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공감]생애 첫 수필집 '뜨거운 빙수' 펴낸 이영옥 수필가

"숨어서 울 곳 찾다가 글을 만나… 숨구멍이자 위로였다"

김성호 기자

발행일 2017-12-06 제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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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인터뷰 첫 수필집 낸 이영옥 작가
생애 첫 수필집을 펴낸 이영옥 수필가가 불과 며칠 전까지 기간제 청소 노동자로 일해온 인천대공원 메타세쿼이아길을 걷고 있다. 그는 "삶의 흔적을 있는 그대로 고스란히 써 놓고 보니 발가벗은 듯해 부끄럽기도 하다"며 "글을 읽고 한 두 명이라도 공감할 독자가 있다면 좋겠다는 마음이 지금의 솔직한 바람"이라고 밝혔다.

평범했던 삶 '문학 소녀의 꿈을 이루세요' 공모전 문구에 마음 움직여
입상 후 일기 대신 습작… 매달 2~3편씩 300여편 노트 20여권에 담아
이혼하고 싶은 마음·경제적인 고통도 펜으로 풀어… 일터와 집이 글감
창피한 내용이지만 글쓰기는 삶의 일부… 정년도 없어 평생하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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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지 않고도 살 수 있을 거라 믿는다면, 글을 쓰지 마라.

-라이너 마리아 릴케


매일 작업하지 않고 피아노나 노래를 배울 수 있습니까.

어쩌다 한 번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은 결코 없습니다.

-레프 톨스토이


작가의 재능이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희귀하지 않다.

오히려 그 재능은 많은 시간 동안의

고독을 견디고 계속 작업을 해 나갈 수 있는 능력에서

부분적으로 드러나기도 한다.

-리베카 솔닛

학창시절 수많은 문학소년·소녀들이 글을 쓰는 작가가 되는 꿈을 꾼다. 하지만 그렇게 꿈을 꾸는 이들이 오래도록 그것을 간직하고 실제 이루는 경우는 결코 흔하지 않다.

사는 게 바쁘고 힘들어서, 먹고 산다는 일이 결코 녹록지 않다는 이유 등으로 대개는 그 꿈을 포기하고 글쓰기와 담을 쌓은 채 산다.

글을 쓰는 것은 특별한 사람들이나 하는 일이라고, 글을 쓰지 않고 살아도 평범한 삶의 범주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고 자신을 위로하면서 말이다.

그 흔하디흔한 문학 소년·소녀들이 그렇게 하나둘 사라져 가는 것일지도 모른다.

인천에서 30년 가까이 산 이영옥(56)씨도 학창시절 문학소녀였다고 했다. 그는 "적어도 환갑이 될 즈음이면, 내 글로 채워진 책 한 권쯤을 세상에 내놓겠다"고 마음 속으로 다짐했었다고 한다.

그는 그 꿈을 잊지 않았고 계속 글을 썼다. 마침내 자신의 이름으로 된 첫 수필집을 세상에 내놓으며 그 꿈을 이뤘다.

공감 인터뷰 첫 수필집 낸 이영옥 작가

20여년을 '커피 아줌마'로, 최근에는 인천대공원에서 기간제 청소 노동자로 일해온 주부 이씨가 펴낸 수필집 '뜨거운 빙수'(에세이문학출판부 刊)는 평범한 이들이 잊고 사는 꿈을 이뤄낸 결과물이라는 점에서 특별해 보인다.

지난 3일 오후 불과 며칠 전 까지 자신이 일했다는 인천대공원에서 그를 만났다.

첫 에세이집을 펴낸 소감을 묻자 이씨는 "어쭙잖은 글들이 활자화되니 가슴 벅차기도 하고 떨리기도 한데, 삶의 흔적을 있는 그대로 고스란히 써 놓고 보니 발가벗은 듯해 부끄럽기도 하다"며 "글을 읽고 한두 명이라도 공감할 독자가 있다면 좋겠다는 마음이 지금의 솔직한 바람"이라고 말했다.

그는 "누구에게나 글을 쓰는 이유가 있고 저마다 그 이유는 다르겠지만, 특히 나에게 글쓰기는 숨구멍이자 삶의 위로였고, 힘들 때 다시 일어서게 한 이유가 됐다"며 "숨어서 울 곳을 찾다가 글을 만났고, 사는 것이 힘들어 앞날이 아득해지고 캄캄할 때 펜을 들고 노트를 펼치곤 했던 것이 작품집이라는 결실로 이어져 기쁘고 설렌다"고 말했다.

1961년 충청남도 보령에서 태어난 그는 농사를 짓는 평범한 가정에서 자랐다. 상업고등학교를 나와 3~4년 직장일을 하다 남편을 만나 결혼하고, 결혼과 동시에 일을 그만두고 집안일을 전담하며 평범한 삶을 살았다.

그러던 그가 본격적으로 글을 쓰게 된 것은 1994년 동서커피문학상(현 동서문학상)에 입상하면서였다. 이전까지 그의 글쓰기는 일기 쓰기가 전부였다고 한다.

인천에 있는 동서식품에 다니던 때였는데, 전업주부이던 그는 남편의 사업 실패로 1992년부터 그곳에서 20여년 넘게 '커피 아줌마'로 일했다. 대형 마트나 소매점에서 판촉 행사를 하는 일이었다.

"어느날 커피문학상 공모 포스터가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정확한 문장은 기억이 나지 않는데, 여고 시절 문학 소녀의 꿈을 이루려면 도전하라는 내용이었죠. 여고 시절 책을 써야겠다는 꿈이 생각났고, 바로 시아버님께 아침마다 커피를 타고 마시며 나눈 이야기들을 글로 써 며칠을 고쳐 '아버님과 커피'라는 작품을 보냈죠."

결과는 입상이었고 입상하고 나자, 매일 쓰던 일기 대신 본격적인 습작이 시작됐다. 같은 해 인천노동자예술제에 보낸 수필이 상을 받기도 하며 그는 방송통신대학교에도 진학해 꿈을 키워갔다.

힘든 직장생활과 남편의 방황에도, 힘든 경제적 여건 속에서도 그는 펜을 놓지 않았다. 자신의 일을 글로 쓰고 나면 마음이 정리되고, 그러고 나면 고통도 이겨낼 만한 일들이 됐다고 한다.

사업에 실패하고 무력한 삶을 이어가는 남편을 더는 지켜볼 수 없어 이혼을 결심하던 때도 많았는데, 그때마다 남에게 말 못할 이야기를 나에게 글로 쓰면 이내 풀렸다.

"하루는 이혼을 작심하고 차분히 글로 남편의 장점과 단점을 정리해 봤어요. 결국 단점보다는 장점이 많은 사람이었고, 그 단점도 결국엔 장점이더라고요."

피아노를 갖고 싶어 하던 딸 아이가 디지털 피아노를 사려고 모은 용돈을 고등학교 수업료로 내야 했을 정도로 경제적으로 힘든 상황에서도 글쓰기가 있어 이겨낼 수 있었다.

그는 그렇게 매달 2~3편의 에세이를 완성하려고 노력했고 모두 노트에 남겼다. 그렇게 쓴 300여편의 작품이 20여권의 노트에 남아있는데 이젠 그만의 보물이 됐다.

"물론 다시 돌아보면 작품이라고 하기에 창피한 것들이 대부분이지만, 글 쓰기는 제 삶의 일부였던 것 같습니다."

그에게는 언제나 일터와 집에서 일어난 일들이 주로 글감이 된다.

때문에 그의 글에서는 커피향이 나는 것 같기도 하고, 이른 새벽 공원의 숲 속 향기가 느껴지기도 하고, 출퇴근길 도로 위의 자동차 배기가스 냄새가 나기도 한다. 물론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아픔도 드러난다. 그렇게 쓴 47편의 작품이 이번 수필집에 담겼다.

그는 자신의 첫 수필집을 두고 "발가벗은 듯 부끄럽다"고 했지만, 엄마를 자랑스러워하는 그의 딸은 엄마의 첫 시집에 한 컷 한 컷 삽화를 그려 넣으며 용기를 줬다.

첫 작품집을 펴낸 그의 바람은 딱 한가지다. 평생 글을 쓰는 것.

"다른 일에는 정년이 있지만, 글을 쓰는 일에는 정년이 없다고 생각해요. 글쓰기가 일이 아니고 삶이어서 그렇기도 하겠지만요."

글/김성호기자 ksh96@kyeongin.com 사진/임순석기자 sseok@kyeongin.com

공감 인터뷰 첫 수필집 낸 이영옥 작가

■이영옥 수필가는?

▲충청남도 보령 출생(1961년)

▲황교초등학교·웅천중학교·군산여자상업고등학교·한국방송통신대학교 국어국문학과

▲1994년 동서커피문학상 입상

▲2006년 <에세이문학>겨울호 '갑골 무늬를 찾아서'로 등단

▲에세이문학작가회·동서문학회 회원으로 활동

▲첫 수필집 '뜨거운 빙수'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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