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 미군과 인천

[주한 미군과 인천·(4)주민 삶 파고든 PX경제]물자 빼돌리고 훔치고 '양키시장' 형성

1950년대말 군수품 60% 유출
항만 주변·부평 애스컴 중심
옷·식품·건축재등 지역 퍼져
중앙시장 명성 양면적 영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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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을 맞은 뒤 미군이 남한을 다스렸지만, 서민들의 경제사정은 일제강점기와 다를 바 없었다. 미군정이 일본의 행정·경제·사회 시스템을 그대로 갖다 썼기 때문이다. 해방의 기쁨은 잠시였고, 곧 혼란기가 시작됐다. 뒤이은 한국전쟁으로 민생은 나빠질 대로 나빠졌다.

너나없이 주린 배를 움켜쥐고 살던 시절, 인천 도심 한복판을 차지한 미군부대에 수많은 사람이 밥줄을 걸었다. 미군부대에서 근무한 인천 사람도 많았다. 미군부대 PX(Post Exchange·군 매점) 물자가 시중으로 흘러나와 '양키시장'을 형성하기도 했다.

특히 인천은 인천항과 부평 애스컴(ASCOM·주한미군 군수지원사령부)을 중심으로 한 주한미군 군수보급기지였다. 인천항과 항만 주변 PX창고, 애스컴을 비롯해 미군 물자가 빠져나올 경로가 많았다.



인천 미군부대에서 일한 한국인 근로자나 미군 병사를 상대한 여성들에 의해 미군 물자가 새는 경우도 있지만, 조직적인 암거래 또한 성행했다.

미군 병사가 유흥비를 마련하기 위해 물품을 유출하기도 했다. 의류, 통조림, 담배, 커피, 화장품은 물론 건축자재까지도 미군부대에서 나온 'Made in USA'를 인천 바닥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부평 애스컴 내 폐품처리장에서 나온 빈 깡통들을 펴서 지붕을 만든 판잣집도 있었다고 한다.

서울신문사가 1979년 펴낸 '주한미군 30년(1945~1978년)'을 보면, 1950년대 말 전국 미군부대 PX에서 취급하는 물자의 60%가 시중에 유출됐다고 추정했다. 인천 출신 소설가 이원규가 유년시절 경험을 바탕으로 1993년 쓴 중편소설 '까치산의 왕벌'에는 인천 미군부대 보급물자를 빼돌리는 장면이 나온다.

'항만에서 보급품을 가득 싣고 나온 트럭들이 이삼십 리쯤 인천시내를 뚫고 지나가는 동안 적어도 십여 군데에서 눈독을 들이고 덤비게 마련이다. 그중 까치산 고개는 숭의동 왈패들의 정해진 공격 장소였다. 고개를 올라가느라 차들이 기를 쓰며 숨을 헐떡이는 순간 벌떼처럼 달려들어 순식간에 상자를 훔쳐 달아나곤 했다'.

인천항과 남구 용현동에 있던 미군 유류저장소(POL)를 잇는 송유관에서 목숨을 걸고 몰래 기름을 빼내는 사람들도 있었다. 1957년에는 용현동 유류저장소로 연결되는 송유관에 올라앉은 3살짜리 아이를 미군이 기름 도둑으로 오해하고 총격을 가해 아이가 숨지는 비극이 빚어질 정도였다.

미군부대를 빠져나간 각종 물자는 시장에서 거래됐다. 1930년대 동구 배다리 인근에 형성된 중앙시장(송현 자유시장)은 미군 주둔 이후부터 1980년대까지 미군 물건을 취급하는 '양키시장'으로 명성을 떨쳤다.

전쟁 후 1950년대 후반까지도 옷감이 부족해 국산 양복이 흔치 않았는데, 미군 군복을 염색해 양복처럼 고쳐 입는 일명 '마카오 복지(服地)'가 양키시장에서 가장 잘 팔렸다고 한다. 인천사람들 삶에 파고든 미군부대 PX물자가 지역경제에 끼친 영향은 좋든 나쁘든 매우 컸다.

미군부대가 일상 가까이에 있던 시절을 산 사람들은 미군을 '애증의 시선'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박경호기자 pkhh@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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