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스토리

[이슈&스토리]한국판 메가시티 '광역서울도' 태풍인가 찻잔 속의 태풍인가

수도권 성장 '새로운 공식' 세우다
2017122101001319900063411

中 베이징권-日 도쿄권-美 대도시권
인접 도시 연결·개발 효과 시너지 추진
규제대신 고향세·국가공동세 도입 주장
극대화된 이익, 수도권 밖 지역과 나눠

부산·광주·대구등도 광역도 여론 형성
내년 지방선거 '핵심 어젠다 부각' 예고
'경기도 포기' 위기에 몰린 남경필 지사
1200만 도민 '명확한 필요성 설득' 과제


#21일 오전 7시 광역서울도민 김가정씨는 부천구(區) 당아래에서 송파구 잠실까지 운행하는 GTX를 탔다. 잠실 회사까지 30분 정도를 이동하는 동안 김 씨는 휴대전화로 '고향세(稅)'에 대해 검색했다. 연말이 가기 전, 내년에 낼 세금을 한 푼이라도 줄이고 싶었던 김 씨는 고향인 광역광주도 목포구에 10만 원을 기부하기로 했다.



광역서울도 대신 타지방에 고향세를 납부하면 10만 원 한도 내에서 내야 할 주민세와 소득세를 공제받을 수 있다. 연말 회사 송년회가 있는 이 날, 김 씨는 늦은 시간까지 술을 마시다 택시를 이용해 귀가할 예정이다.

예전 같으면 GTX 막차 시간에 맞춰 눈치껏 회식 자리를 벗어났겠지만, 경기도와 서울시가 광역도로 통합된 뒤 시외할증요금이 폐지되면서 요금 부담이 줄었다. 이윽고 '광역서울도 송파구청 역'에 하차한 김 씨는 역명이 여전히 낯설다는 생각을 하며 회사로 걸음을 옮겼다.

위 사례는 현재까지 상상에 불가하지만 서울, 경기, 인천을 합치는 광역서울도가 출범하면 현실이 될 장면이다. 경기도민과 인천시민이 광역서울도민이 되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 광역서울도, 南柯之夢(헛된 꿈을 이르는 말)?

= 현역 남경필 경기도지사는 사면초가다. 적폐와 거리를 두겠다며 창당에 참여했던 소속 바른정당은 공중분해를 앞두고 있고, 내년 선거를 앞두고 여론조사에서 민주당 후보군에게 큰 격차로 뒤처진 상황이다. 5선 국회의원과 도백(道伯)이란 화려한 경력을 뒤로하고 정치 낭인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위기의 남 지사는 돌연 '경기도를 포기'하고, 서울시와 합쳐 '광역서울도'를 만들겠다는 구상을 발표했다. 세간의 평가는 처참했다. 도청 직원들까지 "경기도는 남 지사의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고, 한경대 행정학과 이원희 교수는 "어리석은 구상이다. 실현 가능성을 차치하고 지방분권에도 역행하는 처사"라고 평했다.

남 지사는 돌발 발언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그는 "여러 연령층, 다양한 도민들을 대상으로 FGI(포커스그룹인터뷰·표본 면접 조사)를 해보니 처음에는 의구심을 가졌던 사람들이 그 효과와 영향에 대한 설명을 들으며 차츰 찬성 의견으로 돌아섰다"면서 "앞으로 도 전역을 순회하며 광역서울도 구상을 도민에게 직접 설명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남 지사의 구상대로라면 내년 지방선거에서 그의 대표공약 중 하나는 바로 이 광역서울도가 될 가능성이 크다.

■ 메가시티(mega city), 세계는 지금

= 중국의 베이징권과 일본의 도쿄권, 미국의 대도시권 등 세계 각지의 메가시티(mega city)와 경쟁하기 위해선 수도권을 통합해 시너지를 내야 한다는 게 광역서울도 구상의 근거다.

일본은 지난 2014년 7월 도쿄권·나고야권·오사카권을 리니어 중앙 신칸센으로 연결해 슈퍼메가리전(Super Mega Region)을 만들겠다는 '국토그랜드비전 2050' 계획을 발표했다. 각각 국제적 기능, 첨단 제조업, 문화·역사·상업의 중심지인 3대 도시권을 연결해 그 효과를 극대화하겠다는 구상이다.

중국 지도자인 시진핑 주석 역시 베이징과 톈진, 허베이성을 연결하는 징진지(京津冀)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세 지역의 인구만 1억 명 이상으로 수도 베이징은 정치, 문화, 국제교류의 중심지로 육성하되 톈진과 허베이성은 제조업과 상업·무역 위주로 발전시키고 있다.

미국의 'America 2050'도 있다. 미국은 오는 2050년 전세계적으로 10개의 메가리전(Mega-Region)이 출현할 것으로 분석하고, 초고속철도를 이용해 Cascadia(시애틀-포클랜드-밴쿠버-브리티시 콜롬비아)·Northern California·Texas Triangle 등 인접 지역을 묶어 개발하는 계획을 추진한다.

■ 지자체 통합이란 오래된 미래

= 국내에서도 과거 도시를 통합하는 흐름이 나타났다. 이미 10여 년 전부터 경기도 남부 지역에선 수원·화성·오산, 동부권에선 성남·하남·광주, 북부에선 의정부·양주·동두천을 통합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하지만 이해득실에 따라 입장이 엇갈렸고, 통합 대상 일부 시군의 반대로 경기도 내에서 시군 통합은 성사되지 않았다. 광역서울도 찬성론자들은 시군 단위의 통합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점을 거론하며, 광역도라는 큰 단위의 통합이 선행되면 시군을 재편하는 작은 단위의 통합을 손쉽게 이룰 수 있다고 주장한다.

광역서울도는 해묵은 문제이자 경기도의 숙원인 '수도권 규제 완화'를 성사시킬 수 있는 묘책이기도 하다.

노무현 정부의 경제 정책통이었던 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은 저서 '경제철학의 전환'에서 "수도권은 경쟁관계에 있는 해외 대도시권을, 비수도권은 경제력이 집중되어 있는 수도권을 각각의 경쟁 상대로 설정하고 있다"면서 "비수도권->수도권->해외 경쟁 대도시권으로 이어지는 비대칭 구조가 수도권 규제의 효과와 부작용을 아전인수식으로 해석하게 만드는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변 전 실장은 "균형발전이 실현 가능한 정책적 목표가 될 수 있는지에 대한 객관적 검토가 필요하다"며 '균형발전'이란 미명으로 수도권 규제를 지속하는데 대해 회의감을 표하고, 규제를 완화하되 그로 인해 발생하는 이익을 나눠야 한다고 설명한다.

바로 이 부분이 남 지사의 광역서울도 구상과 변 전 실장의 주장이 만나는 지점이다.

■ 광역도, 무엇이 어떻게 변하나

= 광역서울도는 일종의 발전론이다. 광역도의 핵심축은 국제 경쟁력과 이익 공유를 통한 동반성장인데, 남 지사는 서울·경기·인천의 통합과 함께 고향세와 국가공동세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경기도는 토착민보다는 산업화시대 이촌향도(離村向都)를 통해 외부에서 유입된 인구가 많다. 고향세는 이에 착안해 고향에 일정 금액을 기부하면 그 중 일부를 거주지에 내야 할 세금 일부로 공제해주는 방식이다. 세수가 부족한 수도권 외 지역에서 재정을 보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국가공동세는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특정 세목을 지정해 공동으로 걷고 나눠 쓰는 제도다. 이 방식을 도입하면 지역 별 세수 격차를 줄일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남 지사는 더 나아가 광역서울도를 통해 얻게 될 이익을 지자체와 주민에게 직접 나눠주는 형태까지 거론하고 있다.

특히 주민들에겐 진보 진영의 대표 정책인 '기본소득' 방식으로 광역서울도 통합의 이익을 나눠주겠다고 발언하고 나섰다.

광역서울도가 출범하면 광역지방정부의 역할은 이해관계 조정 정도로 축소되고 기초지방정부의 권한이 대폭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남 지사는 "해외에 나가면 수원에 산다. 서울에 산다고 얘기하지 '경기도에 산다'고 말하지 않는다. 지역민의 아이덴티티(정체성)는 바로 도시"라면서 "광역서울도의 권한은 줄이고 시장·군수의 자치권을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 광역도 통합 실현 가능성은

= 남 지사는 내년 지방선거에서 야권의 핵심 어젠다는 '광역도 통합'이 돼야 한다고 역설한다. 이미 부산에서 광역도 구상에 찬성한다는 입장이 나왔고, 광주광역시와 전남·대구광역시와 경북의 바닥 민심에서도 "뭉쳐야 산다"는 여론이 들끓고 있다는 분석이다.

광역도가 실현되기 위해선 통합 대상인 지자체의 당선자들이 이 같은 구상에 합의를 도출해야 한다. 통합 방식은 지난 2012년 통합한 청주·청원시의 사례처럼 주민투표를 하거나 마산·진해·창원시 통합과 마찬가지로 지방의회의 의결을 통한 통합 모두 가능할 것으로 전망된다.

법적, 절차적 문제보다 큰 문제는 광역서울도 자체의 내부 논리다. 남 지사가 역설한 고향세와 공동세는 이미 문재인 정부의 과제 중 하나로 도입이 추진 중이고, 수도권규제를 완화하기 위해 광역서울도를 출범시키는 것은 '배보다 배꼽이 큰 꼴'이라고 보는 회의적 시각이 다수다.

무엇보다 1천200만 경기도민에게 "왜 경기도와 서울, 나아가 인천까지 합쳐야 하는가"를 명확히 설명해 내는 것이 과제다. "경기도를 포기하겠습니다"라는 구상이 내년 지방선거에서 태풍으로 부상할지, 찻잔 속의 태풍으로 그칠지 지켜볼 일이다.

/신지영기자 sjy@kyeongin.com

경인일보 포토

신지영기자

sjy@kyeongin.com

신지영기자 기사모음

경인일보

제보안내

경인일보는 독자 여러분의 소중한 제보를 기다립니다. 제보자 신분은 경인일보 보도 준칙에 의해 철저히 보호되며, 제공하신 개인정보는 취재를 위해서만 사용됩니다. 제보 방법은 홈페이지 외에도 이메일 및 카카오톡을 통해 제보할 수 있습니다.

- 이메일 문의 : jebo@kyeongin.com
- 카카오톡 ID : @경인일보

개인정보의 수집 및 이용에 대한 안내

  • 수집항목 : 회사명, 이름, 전화번호, 이메일
  • 수집목적 : 본인확인, 접수 및 결과 회신
  • 이용기간 : 원칙적으로 개인정보 수집 및 이용목적이 달성된 후에 해당정보를 지체없이 파기합니다.

기사제보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익명 제보가 가능합니다.
단, 추가 취재가 필요한 제보자는 연락처를 정확히 입력해주시기 바랍니다.

*최대 용량 10MB
새로고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