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연인]가을의 기도

권성훈

발행일 2017-11-06 제12면
글자크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링크
  • 메일보내기
  • 인쇄
  • 페이스북
  • 트위터
  • 구글플러스
  • 메일전송
2017110501000268000011812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낙엽들이 지는 때를 기다려 내게 주신

겸허한 모국어로 나를 채우소서.// 가을에는

사랑하게 하소서……

오직 한 사람을 택하게 하소서.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위하여 이 비옥한

시간을 가꾸게 하소서.// 가을에는

호올로 있게 하소서……

나의 영혼,

굽이치는 바다와

백합의 골짜기를 지나,

마른 나뭇가지 위에 다다른 까마귀같이.

김현승(1913~1975)

2017110501000268000011811
권성훈 (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여름과 겨울 사이에 있는 가을은 알록잎과 달록잎 사이에 매달려 있다. 뜨거운 여름을 보낸 존재들에게 오는 '한 잎의 평화'가 물들어 가. 이 시간을 묵상하는 당신의 가을도 안으로 녹이 슬어 차츰 저물어 갈 것이다. 가을의 기도에는 '겸허한 언어'로 채워야 하는 '진실'과 오직 한 사람을 위한 '사랑'과 홀로 있는 '나의 영혼'의 자리를 보여준다. '낙엽들이 지는 때를 기다려 오직 한 사람을 택하게 하고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위하여 이 비옥한 시간을' 우리는 어떻게 보낼 것인가. "마른 나뭇가지 위에 다다른 까마귀같이" 깊이 또한 멀게 응시한다면 인생은 '굽이치는 바다'와 '백합의 골짜기'를 건너야하는 근원적 고독을 발견하게 한다.

/권성훈 (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권성훈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