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공감]영화 '대장 김창수' 연출 이원태 감독

인천 감옥살이는 '김구 비긴즈'
그의 휴머니즘 알리고 싶었다

박경호 기자

발행일 2017-11-08 제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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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인터뷰 공감  영화 대장 김창수 이원태 감독 인터뷰3
지난 2일 서울 압구정 CGV에서 만난 영화 '대장 김창수'의 이원태 감독. 이날 '관객과의 대화(GV)' 행사에 참석한 이원태 감독은 "관객들이 잘 몰랐던 백범 김구 선생의 청년시절 이야기를 영화를 통해 알게 됐다며 고맙다는 반응이 많다"고 말했다.

■개항기 인천에 대한 접근과 주요 장면 고증은?
서양과 동양·봉건시대와 근대 등 충돌하는 공간 표현
건축물 옆 판잣집처럼 부조화 이미지도 꼼꼼히 묘사
백범일지 셀 수 없이 읽고 수차례 답사 디테일 살려

■사실 아닌 '경인선 부설공사 노역' 다룬 이유는?
곡식·광물 이어 위안부·노동자까지 실어나른 '만행'
일제수탈의 현장 국민들에 알리기 위해 역사 재구성
소설 아편전쟁 등 개항장 소재 이야깃거리 더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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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은 청년 '김창수(金昌洙)'가 독립운동가이자 민족주의자 '백범(白凡) 김구(金九)'로 다시 태어나는 전환점을 맞은 공간이다.

김구는 인천에서 2차례의 감옥살이를 했다. 국모 시해(을미사변)를 보복한다며 일본인 쓰치다 조스케(土田讓亮)를 죽인 '치하포 사건'으로 1896년 인천감리서에 투옥된 게 첫 번째 옥살이다. 당시 21살이던 김창수는 사형선고까지 받았다가 가까스로 목숨을 건지고, 얼마 후 인천 감옥에서 탈출했다.

이름을 고친 김구는 독립운동을 위한 서간도 무관학교 설립 움직임과 관련된 '안악 사건'으로 1911년 서울에서 또다시 옥살이하다가 39세 때인 1914년 인천 감옥으로 이감된다. 두 번째 인천 옥살이에서 백범은 인천항 축항 공사 강제노역에 동원되기도 했다.

김구는 이때 옥중에서 백정(白丁)의 '백'과 범부(凡夫)의 '범'을 따서 '백범'이라는 호를 쓰기 시작했다. 이후 1919년 3·1운동 직후 상하이로 떠나 우리나라가 해방을 맞을 때까지 상하이 임시정부를 이끌며 독립운동에 투신하게 된다.

대장_김창수1
지난달 19일 개봉한 영화 '대장 김창수'는 백범의 일대기 중 가장 널리 알려진 '상하이 임시정부 시절'이나 '해방 후 남북 분단의 격동기'를 다루지 않았다. 대중에게는 다소 생소할 수 있는, 백범의 인천에서의 감옥살이를 이야기했다.

영화 '대장 김창수'가 백범의 20대 초반 청년 시절, 그중에서도 인천감리서에 사형수로 투옥된 시기를 스크린에 투영한 이유는 뭘까. 지난 2일 오후 7시 30분 서울 압구정 CGV에서 '대장 김창수'를 연출한 이원태(49) 감독을 만나 그 이유를 물었다.

이원태 감독은 이날 영화 상영이 끝난 뒤 오후 9시 30분부터 진행한 '관객과의 대화'를 기다리고 있었다. 방송프로그램 연출자 출신인 이원태 감독은 지난 10여 년 동안 다수의 영화와 소설을 기획하고,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인천 개항장을 배경으로 쓴 '아편전쟁'(2016)은 소설가 김탁환과 공동 집필하기도 했다.

영화 '대장 김창수'의 소설 버전도 김탁환 작가와 공동으로 작업했다.


-왜 백범 김구의 인천 감옥살이를 영화화했나.

"2012년 겨울 상하이 여행 때 임시정부를 들렀다. 너무 작고 초라한 상하이 임시정부를 보는 순간 눈물이 쏟아졌다. 반면 다른 우리나라 관광객들은 전시회 관람하듯 쓱 지나가고 말았다. 사람들이 백범 김구 선생을 잘 몰라서 느낌이 없다고 생각해서 백범을 영화화하기로 결심했다. 백범 선생의 인생을 일제강점기 직전, 상하이 독립운동, 해방 후로 크게 3개 지점으로 나눌 수 있는데, 그 첫 지점이 인천이다. 김창수는 사형수가 됐는데도 불구하고 당당하게 죽음을 향해 걸어가다가 살아 돌아왔다. 이후 민족의 지도자가 됐다. 한번 죽었다가 살아나니까 죽음을 넘어 민족의 독립을 위해 삶을 내던질 용기가 생긴 것이다. '배트맨 비긴즈'가 있듯 '김구 비긴즈'를 만들고 싶었다. 영화적으로도 을미사변 직후의 들끓는 민심 속에서 대형사고를 친 사람이니 드라마틱한 면이 있고, 감옥 또는 탈옥을 그린 다른 영화와는 다르게 김창수의 옥살이에는 휴머니즘이 있다."

인터뷰 공감 자료사진

-영화 속 개항기 인천을 우리나라 사람과 서양인, 중국인, 일본인이 공존하는 국제도시로 그렸다. 그러면서도 서양식 근대건축물과 전통한옥인 인천감리서, 서양식 복장의 감리서 간수와 전통복장의 죄수 간 대비가 두드러지는데.

"영화를 준비하면서 공부한 인천 개항장이란 공간에 매료됐다. 백범이 인천감리서 감옥에 갇힌 시기 인천은 1883년 제물포 개항 이후로 충돌의 에너지가 폭발하는 공간이었다고 본다. 서양과 동양이 부딪치고, 봉건시대와 근대가 부딪치고, 문명과 문명이 부딪치고, 시대와 시대가 부딪치는 속에서 인천사람들이 살았던 것이다. 당시 인천 개항장 거리의 풍경이 영화 속에서 스치듯 지나가지만, 그 충돌의 이미지를 꼼꼼히 묘사하려고 애썼다. 또 개항기 인천에서는 부조화의 이미지도 엿볼 수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준비되지 않았는데 갑자기 근대가 밀려 들어왔다. 억지로 밀려 들어오니까 조화롭지 못했다. 그래서 영화 속에는 당시 인천의 모습처럼 서양식 근대건축물 바로 옆에 누추한 판잣집 가게가 붙어있고, 양복을 입은 서양인과 누더기 한복을 입은 인천사람들이 섞여 있다. 간수들과 죄수들의 복장도 마주 서면 동시대가 맞나 싶을 정도로 차이를 뒀다. 미술감독, 촬영감독과 영화 콘셉트를 짤 때 개항기 인천이 에너지가 넘치는 공간이었다는 걸 강조했다."

인터뷰 공감
영화 '대장 김창수'에서 일본인 살해 사건으로 인천감리서에서 재판받고 있는 청년시절의 김구 선생. /딜라이트 제공

-개항장 거리, 인천감리서 감옥, 경인선 부설공사 현장 같은 영화의 줄거리를 이끄는 주요 장면은 어떻게 고증했나.

"김구 선생의 자서전인 '백범일지'는 셀 수 없을 정도로 읽었고, 인천 중구의 옛 개항장과 감리서 터 일대 답사도 여러 차례 했다. 답사는 고증을 위해서라기보다는 당시 김구 선생의 심경을 현장에서 직접 느껴보자는 차원이었다. 하지만 인천감리서 터가 표지판만 덩그러니 남아있는 점은 무척 안타까웠다. 인천 개항장이나 김구 선생에 대한 역사적 지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흥미롭게 찾아낼 수 있는 '디테일'도 영화 속에 많이 숨어있다. 영화 속 김창수가 사형 집행장으로 끌려가기 전 간수들이 옥에서 압수한 책 가운데는 실제로 그에게 신문물을 일깨워준 '태서신사(泰西新史)'를 넣었다. 경인선 부설공사 현장에서 노동자들에게 중국인이 짜장면을 나눠주는 장면도 '디테일'을 살리자는 차원에서 재현했다. '인천 제물포 살기는 좋아도 왜놈들 등쌀에 못 살겠네'라는 가사의 '인천아리랑'를 경인선 부설공사 장면에서 노동요로 쓰기 위해 고증에 공들였다." 

 

인천 인터뷰 공감  영화 대장 김창수 이원태 감독 인터뷰2

-백범의 강제노역에 동원된 것은 두 번째 옥살이 때고, 실제로는 인천항 축항 공사현장이었다. 영화 속에서는 '첫 번째 옥살이'로 '경인선 부설공사 노역'으로 바꾼 이유는.

"경인선 철도 부설은 국민들이 꼭 알아야 할 역사라고 생각해 역사적 사실을 재구성했다. 우리나라 최초의 철도가 인천과 서울을 이은 이유는 인천이 개항장이었기 때문이다. 수탈의 심장이 인천이었기 때문에 철도라는 혈관을 뚫어야 했던 것이다. 일본은 이때부터 우리나라를 완전히 자기네 것이라고 생각했다. 영화 속에도 나오지만, 우리나라 백성들이 다치고 죽고 하면서 만든 경인선 철도로 우리나라의 곡식, 광물, 일제강점기 이후로는 위안부와 강제징용 노동자까지도 일본으로 실어날랐다. 백범이 실제로 노역에 동원된 인천항 축항 공사도 의미가 크지만, 경인선이 주는 역사적 상징이 더 크다는 판단이었다."

인터뷰 공감 자료사진
영화 '대장 김창수'에서 인천감리서 감옥소장 역할을 맡은 배우 송승헌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이원태 감독. /딜라이트 제공

-소설가 김탁환과 함께 '대장 김창수'를 포함해 인천 개항장을 배경으로 하는 소설을 기획하거나 공동 집필했다. '대장 김창수' 외 다른 작품도 영화화할 계획이 있나.

"김탁환 작가와는 창작집단 '원탁'을 만들어 공동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소설·영화 '대장 김창수'에 앞서 김탁환 작가와 공동작업으로 지난해 출간한 소설 '아편전쟁'은 작품 속 배경의 99%가 인천 개항장이다. 실제 작품 기획은 '대장 김창수'가 앞섰는데, 영화 제작기간이 4년이나 되다 보니까 중간에 '아편전쟁'이라는 개항장 배경의 범죄소설을 기획했다. 그 시기 중국은 아편으로 무너지고 있었는데, 중국과 가장 가까우면서 왕래가 활발한 인천도 아편의 영향이 있지 않았을까 하는 호기심에서 시작한 작품이다. 당시 인천에만 유일하게 청나라 조계가 형성돼 있었고, 청나라 상인과 노동자들이 인천에 들어와 있었다는 역사적 사실이 '아편전쟁'이라는 역사적 상상력의 출발점이다. '아편전쟁'은 이미 영화화가 추진되고 있는데, 직접 참여할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이 외에도 인천 개항장을 소재로 한 이야깃거리 몇 가지가 머릿속에 있다."

글/박경호기자 pkhh@kyeongin.com 사진/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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