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윤해설위원의 U(unsportsmanlike)파울·7]은퇴투어하는 스타플레이어 김주성

불모지 우승 안긴 '모범생 블록왕'

경인일보

발행일 2017-12-19 제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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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金 2개·프로 신인상·MVP 2회
서장훈과 라이벌… 인성까지 갖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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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명의 농구 스타가 코트를 떠난다.

수많은 선수들이 배출됐고, 지금도 뛰고 있지만 김주성이라는 선수는 한국프로농구에 한 획을 그은 선수다.

함께 운동을 하지는 않았지만 농구계 선배로서 김주성이 프로농구 선수 생활을 한 모습들은 코트 안에서나 바깥에서나 후배들에게 본보기가 됐다.

김주성은 중앙대학교 재학시절이던 1999년과 2000년 농구대잔치 MVP를 수상했었고 2003년에는 프로선수에게 한번밖에 기회가 없는 신인상을 수상했다.

또 소속팀을 KBL 챔피언결정전 3회 우승 시키며 2차례 MVP에 오르기도 했다.

국가대표로도 FIBA농구월드컵 2회, 아시안게임 5회, FIBA아시아선수권 6회 출전하며 한국농구의 위상을 드높였다.

특히 김주성은 그가 태극마크를 달고 뛰었던 2002 부산 아시안게임과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의 주역으로 활약했고, 1998년 방콕 아시안게임과 2010년 광저우아시안게임에서는 은메달을 따는데 일조했다.

개인 기록면에서도 김주성은 2002~2003시즌부터 프로선수 생활을 시작한 이후 18일까지 16시즌 동안 711경기에 출전해 평균 31분31초를 출전하면서 평균 14.2점, 6.1개의 리바운드, 2.7개의 도움를 기록하고 있다.

사실 김주성의 가치는 이런 통계적인 숫자만으로 표현할 수 없다.

김주성이 입단하면서 중위권 이상의 성적을 내지 못했던 DB의 전신 TG삼보가 정규리그와 챔피언결정전 우승을 일궈냈다. 또 이런 성과를 만들어내는 김주성이 원주라는 농구 불모지에 프로농구팀이 뿌리를 내리는데도 큰 기여를 했다고 볼 수 있다.

코트 안에서도 김주성은 KBL에 새로운 유형의 장신 선수로서의 역할을 개척했다.

당시 최고 절정을 달리던 서장훈과 라이벌 구도를 만들어내며 흥행을 이끌기도 했지만 전혀 다른 스타일의 파워포워드의 모습을 선보였다.

김주성도 서장훈과 같이 정확한 미들슛을 보유하고 있었지만 그의 또다른 장점은 상대 센터나 파워포워드의 슈팅을 걷어내는 블록슛 능력이다.

김주성이 KBL에 등장한 후 장신선수도 속공에 가담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코트 밖에서도 김주성은 장애인단체와 지역 불우 청소년들에게 매년 기부금을 전달하며 스타선수로서 어떤 마음 자세로 팬들을 대해야 하는지도 후배들에게 모범을 보였다.

기량과 인성 두가지 다 갖춘 김주성이 팀의 중심이 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지 않았을까?

해설을 하며 김주성에 대해 전해 들은 한 일화가 있다.

DB의 중심 득점원으로 활약하고 있는 두경민이 신인 시절 김주성이 "(두)경민아 니가 팀에 에이스면 책임감을 가져야 해. 개인 기록도 중요하지만 에이스로서 팀이 어떻게하면 승리할까를 고민하고 승리할 수 있도록 일조하는 게 중요해"라고 말했다고 한다.

물론 두경민은 슛뿐만 아니라 궂은 일도 마다하지 않는 선수다. 팀의 에이스 역할을 해 주는 선수에게 에이스가 갖춰야 할 점을 가르쳐 주는 선배가 KBL 전체를 봤을때 얼마나 있을까 하고 묻는다면 대답하기 쉽지 않다.

하지만 김주성은 화려한 플레이로 팬들의 사랑을 받지는 않았지만 승리를 원하는 연고지팬들에게 승리를 가져다 줬고 또 함께 코트에서 뛰는 선수들에게 선수로서의 자세와 페어플레이를 보여줬다.

코트에서 열정을 보여줬던 김주성, 마지막 시즌을 팬들과 함께 아름답게 마무리 하기를 바란다.

/이상윤 IB스포츠 해설위원·상명대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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