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공감]에버트 인권상 대표 수상 수원 동남보건대 응급구조학과 장애진씨

죽음의 바다서 살아온 '촛불시민 대표' 새 꿈을 꾼다

손성배 기자

발행일 2017-12-13 제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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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버트 인권상 수상한 세월호 생존자 장애진씨7
11일 오후 수원 정자동 동남보건대학교 사담기념관에서 세월호 단원고 생존자 장애진(20)씨가 대한민국 촛불시민을 대표해 '2017 프리드리히 에버트 재단 인권상' 수상 소감을 밝히며 미소 짓고 있다. /임열수기자 pplys@kyeongin.com

안도의 손길 내민 응급구조사에 고마움 느껴
보육교사에서 사람 살리는 쪽으로 진로 바꿔

아직도 친자매 같던 친구들 떠올라 괴롭지만
용기 북돋아 준 아버지 있어 세상밖으로 나와

실습중 배운 대로 했더니 심정지 환자 살아나
기억하기 싫은 역사도 반복 막기위해 상기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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앳된 얼굴의 스무살 소녀가 대한민국 1천700만 촛불 시민을 대표해 연단에 섰다. 독일 베를린 프리드리히 에버트 재단이 수여하는 '에버트 인권상' 대표 수상자, 장애진(20)씨다.

세월호 생존자로도 잘 알려진 장씨는 현재 수원 동남보건대학교 응급구조학과에 재학 중인 '예비 응급구조사'다. 죽음의 바다에서 살아남아 새로운 꿈을 꾸는 장씨를 지난 11일 동남보건대 사담기념관에서 만났다.

장씨는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내 꿈이 이뤄지는 나라'에서 사람을 살리는 일을 하고 싶다며 응급구조학과에 진학했다. 아이들을 좋아해 보육교사가 되고 싶었으나 지금은 응급구조사를 꿈꾸고 있으니, 세월호가 장씨의 운명을 바꾼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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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사 당시 장씨는 SP-1(세월호 다인실 격실) 구역에서 같은 반 친구 7명과 함께 구명조끼를 입고 해경의 구조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배가 점점 더 기울고 급기야 칸막이 대용으로 설치된 캐비닛이 한쪽으로 쏠리면서 벽이 바닥으로 내려가고 출입문은 천장으로 올라갔다.

큰 충격을 받아서일까. 극적으로 몇몇 친구들과 함께 탈출했지만 해경 보트를 타고 큰 배로 옮겨타는 순간의 기억은 희미하다. 서거차도에 발을 딛고 난 뒤에야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이때 장씨 곁을 지켜준 고마운 이가 급파된 119 응급구조사였다.

당시 따뜻한 담요와 말 한마디로 자신을 위로하며 안도의 손길을 내밀었던 응급구조사처럼 지역 사회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는 것이 장씨의 꿈이다. '가만히 있으라'는 어른들의 말을 거역하고 지켜낸 소중한 삶을 이제는 다른 이를 돕는 데 쓰고 싶다는 것이다.

아직도 해가 지고 나면 중학교 때부터 친자매처럼 지냈던 민정이와 민지 생각에 괴롭다. 단짝 2명을 비롯해 한순간에 반 친구 18명과 담임 선생님을 잃었고, 세월호가 인양된 뒤에야 돌아온 친구도 있다. 견뎌내기 힘든 아픔이자 영영 꺼내고 싶지 않은 기억이지만, 그곳에 있었던 누군가는 증언해야 했다.

공개적인 장소에서 한 발언은 지난 1월 세월호 참사 1천일이 되는 날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촛불집회가 처음이었다. 장씨는 "저희는 구조된 것이 아니라 스스로 탈출했다"며 "저희만 살아나온 것이 유족 분들에게 너무 죄송하고 죄를 지은 것만 같았다"고 속내를 털어놨다.

참사 이후 생존자와 유족의 가슴에 아로새겨진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정치꾼'들의 발언도 장씨를 세상에 나서게 한 동기가 됐다. 참사 당시 트라우마에 더해 당사자들을 배제하고 멸시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는 장씨의 친구들이 정신적 스트레스를 극복하지 못하고 자살 시도까지 하는 비극으로 이어졌다.

그는 "아이들이 철이 없어서 못 나온 것 같다거나 단순 해상 교통사고에 정치색을 입히지 말라는 말들에 화가 났다"며 "앞으로 친구들을 데려간 참사 진상규명에 미약하게나마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는 마음"이라고 말했다.

가족들도 장씨의 든든한 지원군이다.

안산 원시동의 한 공장에서 일하던 아버지 장동원씨는 참사 이후 선박 운전 면허를 취득해 유족들과 함께 현장을 누볐고 세월호 4·16가족협의회 진상규명분과 팀장을 맡아 활동하고 있다. 공교롭게 민주항쟁 기념일인 6월 10일에 태어난 장씨는 아버지 손을 붙잡고 세월호 참사 이전부터 집회에 참석한 경험이 있었다.

용기를 북돋아 준 아버지가 있었기에 두려움 없이 세상을 향해 세월호 생존자의 목소리를 낼 수 있었던 것이다. 어머니 김순덕씨도 단원고 유가족과 함께 '그녀들의 옷장'이라는 치유연극에 출연해 아픔을 씻어내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홀로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에 에버트 인권상 대표 수상 제의가 들어왔을 때는 쉽사리 받아들일 수 없었다. 23차에 걸쳐 진행된 촛불집회에 참석한 횟수가 4번뿐이라서 겸손히 고사했지만 촛불 비상국민행동 구성원들이 만장일치로 장씨를 대표 수상자로 추천했다.

장씨는 "대한민국 국민 대표로 에버트 인권상을 받게 돼 영광"이라며 "촛불을 든 시민들이 대한민국을 변화시켰고 새로운 대한민국을 세계인이 주목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인천국제성모병원 응급실에서 실습을 한 장씨는 멈춘 심장을 다시 뛰게 하는 소중한 경험을 했다. 선배 응급구조사들과 함께 생사의 갈림길에 선 환자에게 새 삶을 선물한 것이다.

그는 "60대 남성 환자가 심정지 상태로 다른 병원에서 이송돼왔는데 소생 직후 재차 심장이 안 뛰어서 심폐소생술과 제세동기 가동을 번갈아 가며 학교에서 배운 대로 했더니 기적처럼 환자의 심장이 다시 뛰었다"고 말했다.

에버트 인권상 수상한 세월호 생존자 장애진씨
11일 오후 수원 정자동 동남보건대학교 응급구조학과 실습실에서 세월호 단원고 생존자 장애진(20)씨가 응급구조 실습 모형을 앞에 두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장씨는 참사 직후 서거차도에서 만난 119 구급대원에게 받은 도움을 갚기 위해 응급구조사가 되려는 꿈을 꾸고 있다. /임열수기자 pplys@kyeongin.com
실습을 마치고 다시 돌아온 학교에서 장씨는 의학용어 암기와 심전도 실습에 매진하고 있다. 현장에서 가장 먼저 위급한 환자를 만나 즉각 대처할 수 있는 119 구급대원이 되기 위해서다. 이를 위해서 해결해야 할 과제가 한둘이 아니지만 특유의 명랑함으로 남은 대학 생활을 보내고 응급구조사 국가고시에도 도전할 계획이다.

고봉연 동남보건대 응급구조학과장은 "단원고 특별전형으로 입학한 학생이 있다고 들었지만 애진이가 정말 밝고 명랑해 아픔이 있는 줄 면담 전까진 몰랐다"며 "참사를 겪으면서 응급구조사로 일을 해야만 하는 확실한 동기가 생긴 만큼 최고의 응급구조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세월호 생존자들은 개인적인 꿈을 위해서 삶을 살아내면서도 사라지는 아픔의 흔적을 보존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한 발 앞에 선 장씨는 "제가 받은 도움을 나눠드려야 한다는 마음이 가장 크다"며 "당장 도움이 필요한 아픈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몸과 마음을 보듬어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기억하고 싶지 않은 역사도 반복을 막기 위해선 곁에 두고 계속 상기해야 한다"며 "그간 기억교실은 물론이고 시민안전공원 건립에도 걸림돌이 생기면서 잊혀지는 것이 슬프다"고 덧붙였다.

촛불시민 대표로 에버트 인권상을 받는 장애진씨
5일 오후 7시(현지시간) 독일 베를린 프리드리히 에버트 재단에서 세월호 단원고 생존자인 장애진(20)씨와 박석운 퇴진행동 기록기념위원회 공동대표가 쿠르트 벡 에버트 재단 대표에게 '2017 프리드리히 에버트 재단 인권상'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에버트 인권상은?

독일 민간 비영리재단인 프리드리히 에버트 재단이 세계 각지에서 인권 증진에 공헌한 개인이나 단체에게 수여할 목적으로 지난 1994년 제정한 인권상으로 시상식은 매년 12월 5일 베를린에서 진행되며 상패와 함께 2만 유로의 상금이 수여된다.

에버트 재단은 대한민국의 평화적 집회와 장기간 지속된 비폭력 시위에 참여하고 권위주의에 대항하며 신생 민주주의 대한민국 법치국가의 실현을 위해 헌신한 공로로 대한민국 촛불시민에게 에버트 인권상을 수여했다.

다수 국민이 에버트 인권상을 받게 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재단은 대한민국 국민들의 촛불집회가 민주주의의 필수적 구성요소인 민주적 참여권의 평화적 행사와 평화적 집회의 자유를 생동하게 했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글/손성배기자 son@kyeongin.com 사진/임열수기자 pplys@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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