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천년]아픔의 땅 한반도 중원, '평화'를 노래하다

동두천 연천 포천 양주… '경기북부의 메아리'

공지영 기자

발행일 2017-11-20 제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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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전방 군사접경지 70년 '개발 규제' 희생 속
의도되지 않게 지켜낸 '자연' 보존 목소리 커
DMZ 도로·휴전선 플리마켓·랜드마크 설립…
'통일 한국 중심도시 변신' 즐거운 상상 쏟아져
기지촌등 '기억해야할 아픈유산' 가치개발 고민
대중교통·문화·교육인프라 확충 '현안' 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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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북부지역은 한국 현대사의 아픈 손가락이다. 한국전쟁 후 한반도 중앙을 가로지르는 휴전선이 그어졌다.
국토의 '중원'이었던 경기 북부는 한반도에서 가장 예민한 땅, 최전방 군사접경지역이 됐다.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만큼 줄기차게 억압받았고 차별받았다.

경기문화재단이 진행 중인 경기천년플랫폼 '찾아가는 워크숍'에서 만난 동두천, 연천, 포천, 양주의 시민들은 옛 이야기를 떠올리는 것이 힘겨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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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문화재단 경기천년플랫폼 '찾아가는 워크숍'을 통해 연천, 양주, 동두천, 포천 등 경기 북부 도시의 시민들을 만났다. 어떤 도시보다 열정적으로 도시의 미래를 설계하고 있는 시민들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공지영기자 jyg@kyeongin.com

동두천은 미군 부대가 주둔했다. 지금은 평택으로 미군기지가 대부분 이전했지만, 지난 세월 주한미군의 본거지 역할을 해왔다. 미군 부대 주변에 형성된 기지촌은 현대사의 가슴 아픈 비극이다. 연천 주민들은 밤낮으로 울려대는 포격 소리에 이골이 났다.

지금은 많이 나아졌다지만, 불과 2년 전 만해도 북한군의 포격과 이에 대응하는 우리 군의 포격이 있었다. '군사 도발' '강력대응' '전쟁 임박' 등 미디어가 위기설이 쏟아낼 때마다 연천 주민들의 마음 속엔 서늘한 공포가 떠오른다. 포천에서는 '탕탕탕' 울리는 총소리를 들으면서 생활한다.

포천시에 위치한 미군사격훈련장인 '로드리게스 사격훈련장(영평사격장)'에서 밤낮을 가리지 않고 사격훈련을 하기 때문이다. 심심찮게 사격장 인근 지역으로 튀어나오는 탄환들도 주민에겐 공포의 대상이다.

어쩔 수 없는 '희생'이라 덮어두기엔 70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그들만 너무 무거운 짐을 이고 있었다. 분명한 건 그 희생을 바탕으로 전쟁 폐허였던 한반도에 한강의 기적이 일어났고, 선진국의 윤택한 삶을 누리고 있다는 점이다. 새삼 마음이 무겁고 머리가 숙여진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워크숍에서 만난 경기북부 시민들 모두 내가 사는 도시에 열정과 사랑을 쏟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그동안 찾은 어떤 도시보다 강렬했다. 무엇보다 그들은 가장 설레고 다양한 '꿈'을 꾸고 있다.

■꿈 꿀 것이 많아 행복한 북부

북부 도시들의 과거와 현재를 미루어 볼 때 흔히 말하는 '도시 개발이 쉽지 않았다'는 걸 짐작할 수 있다. 대부분이 북한과 살을 맞대며 대치하는 접경지역이기 때문이다.

북부 시민들은 도시 개발이 되지 않았다는 점을 요즘에 들어서는 다행으로 여기고 있다. 의도하진 않았지만 개발되지 않아 살아남을 수 있었던 천혜의 자연을 보존해야 한다는 목소리들이 높았다.

한탄강 권역 주민들이 참여한 포천의 워크숍에서는 "중3리 벌판에 편백나무 숲을 조성하자" "한탄강 주변의 자연 경관을 보존해야 한다" "지장산을 보존하자"는 의견이 나왔다.

더불어 '한탄강 둘레길 조성' '자연 친화적 펜션 건립' '포천 생태공원' 등 자연과 공존하며 살 길을 찾는 방안들도 함께 모색했다. 특히 축산업을 개선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

아예 축산단지를 반대하고 시민 공원을 조성해야 한다는 강경한 입장도 있었고 무분별한 축사 건립을 막기 위해 축산단지를 건립해 규제를 두고 환경을 지키자는 온건한 입장도 공존했다.

양주 워크숍에서는 '자연을 해치지 않고 위로 뻗은 도로' '물질적 가치보다 삶의 풍요로움을 중시하는 도시' '전통이 보존되는 정책 수립' 등 현재 양주가 가지고 있는 자연과 전통문화를 보존하면서 도시의 발전을 꿈꾸는 의견들이 다수였다.

동두천은 아프지만, 그 역사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시민들은 '기지촌의 역사를 잊지 않기 위해 관광특구 조성' '미군부대 주변 원시림에 가까운 자연환경을 활용한 둘레길 조성' '미군 부대 주변 유흥시설인 몽키하우스, 동방극장 등 미군부대 역사문화관광지 조성' 등을 요구했다.

워크숍을 찾은 동두천 시민은 "그럴듯한 신도시나, 공장이 들어오는 것도 좋지만, 10만명이 옹기종기 모여 사는 동두천의 지금 모습도 귀한 풍경이다. 자연 뿐 아니라 옛 건물도, 근현대의 아픈 기억을 가진 장소도 그대로 보존하자"고 말했다.

소외됐던 그간의 세월이 무색할 만큼, 주민들은 평화적인 발전을 원했다. 개발의 광풍에 휩쓸리지 않고 도시의 자연이 지켜졌다는 것에 감사했고, 미래에도 훼손되지 않기를 소원했다. 또 다른 꿈은 '통일 도시'였다. 북부의 희망은 아무래도 '통일'이다.

통일이 되면 최전방 군사지역은 다시 중원으로 돌아갈 테니. 시민들은 통일된 한국의 중심 도시가 되는 상상을 매우 즐거워했다. 기발한 아이디어들도 솟구쳤다.

워크숍을 통해 방문한 북부 도시 모두가 '통일수도'를 꿈꾸었는데, 연천에서는 "통일 이후 군부대가 사라진 연천에서 살고싶다"는 소박한 희망에서부터 'DMZ 도로 연결 ' '통일 대한민국 수도에 걸맞은 행정시설 건립'과 "휴전선에서 플리마켓을 열어 김정은이 율무를 사갔으면 좋겠다"는 재밌는 이야기들이 오갔다.

양주에서도 '통일 이후 경기도청과 대학 등 주요 시설들이 양주로 이전' '북한으로 통하는 최첨단 통일도시' 등의 의견이 나왔다. 동두천 시민들은 '통일 후 금강산 수학여행지의 출발지' '동두천에 통일을 상징하는 랜드마크 설립' 등을 꿈꿨다.



모든 분야에서 인프라가 부족하기 때문에 다른 지역보다 당장 해결해야 할 숙제들이 많았다. 공통적으로 교통과 문화, 교육 인프라 부족을 호소했다. 대부분 지역에서 지하철, 버스 등 대중교통 확대개선을 요구했고 종합병원과 같은 의료시설 부족과 학교, 도서관 등 기본적인 교육 인프라 확충을 강력하게 이야기했다.

특히 문화공간에 대한 불만이 빗발쳤다. 도서관, 미술관, 공연장 같은 문화시설은 물론이고, 마을 사람들이 함께 어울릴 수 있는 공동체 문화시설도 거의 없다는 게 주민들의 설명이다. 또 '무능력한 공무원' '행사때만 찾아오는 관료주의 정치인' '편중된 도시 개발' 등을 비난하기도 했다.

지역마다 안고 있는 문제들도 산적해있다. 포천은 사격장과 소각장, 축사 등을 철수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 연천은 문화 인프라에 대한 갈망이 컸는데 영화관이 없어 영화를 볼 수 없는 지역 주민을 위해 '작은 영화관 설립'이나 '청소년 문화센터' '거리마다 피아노 설치' 등 문화 예술을 사랑하는 도시로의 변화를 건의했다.

동두천 시민들은 미군이 주둔했던 구 시가지에 대한 피해의식을 버리고 근현대사의 문화유산으로서 그 가치를 개발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하는 것이 화두였다. 과거 '천두동(동두천을 거꾸로 부르는 말)'이라 바꿔 말할 만큼 동두천 신 시가지는 구 시가지를 터부시했다.

이번 워크숍을 통해 미처 알지 못했던 두 공간의 이야기가 오랜 시간 오갔다. 많이 고개를 끄덕였고, 놀라기도 했다. 그 날 시민들은 경기천년과 상관없이 다시 만날 것을 약속했다. '두 달에 한번 정기모임' '빠진 달은 번개 모임'. 2가지 규칙을 가진 동두천 시민 모임이 결성됐다.

더 많은 공감과 소통이 이루어질 것이다. 새로운 경기 천년의 꿈도 아마 이런 것일 게다.

/공지영기자 jyg@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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