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따뜻한 연말이 그립다

박상일

발행일 2017-12-07 제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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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기 바빠서·가정 중요해서… ‘건조해진 만남’
가장 큰 이유 ‘내’가 더 중요해졌기 때문 아닐까
한국의 큰 힘 중 하나인 ‘우리’가 무너질까 걱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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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일 경제부장
벌써 연말이다. 달력을 한 장 더 넘기면서도 의식하지 못하다가, 엊그제 찾아간 나혜석거리 광장에서 커다란 크리스마스 트리를 맞닥뜨리고서야 연말임을 실감했다. 그러고 보니 달력에 약속도 촘촘하게 들어차기 시작했다. 바야흐로 '송년회 시즌'이 돌아온 것이다.

12월은 식당과 술집들이 연중 최고로 꼽는 성수기다. 예약이 넘치고 매상도 쭉쭉 오르는 행복한 달이다. 한 잔 얼큰히 취한 손님들이 많아지면서 대리기사와 택시기사들까지 한결 바빠지는 시즌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즈음에 술을 한 잔 마시고 대리기사를 부르거나 택시를 타면 슬쩍슬쩍 물어보곤 한다. "요즘은 손님 좀 있죠?" 보통은 돌아오는 대답이 "요즘엔 쪼금 할만합니다"쯤 된다. 택시기사 얼굴에 웃음이 번지면 그다음부터는 화기애애하게 이야기를 나누며 집까지 가곤 한다. 택시기사나 손님이나 서로 기분이 좋은 시간이다.

엊그제도 12시가 좀 넘어 택시를 잡았다. 평소 같으면 곧바로 택시가 잡혔겠지만, 좀처럼 택시가 오지 않아 추위와 싸우며 10분이 넘게 기다렸다. 택시에 앉으며 "어휴~ 연말이라 택시가 금방 안잡히네요. 요즘 손님 좀 있죠?"라고 이번에도 슬쩍 한마디를 던졌다. 그런데 돌아온 대답이 영 시원치 않았다. "뭐, 저녁에 잠깐 반짝하고는 손님 하나도 없습니다."

예상했던 대답이 아니라 잠깐 당황했다. "연말인데 한잔 드신 손님들 많지 않나요?" "다들 10시면 집에 돌아가기 바쁘고 11시면 거의 끝납니다. 저기 택시들 기다리는거 안보이세요?" 가리키는 곳을 보니 큰길 가 택시정류장에 택시들이 줄지어 서 있다. 바로 인근이 먹자골목인데 택시정류장 앞은 썰렁했다. 택시 밖에 나와 담배를 피워 문 택시기사도 눈에 들어왔다. "그렇군요, 큰일이네요…"

곰곰이 생각해 보니 요즘 밤 풍경이 예전 같지 않다. 밤 10시가 넘으면 서둘러 문을 닫는 식당들이 많아졌고, 야간 손님이 많은 먹자골목도 자정이 되기 전부터 파장 분위기가 난다. 택시기사 말처럼 밤 11시면 술자리들이 끝나는 셈이다. 식당들 매출도 예전 같지가 않다고 한다. 적당히 먹고 적당히 빨리 끝내기 때문이다.

모임이나 술자리가 일찍 끝난다는 것은 가족의 입장에서야 환영할 일이겠지만, 마치 '숙제'를 끝내듯 서둘러 모임을 정리하고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 뭔가 쓸쓸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일찍 끝나고 늦게 끝나고의 문제가 아니라, 중요한 무언가가 빠진 것 같은 허전한 느낌, 껍데기만 남은 느낌, 건조해진 느낌이랄까.

살기가 바빠서, 가정이 중요해서, 건강을 생각해서, 다음날 할 일이 걱정돼서…, 만남이 허전하고 건조해진 '이유'를 굳이 들자면 금세 머리에 떠오르는 것만도 여러 가지를 꺼낼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냉정하게 따져볼 때, 가장 큰 이유는 '우리'보다 '내'가 더 중요해진 때문이 아닐까 싶다. '내'가 중요해지다 보니 그만큼 손해보려 하지 않고, 내어주려 하지 않고, 피곤하려 하지 않는다. 어디서부터 잘못됐는지는 모르겠지만, 한국이 가진 가장 큰 힘 중 하나라는 '우리'가 무너지는 게 아닌가 걱정이 앞선다.

누군가와 소주를 한 잔 하고 집으로 돌아가면서 가슴이 따뜻했던 적이 언제였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진심으로 좋아서, 진심으로 즐거워서 하는 만남이 그만큼 줄어들었다는 얘기다. 나 스스로도 남에게 가슴을 내어 보이지 않았다는 자책도 해 본다.

어쨌든 12월이다. 한 해를 돌아보면서 그동안 소흘했거나 아쉬웠던 만남을 따져보고 부족했던 것을 메꿔야 할 시기다. 선후배나 동료들과도, 친구들과도, 떨어져 살고 있는 가족들과도 따뜻한 가슴을 나눠야 하겠다. 그래야 2018년을 열심히 살아갈 힘이 생길테니까.

/박상일 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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