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구의 한국재벌사·39]대한그룹-3 시련을 넘어

'탈세자 처벌' 경제개발 바람 타고 재기

경인일보

발행일 2017-12-19 제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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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전선 시흥공장
대한그룹의 주력 계열사 중 하나였던 대한전선의 발전에 힘입어 대한그룹은 시련을 딛고 화려하게 떠오를 수 있었다. 사진은 1960년대 대한전선 시흥공장 모습. /대한전선 홈페이지 역사관

5·16 軍정부 3억3천만환 부과
기간산업 건설, 대한전선 기회
정치격변·가정불화 '이른 승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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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경동의 오랜 사업경험과 사업가로서의 남다른 감각을 기반으로 정치권과의 관계를 탄탄하게 다지며 승승장구하던 대한그룹은 4·19 혁명과 5·16 군사정변으로 사세가 급격하게 위축되는 시련을 겪는다.

1960년 4·19혁명과 함께 과거 이승만 독재 하에서 권력을 배경 삼아 부당하게 치부한 자들에 대한 단죄작업이 도화선이었다. 1960년 5월 과도정부는 부정축재 기업인들에게 '1955년 1월 이후 5년 동안의 탈세를 80%이상을 정직하게 신고할 경우 벌금을 면제해준다'는 조건으로 자진신고 하도록 하였다.

6월 20일까지 신고한 기업인들은 이병철(삼성그룹, 탈세기업 5개 업체, 탈세액 21억 4천만 환), 정재호(삼호그룹, 탈세기업 4개 업체, 탈세액 5억 6천만 환), 김상홍(삼양그룹, 탈세기업 1개 업체, 탈세액 1억 9천만 환), 설경동(대한그룹, 탈세기업 대한제당 1개, 탈세액 1억 2천만 환), 송영수(전주방직, 탈세액 2억 9천만 환), 백남일(태창방직, 탈세액 3억 1천만 환), 구인회(럭키화학, 탈세액 3천만환), 이정림(대한양회, 탈세액 600만환), 조성철(중앙산업, 탈세액 500만환)등 9명으로 탈세액은 총 33억 1천100만 환에 달했다.

자진 신고를 하기는 했지만 이들에게는 국민적 비난이 쏟아졌다. 검찰에서도 이 재벌들 중 최소한 6개 재벌은 국가에 귀속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7월말에 정부는 부정축재 기업인 23명(기업 68개 업체)을 최종 확정했는데 설경동의 대한그룹은 5개 계열사가 포함됐다.

부정축재자 처벌작업은 5·16 쿠데타 이후 군사정부에 승계됐다. 1961년 7월 21일에 부정축재 환수금이 최종 결정되었는데 이병철 24억 환, 정재호 10억 환, 이정림 5억 5천만 환, 이한원 4억 환, 설경동 3억 3천만 환 등이었다.

한 차례 시련을 겪었지만, 이후 설경동은 정부주도의 경제개발사업의 일환으로 진행된 기간산업 건설에 참여할 기회를 얻었다. 이를 통해 대한전선의 시설 확충에 주력한 결과, 대한전선은 국내 전선산업의 리더기업으로 거듭났다.

또한 텔레비전, 냉장고, 선풍기등 전자제품 생산을 해 당시 가전제품 판매율 2위까지 올라서면서, 대한그룹은 또다시 재계 전면에 화려하게 부상했다. 탈세의 시련이 전화위복이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설경동은 70세에 접어들면서 갑자기 건강이 악화되면서 지병이 생기고 말았다. 결국 사업 일체를 3남인 설원량을 비롯한 2세들에게 물려주었다. 설경동은 결국 1974년 1월 20일에 향년 72세로 사망했다.

설경동은 사망에 앞서 대한그룹을 2세들에게 물려주는 작업을 진행했다. 이에 따른 계열사 분리 작업도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1950년대 말 재계서열 5위 이내에 랭크되었던 대한그룹의 주력은 대한방직, 대한산업, 대한전선, 대한제당 등이었다. 창업주 설경동은 1960년 대한방직과 대한산업을 장남 설원식에게, 1972년 대한전선과 대한제당을 3남 설원량(薛元亮)에게 각각 물려주었다. 1988년에 4남 설원봉이 대한제당을 가지고 독립했다.

설경동의 기업 분가 작업은 여느 재벌가와는 달리 일찍 시작되었다. 창업주의 사망시점을 전후해서 2, 3세들에게 그룹을 분리하는 것이 통례인데 설경동은 경영자로서의 활동이 왕성한 시기인 나이 50대 후반부터 분할상속작업을 서둔 것이다.

1960년 정치권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데다 가정불화까지 겹치면서 대한방직과 대한산업을 서둘러 장남 설원식에게 넘긴 것으로 알려졌다.

설경동은 두 번 결혼해 첫째 부인과의 사이에 원식과 원철 2남을 두었으며 둘째 부인과의 사이에는 3남 원량과 4남 원봉 등 2남2여를 두었다. 그는 군사정권에 의해 강제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을 뿐 아니라 부동산도 몰수당했다.

/이한구 경인일보 부설 한국재벌연구소 소장·수원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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