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황제의 생선 '웅어'

곽미숙

발행일 2017-12-13 제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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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미숙
곽미숙 경기도의원(한·고양4)
웅어는 예전 임금님의 수랏상에 올라가던 식감 좋은 생선으로 조선시대 말기에는 한강 하류인 고양 행주에 사옹원(司饔院) 소속의 '위어소(葦漁所)'를 두어 웅어를 잡아 왕실에 진상하게 했다. 웅어는 수심이 낮은 물에서 잘 자라는 갈대 속에 많아 갈대 '위(葦)'자를 써서 위어(葦魚), 우리말로 갈대고기라 불린다. 행주 위 해주에서는 '차나리', 의주에서는 '웅에', 강경에서는 '우여', 충청지방에서는 '우어'라고 불린다. 웅어는 1500년 전 백제 의자왕부터 조선시대 고종황제까지 보양식으로 즐겼던 생선이다. 웅어는 몸체가 가늘고 길며 옆으로 납작하며 머리가 작고 칼처럼 생겼다. 은백색으로 몸을 치장하고 몸길이는 30㎝까지 자란다. 봄철인 4∼5월에 바다에서 하천의 하류로 거슬러 올라와 갈대가 있는 곳에서 6∼7월에 산란한다. 부화한 치어는 가을까지 바다로 내려가 겨울을 지내고 이듬해 성장해서 다시 태어난 곳으로 돌아온다.

고양시의 대표적인 먹을거리요, 자랑거리로 행주웅어회가 꼽힌다. 예전에 황제가 드시던 진상품 중의 하나라는 소문이 널리 알려져 봄철이면 그 유명세로 홍역을 앓는다. 웅어는 성질이 급해 잡히면 바로 죽어버리기 때문에 신선도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 바로 머리와 내장을 분리해서 얼음 속에 넣어놓는다. 부패하기 쉬운 멸칫과 생선인 웅어가 임금님께 진상이 가능했던 것은 임금님이 계신 한양 도성과 가까운 한강 하류인 고양에서 잡혔기 때문이라고 한다. 웅어회는 살이 부드러우면서도 씹는 질감이 독특하고 지방함량이 높아 고소하기까지 하다. 고소함이 전어와 사촌격이라 불리는 이유다. 그런데 익혀서 먹을때는 웅어의 맛을 즐길 수 없는 무미한 단점도 있다. 필자가 어린시절 개나리, 진달래꽃이 필 무렵이면 한강하구 행주산성 부근에서는 웅어잡이가 한창이었다. 이곳을 찾아 천렵을 하며 따뜻한 봄날을 지내며 호시절을 보내는 분들도 많았다. 진경산수화의 대가 겸재 정선의 '행호관어(杏湖觀漁)'라는 그림은 옛날의 웅어잡이의 정취가 잘 묘사돼 있다.

웅어는 근대시대까지도 한양의 일미 중 하나였다. 조선시대 후기 '동국세시기'에는 '늦은 봄에, 궁궐음식을 준비하는 사옹원 관리들이 강에 그물을 던져 웅어를 잡아다 도성에 진상한다. 생선장수들은 거리를 돌며 횟감으로 좋은 웅어를 사라고 소리치며 웅어를 팔고있다'고 기술돼 있다. 평민이나 관리나 임금이나 서민이건 부자건 간에 웅어는 신분의 지위고하를 불문하고 인기있던 기호식품이었음을 알수 있다. 웅어의 인기가 폭발적으로 높았으니 임금님이 계신 궁궐은 수랏상에 올리기 위해 위어소를 두어 직접 웅어를 관리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한강 하류인 행주산성 바로 옆 한강 하구는 강폭이 넓고 바닷물과 민물이 서로 교차하는 지역으로 품질좋은 웅어가 많이 나오는 곳이다. 필자는 고양 행주산성 부근 음식점에서 웅어를 자랑하며 나오는 말 중에 듣기 좋은 것이 "여기서 잡힌 웅어가 황제에게 진상되던 별미 음식이라는 것"이다. 고양시민의 한사람으로서도 웅어가 자랑스럽고 사랑스럽지 아니할 수 없는 대목이다. 과거의 정겹던 정취를 찾아 고양의 한강 하류를 지나갈 일이 있다면 그 옛날 호국의 일념으로 부녀자들이 행주치마에 돌을 담아 던지던 행주산성을 둘러보며 우리나라 대한민국의 소중함을 가슴깊이 새겨보고 행주산성 부근 웅어의 명산지에서 고소함의 별미를 즐겨보는 것은 어떨까?

/곽미숙 경기도의원(한·고양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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