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칼럼

[춘추칼럼]'고객'과 '서비스'의 덫에 걸린 공공성

각 기관 평가기준과 공무원·정치인 시각 변해야
'사람보다 돈이 중요하다'는 깊이 박힌 인식 탈피
민원인 아닌 '제안자'·'협의자'되는 정체성 필요


권경우1
권경우 성북문화재단 문화사업본부장
오늘날 공공영역에서 가장 논란이 되고 있는 것 중 하나가 바로 '민원'일 것이다. 공무원을 비롯한 공공기관에서 근무하는 이들이 가장 무서워하거나 싫어하는 것이 바로 '민원'이고, 지역 정치인이 가장 열심히 활동하는 영역도 바로 '민원'이다. 도서관, 미술관, 체육시설 등 공공문화체육시설 등은 민원에서 가장 취약한 곳 중 하나이다. 일단 주민과 가장 일상적으로 대면하는 공간이라는 점에서 그렇고, 때로는 일정한 비용을 지불한다는 점에서 이용자들에게 '서비스'를 받는 주체로서의 자각을 인식시키기 때문이다. 그 결과는 '더 친절한 서비스'라는 민원과 서비스라는 사실은 악순환에 가까운 체계를 구축하고 만다. 물론 민원은 시민의 권리라는 측면에서 볼 때 매우 중요하고 필요한 장치이다. 동시에 민원은 철저하게 정치적 영역으로 작동하기도 한다.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거나 상식에 어긋나는 행정의 문제점을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는가 하면, 특정 개인이나 단체의 욕망을 실현하는 창구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러한 두 가지 기능을 감안하고, 사실 민원 그 자체의 존재에 대한 질문은 필요해 보인다.

서울시 성북구에 위치한 아리랑시네센터라는 공공영화관의 사례는 공공문화시설의 운영에 관한 새로운 실험이라 할 만하다. 2004년 개관한 아리랑시네센터는 지자체의 소유이면서 성북문화재단에서 위탁운영하고 있는 공공영화관이다. 총 3개관 436석이라는 결코 작지 않은 개봉영화관을 운영하고 있으며, 1개관은 독립영화전용관으로서 지역 주민뿐만 아니라 영화인들에게 아주 중요한 영화상영공간으로 인식되어 왔다. 하지만 2009년 가까운 지하철역 주변에 대형 멀티플렉스가 생기면서 관람객과 수입은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고, 2013년 말 리모델링 과정 이후 조금씩 회복하고 있는 상태이다. 최근 2015년과 2017년 말 기준으로 비교하면 수입과 관람객에 있어서 전체적으로 약 25% 정도 증가했음을 알 수 있다.



만약 이 정도로 그친다면 열심히 운영해서 관람객과 수입 증가를 이뤄냈다는 객관적 수치의 성과로만 끝날 것이다. 아리랑시네센터는 단순한 영화관 운영 이상의 지역사회에서 마을공동체가 함께 만들어가는 일종의 '마을영화관'으로서의 고민이 담겨 있다. 독립영화 무료상영회 및 감독과의 대화, 유럽단편영화제, 터키영화제, 노인영화제, 왕릉영화제 등 다양한 영화제 개최, 예술의 전당 우수공연영상 무료상영회, 지역사회 구성원들과 함께 하는 공동체상영, 영유아가 부모와 함께 영화를 볼 수 있는 '맘스데이', 다양한 발표회와 공연 공간 제공 등 계량적 성과로 드러나지 않는 영역에서 공공영화관으로서의 기능을 살리고자 애쓴 측면이 있다. 하지만 이것 역시 어찌 보면 공급 중심의 영화관 프로그램의 일환에 불과할지 모른다. 가장 중요한 측면은 영화관을 찾는 이들을 '고객'으로 대하기보다는 '마을 주민'으로 소통한다는 사실이다. 비용을 지불하고 영화를 관람하는 소비자로서가 아니라 공공영화관에서 함께 영화를 보면서 마을과 지역을 함께 살려나가는 공동체의 일원으로 환대하는 것이다. '노 키즈(No Kids)'가 유행하는 사회에서 유모차를 끌고 영유아를 데리고 영화관을 방문하는 육아맘들을 환대하는 공간, 유치원이 끝나고 잠시 들러 키즈놀이방에서 놀다 가도 편안한 공간, 장애인이나 어르신이 와도 전혀 낯설지 않은 공간, 매점과 카페의 운영이 지역자활센터의 수익으로 이어지는 공간이 바로 공공영화관으로서 아리랑시네센터의 모습이다.

이러한 공간의 모습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다양한 변화가 동시에 필요하다. 예를 들면, '공공문화예술공간'에 대한 효율성의 잣대가 사라져야 할 것이다. 다양한 기관 평가기준이 달라져야 하고, 공무원이나 지역정치인의 시각도 바뀌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우리 안에 깊이 박혀 있는 사람보다 돈이 중요하다는 논리를 벗어나는 일이 필요하다. 우리는 새로운 정체성을 갖춰야 한다. '민원인'이 아니라 '제안자'가 되고 '협의자'가 되는 일이다. 문제 해결을 일방적으로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머리를 맞대고 대안을 찾아보는 과정에 참여하는 것이다. 고객과 서비스, 갑과 을의 관계가 아니라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호혜와 환대, 배려, 우정이 움트는 관계를 만들어보자. 그 관계, 즉 사람과 사람 '사이'에 제대로 된 공공성이 꽃필 수 있을 것이다. 내가 걸어 다니는 우리 동네에서 먼저 이웃을 발견하고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가는 것은 어떨까?

/권경우 성북문화재단 문화사업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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