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 미군과 인천·(5)미군 기반 성장한 기업]군수품 수송한 한진 '인천판 아메리칸 드림'

박경호 기자

발행일 2017-12-12 제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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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로 쓰러진 회사 재기… 베트남전 거쳐 재벌 반열에
한화 등 대기업들 미군정 귀속한 日공장 운영하며 창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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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도심 한복판을 꿰찬 미군기지를 보고 '아메리칸 드림(American Dream)'을 꿈꾼 기업가들이 인천에 있었다. 인천에서 태동한 한진그룹의 창립자 조중훈(1920∼2002) 회장이 그중 한 명이다. 일제강점기 일본인이 경영했던 인천지역 공장을 미군으로부터 인수받아 사업의 기틀을 다진 대기업도 여럿이다.

한진그룹 조중훈 회장은 1945년 인천 중구 해안동의 한 창고에서 '한진상사'란 간판을 내걸고 트럭 1대로 운수회사를 차렸다. 2년 후 한진상사는 보유 트럭이 10여 대로 늘어날 정도로 성장했으나,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트럭은 군에 징발되고 사무실은 폭격으로 폐허가 됐다.

조중훈 회장은 전쟁 이후 인천항으로 들어오는 미군 군수물자 수송사업에 뛰어들어 재기에 성공했다. 당시 미군 군수물자 수송과정에서 물자를 훔치거나 빼돌리는 경우가 빈번해 미군은 한국인 운수업자를 신뢰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조중훈 회장이 미군 군수물자 수송계약을 따낸 비결은 운송 도중 발생한 사고를 모두 한진상사가 책임지는 '책임제 수송계약'이었다.

한진상사는 1957년 주식회사로 전환했고, 본사를 인천에서 서울로 옮겼다. 미군과의 사업을 기반 삼아 1960년 1년 동안 220만 달러의 수익을 올리고, 가용 차량이 500대에 이를 정도로 사세를 확장했다. 이 무렵 조중훈 회장은 주한미군 공군기지 순환버스(콘트랙트 버스) 운영사업에도 발을 뻗었다.

조중훈 회장의 미군 공군기지 버스사업은 경인일보 연중기획 시리즈 '실향민 이야기 꿈엔들 잊힐리야'(8월 31일자 9면 보도)에서 실향민 김은중(83) 할아버지가 증언한 내용인데, 조중훈 회장의 자서전 '내가 걸어온 길'에도 나오지 않는다.

조중훈 회장은 미군과의 인연을 발판으로 베트남전쟁이 한창이던 1966년 베트남에서 미군 군수물자 수송사업에 참여한다. 한진은 1971년까지 베트남에서만 1억5천만달러를 벌어들여 '재벌'의 반열에 올랐다.

미군은 해방 이후부터 1948년 정부 수립 때까지 남한을 통치하면서 일본이 버리고 간 적산(敵産)공장을 미군정청 재산으로 귀속했다. 미군정은 한국인 관리인을 내세워 공장을 운영했는데, 인천에 있던 대규모 적산공장들은 여러 대기업의 모체가 됐다.

인천 남동구 일대에 있던 조선유지주식회사 인천공장은 한화그룹 창립자 김종희(1922~1981) 회장이 미군정으로부터 관리인으로 임명됐다. 화약공장인 조선유지 인천공장은 한화그룹의 모체인 한국화약을 설립하는 기반이 됐다. 동구 만석동에 있는 동일방직 인천공장도 일본의 동양방적이 전신이다.

동일방직을 설립한 서정익(1910∼1973) 사장은 해방 후 미군정이 임명한 동양방적의 관리인이 됐다. 당시 서정익 사장은 동양방적의 유일한 한국인 기사였다.

그는 1955년 정부로부터 동양방적을 인수받아 동일방직을 일궜다. 인천 동구에 있는 두산인프라코어, 현대제철 인천공장도 일본 적산공장에서 출발한 대기업이다. 국내 대기업 역사는 미군정 시기부터 출발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박경호기자 pkhh@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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