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연인]가을

권성훈

발행일 2017-11-13 제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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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은 노숙자처럼 픽 픽 드러눕는다

링거 줄 같은 햇볕 오라기들이 들판을 떠다닌다

나는 고개가 갸웃하고 새들은 표정이 희미하다

누렇게 빛바랜 잎사귀들이

이글거리던 초록을 몰아내다니

야위어 시름시름하는 가을이

그토록 살찐 여름을 단숨에 쓰러뜨리다니

이영광(19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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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성훈 (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발에 밟히는 낙엽은 자신을 다 쓰고 남은 조각들이 아닐까. 이제 더 쓸 것이 없다는 듯 후회 없이 나뒹굴고 있다. 비로소 자유로워진 가을 속으로 드러눕기도하고 떠다니기도 하면서 거침없이 풀어진 '누렇게 빛바랜 잎사귀들'의 행렬이 보이는가. '이글거리던 초록을 몰아내고' 하늘에서 내려온 훈장과 같이 깊어가는 가을비에 더욱 빛난다. 살갗이 문드러져도 두려워하지 않는 낙엽에서 언제나 할 일이 많다고 남아있는 '링거 줄 같은' 목숨 한 잎을 바람처럼 생각하며 걸었다.

/권성훈 (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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