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구의 한국재벌사·33]대한유화-2 재벌로 성장

미군 납품은 '황금알 낳는 거위'

경인일보

발행일 2017-11-07 제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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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용양회 문경공장
1957년 대한양회에 불하된 문경시멘트는 당시 국내 최대의 시멘트 공장이었다. 현재는 대한양회를 인수한 쌍용양회의 문경공장이 됐으며, 근대문화유산 지정이 추진 중이다. /경상북도 제공

이정림, 1953년 호양산업 설립
年 30만달러 어치 '얼음' 판매
국내최대 시멘트공장 불하받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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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 이후 군납사업은 국내 사업가들에 노다지 광맥으로 통했다. 식품, 타이어, 피혁, 페인트, 비누, 면내의, 모포, 양말 등을 생산하는 업체들이 군납사업으로 재미를 톡톡히 봤고 이들 산업은 군납과 관련해서 점차 자리를 잡아갔다.

최성모(세기상사, 신동아그룹의 모체), 심상준(한금장유), 전중윤(삼양식품, 삼양라면의 모체) 등이 발군의 실력을 발휘했으며 한국타이어와 흥아타이어, 진양화학, 대한잉크페인트도 군납혜택을 누렸다.

군납업이 새로운 이권사업으로 부상하자 수많은 사람들이 집권당인 자유당의 정치인과 고위공무원, 고급장교 등에 경쟁적으로 연줄을 대느라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 인단비누와 지구유지가 연루된 탈모비누사건은 수뢰사건으로 번져 한동안 여론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일부 기업가들은 주한미군 상대 비즈니스에 눈길을 돌렸는데 한진그룹 창업자인 조중훈의 일화는 유명하다. 6·25전쟁 전부터 트럭 한 대로 화물을 운반하던 조중훈은 1955년 여름 서울-인천간 국도 운행 중 부평근처에서 고장난 고급세단을 고쳐준 것을 계기로 국내 최대의 수송재벌이 됐다.

고장 난 차에 미군 고위층의 부인이 타고 있었던 것이다. 이후부터 그는 미국인 장교와의 교분을 넓히는데 주력했다. 미국에서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동생 조중건은 뛰어난 영어실력으로 형을 도왔는데 당시 조중훈이 집으로 초대한 미군은 연인원으로 5천여 명에 달했다고 한다.

현대건설(정주영)과 삼환기업(최종환) 등은 가장 먼저 미8군 토건업에 뛰어들어 재벌의 터전을 닦았다. 병영건설 물량도 많았지만 환차익은 더욱 매력이었다.

"미군공사는 달러로 계약되는데 기성분을 받을 때쯤이면 환율이 엄청나게 올라있는 실정이었다. 공정환율의 변동추세를 보면 1950년 1천800원 대 1달러였던 것이 1951년에는 2천500원 대 1달러로, 1952년에는 6천원 대 1달러로 뛰었다."('현대건설35년사', 1982)

주한미군 납품사업은 비록 소액일지라도 국내 비즈니스보다 훨씬 매력 있는 사업 이었다. 이정림의 본격적인 기업가활동은 1953년 휴전 이후부터였는데 첫 신호는 1953년 환도 후 서울에서 호양산업(好洋産業)주식회사를 설립한 것이다. 황금 알을 낳는 거위에 비견되던 주한미군 사업이었다.

이정림은 미국 뉴욕에서 일본산 100톤짜리 제빙기계를 도입해 서울 용산구 원효로 1가에 제빙공장을 세우고 미군 위생관의 물 검사를 거쳐 주한미군에 납품사업을 개시했다. 그 결과 호양산업은 연간 25만 달러 내지 30만 달러 어치의 얼음을 판매하는 등 호황을 누렸다.

이정림은 개풍상사와 호양산업을 경영하면서 재벌화의 길을 도모했다. 1955년에는 대한탄광(大韓炭鑛)을 설립하고 광업에 진출했고, 1956년 10월에 대한양회(大韓洋灰)를 설립했다. 대한양회 설립의 배경은 다음과 같다.

정부는 한국전쟁 후 수입대체산업 중심의 공업화에 박차를 가하였는데 운크라 원조자금으로 충주비료, 한국유리, 문경시멘트 등 3대 기간산업의 건설을 추진했다.

당시 시멘트 생산은 국영인 삼척시멘트공사(동양시멘트 전신)가 유일했으나 그나마도 시설 노후로 생산성이 형편없었다. 1955년 국내 시멘트 소비는 18만9천t이나 생산량은 5만6천t으로 70%를 수입에 의존해야만 했다.

정부는 운크라와 협의해서 판유리에 이은 두 번째 프로젝트로 문경에 시멘트공장을 추진했다. 건설업체로는 덴마크의 스미스사가 선정됐고 1955년 11월에 850만 달러의 자금을 들여 경북 문경군 점촌읍 신기리에 퀼른 2기의 연산 24만t 공사를 착공 했는데 준공 직전인 1957년 9월에 대한양회에 불하됐다.

이정림은 이동준, 이회림(OCI그룹 창업자)과 친동생인 이정호(李庭鎬)등과 함께 문경시멘트를 1천300만 달러에 구입해 대한양회를 설립했다. 개풍그룹이 국내 최대의 시멘트공장을 거느리게 된 것이다.

/이한구 경인일보 부설 한국재벌연구소 소장·수원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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