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부평미군기지 환경오염 발표를 듣고

정진오

발행일 2017-10-30 제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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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이 오염 그들 돈으로 정화시키는게 당연
한국보호 위해 주둔 했다면 환경도 보전해야
'세계의 경찰' 자칭… 어처구니없는 일 없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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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오 인천본사 정치부장
부평미군기지 환경오염 문제가 심각하다는 사실을 환경부가 발표했다. 복합적 토양오염이라고 한다. 정부는 반환 절차가 진행 중인 미군기지 내부 환경조사 결과를 반환에 앞서 한·미 간 합의로 미리 공개한 것은 처음이란 점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하지만 미군이 자신들이 기지 내에서 행한 온갖 오염 행위를 얼마나 인정하고 그 피해를 온전히 복구할지는 알 수가 없다. 그동안의 미군 태도로 볼 때는 영 그럴 것 같지가 않다. 미군이 순순히 자기 책임을 인정하고 정화 작업 등 그 대안 마련에 적극적으로 나선 경우가 없다. 해외 파견 미군은 어디에서나 마찬가지로 행세해 왔다.

부평 땅은 예전부터 참으로 많은 군사적인 아픔을 안고 있다. 미군은 해방 직후, 그러니까 1945년 9월 8일 한반도에서 가장 먼저 인천에 진주하면서 그 질긴 인연을 아직까지도 이어오고 있는데, 인천항에 입항한 미군이 우선 신경을 쓴 곳이 부평이었다. 일본군의 핵심 군수기지가 부평에 있었기 때문이다. 일본군은 1930년대 후반 중일전쟁을 일으키면서 군수기지를 부평에 건설했다. 병장기를 만든다고 하여 조병창이라고 불렀다. 미군이 인천에 진주하면서 부평의 일본군 군사시설은 곧바로 미군기지로 전환되었다. 해방과 함께 등장한 미군은 1949년 한반도 미군철수 때부터 1950년 9·15 인천상륙작전 때까지 1년여를 제외하고는 지금까지 부평을 떠난 적이 없다.

70년이 넘게 인천에 주둔해 온 미군과 관련해 아직도 그 진상이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은 게 많다. 그중에서도 부평에서 벌어진 반공 포로 탈출과 학살 사건이 주목할 만하다. 1953년 6월 18일 전국에서 반공 포로들이 석방된 날 부평의 반공 포로들만 석방되지 못했다. 포로들은 들고 일어섰다. 그리고 그 다음 날 탈출을 감행했다. 이미 감시병력은 한국군 헌병에서 미군 헌병으로 바뀐 뒤였다. 포로석방 조치 하루가 지난 6월 19일 반공 포로들이 철조망을 넘자 미군들은 기관총을 갈겼다. 500여 명이 죽거나 다쳤다. 탈출에 성공한 포로는 1천500여 명의 수용자 중 300여 명이었다. 이는 당시 반공 포로로 있던 박종은의 수기 '포로수용소생활 1,200일 실화, PW'에 전하는 내용이다.

부평의 반공 포로들은 미군기지 건설작업에 동원됐다. 대통령의 지시에도 불구하고 풀려나지 못한 포로들이 미군의 총에 맞아 죽었다. 당시 신문들은 탈출사건 이후 850명이 부평에서 논산으로 이송됐다고 보도했다. 1천500명에서 절반가량이 줄어든 850명만 남았었다는 얘기다. 박종은이 증언한 것처럼 300여 명이 탈출했다고 하더라도 350명이 더 있어야 한다. 탈출사건 때 사살됐다고 해석할 수밖에 없다. 이 사건은 철저히 묻히고 잊혀왔다. 생각할수록 어처구니가 없다.

반려견이 싼 배설물은 반려견 주인이 치우는 게 기본적인 펫티켓이다. 이게 바로 원인자 부담이라는 거다. 미군이 오염시킨 토양과 물은 미군의 돈으로 정화시키는 게 당연하다. 미군은 한국을 보호하기 위해 주둔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 말이 맞는다고 하면, 미군은 환경오염으로부터도 한국을 보호하는 게 당연하다. 개 주인도 지키는 에티켓을 세계의 경찰이라 자칭하는 미군이 지키지 않아서야 되겠는가. 어처구니없는 일이 더 이상 없도록 말이다.

/정진오 인천본사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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