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광장]한해를 마무리하며

장미애

발행일 2017-12-20 제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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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연초에 세웠던 계획 중
몇가지 이룬 소소한 것들이 있다
그래서 정말 좋고 감사할 뿐
이루지 못했다는 낙심은 사치
지금 갖고 있는 것에 집중하고
실망하기 보단 새 희망을 꿈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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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애 변호사
2017년 한해도 이제 십 여일 밖에 남지 않았다. 상가마다 오색찬란한 불빛들이 넘쳐나고 흥겨운 음악들도 들려오고 있다. 붉은 뺨에 연신 하얀 입김을 쏟아내며 가벼운 걸음으로 거리를 걷는 사람들에겐 2017년도 한해는 어떤 의미로 남아있을까.

이맘때쯤이면 다들 연 초에 세웠던 계획을 돌이켜보고 반성하는 시간을 가질 것이다. 연초에 "반드시 다이어트를 하고 말겠어. 공무원 시험 1차에 꼭 붙을 거야. 한 달에 한권 정도는 책을 읽어야지. 계절마다 한 번씩 여행을 다니겠어. 적어도 월10만 원 이상을 저축하겠어. 원하는 대학에 꼭 붙어야지" 라고 저마다 다짐했던 것들이 메아리가 되어 돌아올 뿐이고, 어느 하나 제대로 한 것이 없을지도 모른다. 아직 며칠 더 남았으니 달라질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한 달에 한번 씩 수원 관내 여성변호사들끼리 모여 점심식사를 하며 소소한 이야기들을 나누는데 연말 모임에서는 자신이 읽었던 책을 가져와서 서로 소개하고 나누는 행사를 겸하고 있다. 모임 때마다 매번 공통된 화제는 일과 가정의 양립이 어렵다는 점, 내가 이러려고 변호사가 되었나 하는 자괴감이 든다는 것들인데 이번 12월 모임에서도 여전히 그 주제가 빠지지 않았다. 비단 여성변호사뿐이랴. 이 땅의 수없이 많은 일하는 여성들이 겪는 공통된 관심사이자 공통된 성토 대상이다. 아직 다른 말은 제대로 못하는 두 돌 지난 아들이 "엄마 힘들어?"라고 하기에 자신이 얼마나 "힘들다, 힘들다"는 말을 했기에 아이가 그런 말을 할까 싶어 반성하였다는 어느 새내기 엄마 변호사의 이야기를 들었다. 육아 경험이 있는 다른 변호사들은 경험에서 우러난 실감나는 충고들을 한마디씩 해준다. "가사 일은 다른 사람이 대신 해줄 수 있으니 집에 오면 화장도 지우지 말고 모든 일을 뒤로하고 아이부터 안아주고 충분히 놀아줘라." "아이들에게 못해준다는 죄책감, 죄의식 갖지 말고 일하는 것을 즐거워하는 당당한 엄마가 돼라" 등등. 아직 미혼인 여성 변호사들은 장래에 닥칠 운명을 감지하며 비장한 얼굴로 열심히 경청한다.

무슨 일을 겪든 지금이 인생의 힘든 지점이거나 혹은 평탄한 지점이라고 생각 될 때 마다 지금까지 지내온 모든 것이 여러 사람의 셀 수 없는 은혜로 이루어졌다고 생각하면 오만해지지 않고 겸손해진다. 혼자 잘나서 사법고시에 붙고, 변호사로서 성과를 이룬 것이 아니라 내 뒤에서 묵묵히 나를 응원해준 친정 부모님, 든든한 남편, 힘든 순간마다 버틸 수 있는 힘을 준 소중한 아이들, 일하는 며느리를 충분히 배려해주시는 시댁식구들, 존경스런 은사님들, 고마운 친구들, 조언을 아끼지 않은 선배들, 일에 집중할 수 있게 도와주셨던 가사 도우미 아주머니, 믿음직한 직원 등등 무엇보다도 많은 분들의 수고와 인덕이 따라주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고마울 뿐이다. 시행착오를 겪었던 것을 거울삼아 후배 변호사들과 함께 고민을 나누거나 조언을 줄 수 있다는 것도 큰 기쁨이다.

그것뿐이랴. 나를 전문가로 만들어준 지금까지 거쳐 간 수없이 많은 의뢰인들,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준 골치 아픈 사건들, 저렇게 인생을 살면 안 된다고 알려준 몇몇 상대방들, 소송의 승패에서 오는 작은 깨달음 또한 지금의 나를 있게 한 소중한 존재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작년 12월 연말에 구입한 다이어리를 들춰보았다. 2017년 초에 계획했으나 이루지 못한 것이 몇 개 있다. 거창한 계획을 세우는 것은 이미 몇 년 전부터 포기한지라 몇 가지 이룬 것들을 보면 대개는 정말 소소한 것들이다. 그래도 정말 좋다. 게다가 커다란 두 세 가지도 이루어졌기에 올 한해는 더 없이 감사할 뿐이다. 또 이루지 못한 것이 몇 개 있다고 해도 지금까지 이루어진 것을 생각하면 실망은 사치다. 아직 갖지 못한 것보다 지금 갖고 있는 것에 집중해보자. 실망하기보다 새 희망을 꿈꾸자.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주인공 스칼렛의 독백처럼 우리에게는 내일의 태양이 있다. 2018년 새해가 또 기다리고 있다. 한 해를 감사함으로 마무리하고, 겸손함으로 무장하여 또 다른 한 해를 맞이할 준비를 해보자.

/장미애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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