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논단]시간은 물리적 현상이지만…

신승환

발행일 2017-12-25 제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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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의 시작·끝 정해 '의미' 부여
인간은 '영성적 존재'이기 때문
올 가장 중요했던 말 '개혁'
부분적 불공정 청산불구 '한계'
자본·성공 향해 질주하는 우리
자신부터 변해야 '진정한 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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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승환 가톨릭대 철학과 교수
시간은 물리적 현상이지만, 그 시간을 사는 사람의 때는 전적으로 의미를 따라 이뤄진다. 시간을 경계 지우려는 우리의 본성은 달력을 만들어 한 해의 시작과 끝은 만든다. 시간을 넘어 때를 만들고, 그때의 의미를 돌아보며 마무리와 새로움을 생각하는 것은 인간이 생물학적 존재 이상이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자신의 삶과 존재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인간이 인간인 까닭이다. 역사에서 보는 모든 종교와 사상은 이런 인간의 의미론적 행위를 영(spirit)이란 말과 연결지어 정의한다. 자신의 영/영혼에 대한 이해와 감수성을 흔히 영성이란 말로 표현한다면 인간은 누구나 영성적 존재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래서 모든 종교와 사상은 그 핵심 교리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한결같이 인간의 이런 내적 지평을 강조했다. 그런 특성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예외 없이 황금률과 절제 및 자기 비움의 정신이다. 이런 인류 공통의 정신을 되새겨 보는 일이 한 해를 마무리하고 다가올 시간을 마주하는 우리의 마음이어야 하지 않을까.

지난 한해 우리에게 가장 중요했던 말이라면 단연 개혁이었다. 이에 대한 수많은 요구와 생각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이 말이 시대 정신을 대변했던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럼에도 그 개혁이 무엇을 위한 것이며, 나아가 제대로 이뤄졌는지에 대한 생각에는 많은 차이가 있다. 부분적으로 지난 시대의 불공정과 불의, 부패가 어느 정도 청산되기도 했지만, 공고하게 똬리를 튼 한계와 모순이 상존하는 것도 현실이다. 최근의 법원 판결을 보면서 여전한 부정의에 분노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120억에 이르는 시세 차익을 챙긴 불공정함이, 목숨을 끊으면서까지 고발했던 이른바 '성완종 리스트'가 아무런 죄도 되지 않는다는 판결에 선뜻 수긍할 사람이 얼마일까. 법치를 가장한 불의는 여전하다. 우리 사회의 수많은 불의와 부패, 불공정은 일상의 삶과 노동에, 교육과 언론에, 정부 영역과 경제 행위 안에 여전히 그 위력을 잃지 않고 있다. 특권과 이익을 독점적으로 소유한 계층이 그들만의 이해를 위해 불의한 합작을 이어가는 사회는 현재형이다. 이런 생각이 줄어들지 않는 한 이 사회의 변화는 불가능하다.

그러기에 다시 물어야 한다. 과연 혁명은 가능한가. 도대체 무엇을 위한 혁명인가. 우리 사회에 정의와 공정함은 어디에서 시작될까. 모든 혁명은 그 시작의 성공이 실패로 귀결된다. 역사에서 그 시작을 온전히 달성한 혁명이 없었듯이, 그 모두가 실패로 끝난 혁명도 없었다. 혁명은 자신의 성공을 실패를 통해 입증한다. 또한 자신의 실패를 통해 혁명은 그 본질적 성공을 가능하게 한다. 어떤 경우라도 혁명 이후는 그 이전 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또한 혁명 이후의 삶이 그 이전의 삶과 혁명적으로 달라지는 경우도 없다. 그래서 혁명은 성공과 실패의 이중주 속에서 그 본성을 달성한다. 촛불에 의한 지난 시간이 혁명일 수 없거나, 그럼에도 혁명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우리 사회의 혁명은 어디쯤 자리하는가. 모든 혁명은 나의 변화 없이는 불가능하며, 또한 나의 변화를 통해 성공과 실패의 이중주 속을 질주한다. 지금 정치와 법, 언론과 경제 개혁을 말하지만, 가장 중요한 혁명은 자본과 성공을 향해서만 질주하는 우리의 내면에서 일어나야 한다. 여전한 우리 사회의 부정의와 불공정, 전쟁과도 같은 삶이 제도와 체제의 한계와 모순 때문인 것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우리 삶과 우리 자신을 혁명하지 않으면 이 모든 변화는 불가능할 뿐 아니라, 어떠한 본질적인 의미도 달성하지 못한다.

혁명으로까지 이어져야 할 개혁에의 요구가 우리 자신의 혁명 없이 불가능하다는 사실, 자본과 성공을 향한 욕망, 자신의 삶을 돌아보지 못하는 맹목성에 대한 성찰 없이는 결코 어떤 혁명도 성공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외면하지 말자. 영혼에 대한 성찰을 요구하는 모든 사상과 종교는 이런 진실을 표현하는 다양한 변종에 지나지 않는다. 자본주의와 물질 만능주의에 빠진 이 문화만이 이런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 진정 혁명을 원한다면 자신의 삶과 존재를 혁명해야 한다. 지금 당신과 나는 어떻게 이런 혁명을 맞이하고 있는가.

/신승환 가톨릭대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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