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아폴로 하이웨이의 귀환

정진오

발행일 2017-11-30 제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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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고속도로, 아폴로 11호 달 착륙한 날 '개통'
50년 달려온 도로 일반도로로 전환 인천시 관리
엄마품 같은 仁川에 돌아왔으니 탈바꿈 시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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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오 인천본사 정치부장
경인고속도로가 일반도로로 전환하는 12월 1일부터 자동차 제한 속도가 100㎞에서 80~60㎞로 낮아진다는 걸 알리는 현수막이 얼마 전부터 인천 시내 곳곳에 나붙었다. 출퇴근 시간마다 교통체증에 시달리면서도 통행료를 꼬박꼬박 물어야 했던 경인고속도로가 이제 인천 시내 도로가 된다는 거다. 개통한 지 벌써 50년이 다 되었다. 1973년에 나온 '인천시사'를 펼쳤다. 1969년 7월 21일(시사에는 20일로 돼 있음) 개통했는데 이날은 마침 미국의 유인 우주선 아폴로 11호 승무원들이 달에 착륙한 날이었다. 그리하여 경인고속도로는 미국인들의 달 착륙을 기념하여 정말 어처구니없게도 '아폴로 하이웨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그해 8월에는 인천항으로 들어온 아폴로 11호 모형이 경찰의 에스코트를 받으면서 '아폴로 하이웨이'를 거쳐 서울로 가서 퍼레이드를 벌였다는 신문기사도 있다. 대한민국의 경인고속도로가 미국의 도로가 된 듯한 느낌이다.

세계 최강을 지향하던 미국은 우주 개발 경쟁에서 소련에 선두를 빼앗긴 뒤 10년여 만에야 아폴로 우주선 달 착륙으로 만회할 수가 있었다. 미국인들이 기뻐해야 할 사건을, 마치 우리가 미국인이라도 되는 양 최초의 고속도로 이름에 '아폴로'를 붙였다. 건설부가 명명한 그 이름은 '하이웨이 아폴로'라고 쓰기도 했다. 아무튼 '아폴로 하이웨이'가 우리의 자존심을 많이 상하게 했는지, 인천시가 그동안 발간해 온 시사(市史)에서는 어느 순간 그 이름이 사라졌다. 1973년에 나온 시사에 처음 등장한 '아폴로 하이웨이'라는 경인고속도로의 새로운 이름은 1982년과 1993년 발간된 시사에는 등장하는데 그 이후 나온 시사에서는 별다른 설명 없이 그냥 빠져버렸다. 경인고속도의 수명이 50여 년 만에 다하는 마당에 이와 관련하여 무척 흥미로운 대목이 아닐 수가 없다.

우리나라 고속도로 사업의 시작을 알린 경인고속도로 이전에는 도로의 포장 공사도 미군이 맡아서 했다. 인천에서 서울을 오가는 도로는 '서울~인천 선(線)'으로 불렸다. 바로 '경인로'다. 한국전쟁이 끝난 직후인 195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이 경인로를 비롯한 모든 도로의 아스팔트 포장 수리 업무는 미군이 담당했다. 인천시와 경기도의 예산으로 경인로의 아스팔트 포장 사업을 벌이기 시작한 게 1955년 즈음부터다. 그것도 '이승만 대통령 각하의 분부'에 의해서였다. 도로 포장 사업도 대통령 지시가 있어야 이뤄지던 그런 시절이었다. 거짓말 같은 이 이야기는 1956년도에 발간된 '경기도지(京畿道誌)'에 나온다.

경인고속도로에 얽힌 옛날 얘기를 하는 것은 이 도로가 주는 의미가 남다르기 때문이다. 경인고속도로의 착공과 개통이 국가 산업 발전에 획기적인 전기를 마련해 주었다는 점은 부인할 수가 없다. 그렇게 50년을 달려온 경인고속도로가 이제 인천시의 관리 아래 들어온다. 바로 이 순간, 경인고속도로는 인천은 물론이고 대한민국 도로의 상징 아이콘으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 아폴로 우주선이 소련에 빼앗겼던 미국의 자존심을 되찾아 주었듯이, 엄마 품 같은 인천에 귀환한 '아폴로 하이웨이'는 이제 우리에게도 새로운 자랑거리가 돼야 한다. 인류의 달 착륙만큼이나 획기적인 '경인고속도로의 탈바꿈'을 인천에서 만들어 내자. 그것이 바로 진정한 의미의 '아폴로 하이웨이'의 귀환이 될 터이다.

/정진오 인천본사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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