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칼럼]외환위기 20년과 은행

이한구

발행일 2017-11-15 제13면
글자크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링크
  • 메일보내기
  • 인쇄
  • 페이스북
  • 트위터
  • 구글플러스
  • 메일전송
은행들 가계대출 치중 부채 1400조원 달해
더 심각한 것은 세계적 저금리시대 끝 보여
20년전과 같이 이자놀이 올인 서민만 고통


2017111201000813800038011
이한구 수원대 교수·객원논설위원
지금부터 꼭 20년 전인 1997년 11월 21일 밤 10시에 신임 임창열 경제부총리가 긴급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름도 생경한 IMF에 대한민국의 경제주권을 통째로 넘긴다는 선언으로서 이날은 제2의 국치일이다. 다급했던 정부는 IMF와 세계은행, 아시아개발은행, 일본, 미국 등에서 국제통화기금 역사상 최대 규모인 583억5천만 달러를 조달했다. 이 무렵 국내 금융권의 부실채권이 은행 33조1천억원, 종금사 5조1천억원 등으로 파산지경이어서 정부는 금융기관을 살리려고 IMF사태를 자초했던 것이다.

국제금융자본은 한국에 급전을 제공한 대가로 첫째 경상수지 흑자를 목표로 한율 격상과 수입억제, 외화반출 규제, 고금리정책을 요구했다. 둘째, 경제체질 개선을 위해 불건전한 금융기관 정리와 재벌 계열사 간의 채무보증 금지 및 주력업종 위주의 슬림화와 셋째, 정리해고제 도입을 통한 노동시장 유연화 등을 강요했다. 자본시장 자유화를 통한 외국인투자에 유리한 환경조성은 점입가경이었다.

천정부지의 환율에다 살인적인 고금리에도 서민들은 독립운동 하는 심정으로 금모으기 운동에 동참했다. 1997년 12월 30일 내무부가 전국 시도의 부단체장 회의에서 전 국민이 장롱 속에 깊이 감춰둔 금붙이 수집운동에 나서줄 것을 당부하면서 전국소비자보호단체협의회, 새마을운동중앙연합회, 귀금속업계와 주택은행과 (주)대우, 고려아연 등이 앞장섰다. 할머니들은 애지중지하던 금반지를, 신혼부부들은 자녀 돌반지를 내놓았다. 모금운동 한 달 만에 무려 117t가량을 모아 세계인들을 경악케 했다.

1997년 외환위기는 국내 은행들의 무덤이었다. 대마불사 신화에 도취된 은행들이 30대 재벌에 경쟁적으로 여신공세를 펴다 수익성이 악화되면서 동반부실의 늪에 빠지고 말았던 것이다. 은행들은 두 번 다시는 재벌들의 덩치를 불리는데 부역(?)하지 않겠다며 국민들에게 용서를 구했다. 정부는 금융기관을 회생시키고자 천문학적인 세금을 투입했다. 정부와 예금보험공사, 캠코, 한국은행 등이 출자와 출연 등으로 마련한 공적자금은 총 168조원으로 1998년 정부예산의 2.4배나 달하는 어마어마한 규모였다. 공적자금의 대부분은 재벌들의 자금줄이던 우리, SC제일, 하나, 국민, 신한, 시티은행 등의 심폐소생을 위해 투입했다. 그러나 금년 상반기까지 총 115조2천억원이 회수됐을 뿐 미수금 50여조원은 납세자 몫이다.

지표로만 보면 작금의 경제상황은 20년 전보다 나아졌다. 외환위기 직전인 1996년 외환보유액은 332억 달러에 불과했으나 지금은 4천억 달러에 육박한다. 기업의 부채비율도 1997년 말 425%에서 100% 이하로 축소되었으며 은행의 건전성도 많이 개선되었다. 그러나 은행들의 영업행태를 보면 크게 실망이다. 은행의 대출자산에서 제조업의 비중은 1995년 40%에서 2001년에는 24.6%로 급락했는데 이런 추세는 최근까지 이어지고 있다. 반면에 가계대출 비중은 같은 기간에 27.1%에서 44.1%로 두 배 가량 증가했다. 가계부채가 눈덩이처럼 불러난 이유이다. 20년 전에는 기업부채가 화근이었지만 지금은 1천400조원으로 뛴 가계부채가 한국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이다. 가계채무 증가세가 가처분소득 성장세를 상회하면서 20년 전보다 가계부채는 양뿐만 아니라 질도 좋지 않다는 지적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세계적으로 저금리시대가 끝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은행들은 표정관리하기 바쁘다. 시중은행들은 금년 상반기에 이어 3분기에도 사상 최대치 실적을 경신한 것이다. 그러나 내용을 보면 20년 전과 똑같이 이자놀이가 전부이다. 자본자유화시대에 부합하는 해외시장 개척 내지 신사업 발굴 등 국민적 여망은 외면한 채 주택담보 대출에 올인 한 결과이다.

뒷간 찾을 때와 다녀온 후가 다르다는 옛말이 하나도 그르지 않다. 재벌들에 뒷돈 대주지 말라했더니 대신에 고단한 서민들의 뒷덜미를 잡은 것이다. 작금의 내수경기 부진에 은행들의 책임이 가볍지 않다. 땅 짚고 헤엄치는 시중은행들을 보노라면 본전 생각이 간절하다.

/이한구 수원대 교수·객원논설위원

이한구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