다" "우리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친환경 마켓을 만들어 대야리 농장에서 난 각종 채소나 곡물을 마켓을 통해 구입하면 선순환 경제가 되지 않을까" "군포에서 가장 사람이 많이 모이는 중심상가 1층에 시민들이 자유롭게 드나들며 수다도 떨고 차도 마시고 저녁에 맥주도 한 잔 할수 있는 '사랑방'이 있다면 행복할 것 같다" 등이다.

수원에서는 공동체와 관련해 구체적인 계획들이 발표됐다.

"마을교육위원회를 구성해 마을 아이들의 공동체 교육을 실현하자" "마을마다, 아파트마다 특성있는 커뮤니티 공간을 의무화해 주민 스스로 운영케 하자" "마을마다 지역화폐 혹은 마을 상품권을 만들어 지역상권을 활성화하자" 등 당장 정책으로 구현해도 손색없는 아이디어들이 도출됐다.

이 밖에도 마을 특색을 살려 주민들이 직접 기획하는 문화 축제를 살리고, 이웃을 배려하지 않는 이기심을 버려야 한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또 청년들이 서울로 빠져나가지 않고 나고 자란 도시에서 새로운 가정을 이룰 수 있게 노력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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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성도시가 아닌, 사람이 사는 도시로

20대 청년이나, 40대 주부나, 70대 할아버지 모두 결론은 '다 같이 행복하자'는 것이다. 비단 사람에만 국한된 이야기는 아니었다.

도시 개발로 얻은 편리함만 누리고 살아온 청년들과 온통 논과 밭이었던 시절부터 지금까지 터를 지키며 살아온 노인들 모두 한 목소리로 쭉 뻗은 고속도로보다 돌아가더라도 흙을 만질 수 있는 오솔길을 원했다. 조금 덜 벌더라도 조금 더 빨리 퇴근해 가족, 이웃과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문화공간을 소망했다.

처음 31개 시군을 찾아가 지역의 이야기를 듣기로 기획했을 때만 하더라도 '도로 개발' '지하철 개발' '신도시 개발' 과 같은 물리적 발전이 눈에 띄는 미래가 나오지 않을까 감히 예상했다.

하지만 경기 남부의 시민들은 그동안 철저하게 위성도시로서만 기능해 온 경기 남부 도시의 현재에 물려있었다. 예상은 빗나갔지만, 기분이 썩 나쁘지 않다.

군포 워크숍에서 만난 1936년생 김상헌 씨의 말이 귓가에 맴돈다. "나는 여기서 나고 자랐어. 쭉 군포에서만 살았지. 여기에 안양으로 나가는 실개천이 있었는데, 그 길을 따라 걸었던 기억이 나. 살리고 싶은 게 있다면, 그 실개천이 다시 살아났으면 해."

/공지영기자 jyg@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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