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면의 장르문학 산책·98]참을 수 있는 소설의 가벼움

경인일보

발행일 2017-12-20 제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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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면 문학평론가·수원문화재단 시민문화팀장
하루키(1949~)의 소설은 라이트모티프처럼 반복되는 특유의 지표들이 있다. 삼십대 중반으로 설정된 남성 주인공들, 세련된 라이프 스타일을 보여주는 인물들, 뜨거운 정사, 감각적인 문체, 예술에 대한 열망, 그리고 신비로운 요소 혹은 존재의 존재 등이 그러하다. '기사단장 죽이기'(2017) 역시 이 패턴을 반복한다.

우아한 고독과 매력적인 문장들과 독자의 감성을 자극하는 스토리들로 두터운 팬덤을 구축하고는 있으나 읽고 나면 어딘가 모르게 공허한 뒷맛까지 여전하다.

'색채 없는'이란 뜻을 지닌 멘시키 와타루(免色涉)란 작중인물의 이름처럼, 주인공의 머릿속에서 흐릿한 이미지로만 부유하는 '흰색 스바루 포레스터를 타는 중년 남자'처럼, 또 뭐라 이름 붙일 수 없는 "무형의 이데아"인 스피릿추얼처럼 그냥 무채색이다.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2013) 같은 또 하나의 무채색 이야기다.

초상화 전문작가인 '나'는 결혼 6년 만에 아내로부터 이혼 통보를 받고 그 길로 집을 나와 이곳저곳을 전전하다 대학 친구의 주선으로 그의 아버지이자 유명 화가인 아마다 도모히코가 살던 오다와라의 빈집에서 살게 된다.

잠시의 "외딴섬처럼 고독하고 평화로운" 일상이 흐른 뒤 '나'는 괴이하고 신비로운 사건에 휘말린다.

오페라 '돈 조바니'를 아스카 시대의 일본화로 재해석한 아마다 도모히코의 그림 '기사단장 죽이기'의 발견, 한밤중에 들려오는 방울소리, 멘시키의 초상화 그리기, 멘시키의 딸로 추정되는 아키가와 마리에의 초상화 작업과 그녀의 난데없는 실종, 메타포라고 불리는 초자연적 존재를 따라 경험하게 되는 시공을 초월한 공간 여행, 아내 유즈와의 재결합 등까지 흥미진진한, 그러나 이야기의 중심을 형성하지 못하고 그저 다채로운 사건과 이야기가 뷔페처럼 나열된다.

무명의 초상화 작가의 예술적 정체성 찾기에 이혼이라는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힐링 여행이 이야기의 근간을 이루며, 난징 대학살과 루거차오 사건, 빈 유학중 안슐루스(독일과 오스트리아 합병)에 저항하다 본국으로 추방된 아마다 도모히코의 이야기 등 세계대전에 제국으로 참여한 일본의 역사적 경험이 끼어들어 있는 점이 조금 특이하다.

하루키 자신이 명명한 "캔버스 참선", 즉 텅 빈 캔버스 앞에서 무념무상의 상태로 앉아 있다 번뇌 망상뿐 아니라 최소한 정치의식마저 방기해버린 격이다.

보석처럼 반짝이는 문장들과 깊은 성찰, 그리고 편폭 넓은 다양한 예술적 인유들은 하루키 소설 읽기 특유의 즐거움은 살아있으나 무엇이라 할 수 없는 무형의 이데아의 등장처럼 '기사단장 죽이기'는 소설(novel)을 '小說'로 만들어버린 소설이다.

/조성면 문학평론가·수원문화재단 시민문화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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