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전환의 순간에 멈춰선 대한민국

윤인수

발행일 2017-12-18 제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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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가 청산할것은 보수·진보 적폐
'진보 날개'로만 날면 진전없이 선회만할 뿐
보수 제역할 못하니 그들 가치 포용해 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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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인수 편집국 국차장(총괄부국장)
2016년 12월 9일 국회가 촛불의 힘을 빌려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가결한 뒤 맞은 2017년 새해는 진공상태였다. 권력의 진공이 빚어낸 거대한 블랙홀 입구에서 대한민국은 새 시대의 도래를 꿈꾸는 동시에 구시대의 소멸을 예감하며 팽팽한 긴장감에 휩싸였다. '현직 대통령 탄핵'이라는 가보지 않은 길을 걷는 막막함보다는 권력구조의 개편, 사회질서의 재편, 국민의식의 전환을 통해 대한민국의 신생을 소망하는 기운이 훨씬 강했다. 정치권력들 사이의 손익계산과 이로 비롯된 정쟁마저 사소해 보였다. 잘만 하면 블랙홀을 통해 대한민국은 신세계로 순간이동이 가능할 것 같았다. 2017년 3월 10일 헌법재판소가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하면서 새 세상으로의 시간 이동 스위치를 켰고, 5월 9일 문재인 대통령의 선출로 신세계를 향한 엔진이 점화된 줄 알았다.

2017년, 격변의 한해를 다 보낸 지금 대한민국은 여전히 블랙홀 입구에서 서성이는 형국이다. 시대의 전환은 없었고 구태의 수렁은 깊었다. 잔상에 집착해 현실을 놓치고, 미시(微視)에 갇혀 거시(巨視)를 잃었다.

문재인 정부 출범 후 전 정권의 국정농단에 대한 사법처리가 본격화된 지 오래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구속됐고, 최순실은 얼마 전 법정에서 늙어 죽을 정도의 형량을 구형받았다. 전 국정원장들과 전 청와대 수석들이 줄줄이 형무소와 구치소에 수감됐고, 청와대 권력에 가까웠던 구 여권 실세들은 검찰수사를 받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약속한 적폐청산이 인적청산으로 일사불란하게 진행 중이다. 그러나 적폐를 가능케 했던 제도와 규범과 의식의 전환은 미미하다. 적폐청산의 대상과 시기를 보수정권과 보수집권시기로 국한했기 때문이다. 보수 적폐를 발본색원하기 위해 불구속 수사원칙을 무시하고, 보수정책을 폐기하려 공론화위원회를 앞세워 대의정치의 본산인 국회가 무력해졌다. 문 대통령의 지지율은 여전히 고공행진이지만, 여론의 일각에서는 적폐청산을 명분으로 행해지는 새로운 권력 적폐를 의식하기 시작했다. 새로운 세상을 세울 제도와 규범과 의식의 전환을 기대했던 국민들은 이미 죽은 자들이 매일 등장하는 뉴스가 대한민국의 미래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질문하기 시작했다.

광장의 언어만으로 세상을 보는 것은 문재인 정부의 또 다른 한계다. 문재인 정부가 국정농단에 분노한 광장의 촛불로 탄생한 것은 틀림없다. 하지만 광장의 분노는 집권의 동력일 수는 있어도 국정의 동력이 될 수 없다. 정권은 분노로 바꿀 수 있지만, 국정은 분노 이상의 대안이 있어야 가능하다. 문 대통령이 취임해 마주한 국정 현안은 다층적이고 국제현실은 살벌하다. 분노의 언어에 진정성으로 공감하는 게 전부였던 광장의 문법으로는 풀 수 없는 현안이자 현실이다. 대통령은 진정성을 갖고 북한과 중국을 관리했지만, 그들이 대통령의 의도대로 관리되고 있다는 심증이 없다. 오히려 대통령의 진정성이 무시당하고 조롱당하는 현실에, 민족적 열패감만 커지고 있다. 촛불혁명으로 선출된 권력의 자부심 때문일까. 문재인 정부는 여전히 광장에 머물러있는 듯하다.

박근혜 탄핵 이후 보수정당은 나락으로 떨어졌다. 문재인 정부가 보수 적폐를 청산하는 일은 시체에 칼질하기만큼 쉬운 일이었고, 광장의 기억에 머물러있는 골수 지지층의 환호는 뜨겁다. 보수정당의 지리멸렬 덕분에 장기집권을 꿈꿀 수 있어서인가. 국정을 대하는 문재인 정부와 집권여당의 자세는 미시의 세계에 갇혀있다. 새해에는 문재인 정부가 보수의 좌절까지 포용하는 거시적 국정 시야를 갖추길 바란다. 청산해야 할 것은 보수와 진보의 적폐이지, 보수와 진보의 가치가 아니다. 한반도를 뒤덮은 위기의 그늘이 짙다. 지금처럼 진보의 날개로만 날면 앞으로 못 가고 선회만 할 뿐이다. 보수정당이 제 역할을 못 하니 집권세력이라도 보수의 가치를 포용해야 하지 않겠나.

마키아벨리는 "인간은 권력을 가지면 가질수록 그것을 사용하는 방법이 서툴러 점점 남이 참기 어려운 존재가 된다"고 말했다. 문재인 정부와 집권여당이 참기 어려운 존재로 전락하지 않기를 바란다.

/윤인수 편집국 국차장(총괄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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