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신협 공동 신년기획 '분권개헌 내 삶 바꾼다']① 프랑스에서 배우다

재정·입법 '강력한 자치분권', 죽은 지역을 되살리다

경인일보

발행일 2018-01-02 제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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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신협 공동 신년기획 '분권개헌 내 삶 바꾼다']① 프랑스에서 배우다
[한신협 공동 신년기획 '분권개헌 내 삶 바꾼다']① 프랑스에서 배우다

 

'분권개헌 내 삶 바꾼다'.

1987년 개정된 현행 헌법은 수직적인 위계에 따라 모든 권력이 대통령과 중앙 정부에 집중된 구조다. 30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중앙 집권적 성격의 헌법은 그 수명을 다해가고 있다.

1세기 급변하는 환경 변화와 다양한 시대적 요구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한 결과 급성장하던 대한민국은 정체 상태로 접어들었고, 지역은 고사 상태로 내몰리고 있다.

1995년 지방자치단체장들을 선출하면서 형식적인 지방분권이 시작됐지만 한계는 뚜렷했다. 환경, 경제, 복지 분야에서 지역마다 고유한 문제들이 있지만 지방정부는 맞춤식 정책을 펼칠 수 없다.

한국 사회가 겪고 있는 문제들을 먼저 경험한 선진국들은 강력한 지방분권을 통해 이 문제를 돌파했다. 프랑스, 스위스, 독일, 일본 등 선진국들은 중앙정부가 큰 틀의 정책 결정 및 통치에만 관심을 갖고 실질적 운영 권한은 지방정부에게 이양했고, 지방정부의 권한은 헌법을 통해 보장되고 있다.

그 결과 지방정부는 여러 가지 혁신을 이끌어 냈다. 한신협은 '분권 개헌 내 삶 바꾼다' 신년 기획을 통해 선진국들이 분권형 개헌을 통해 창출한 혁신 사례들을 살펴보고, 분권형 개헌으로 바뀌는 지역민의 삶을 생생하게 짚어보려고 한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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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트로폴 리옹 건물. /메트로폴 리옹·프랑스 얼베인 제공

■쇠락한 '실크 도시'가 유럽 제약산업의 중심지로

프랑스 파리에서 남동쪽으로 400㎞가량 떨어진 도시 리옹(Lyon)은 과거 실크로드의 종착지로 명성을 날렸다. 하지만 19세기 산업혁명의 여파는 리옹을 벼랑 끝으로 내몰았다. 20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리옹에는 실업자와 빈집이 넘쳐났다. 리옹의 극적인 변화는 프랑스 지방분권형 개헌과 궤를 같이 한다.

1980년대부터 본격화된 프랑스의 지방분권형 개혁은 2003년 개헌으로까지 이어졌고, 이를 통해 리옹은 강력한 지방조직을 구축했다.

'지역의 문제는 지역이 가장 잘 해결할 수 있다'는 슬로건 아래 재정자주권과 자치입법권 등을 손아귀에 넣었고, 이를 바탕으로 지역거점산업과 도시재생사업을 성공적으로 정착시킨 것이다. 오늘날 리옹은 프랑스의 명실상부한 제2의 도시로 자리매김했다.  

 

대한민국 현행 헌법 대통령·중앙정부에 '권력 집중'
1995년 지자체장 선출 지방자치 첫 발 형식적 '한계'
경제·복지등 지역 고유의 문제 맞춤식 정책 못 펼쳐
프랑스 1982년 '지방분권 바람' 2003년 개헌 이뤄내
선언적 명시·보충성 원리등 관련법률만 40여개 제정 


지방분권형 개헌을 통해 강력한 조직을 구축한 리옹은 2000년대 초반부터 지역을 대표할 경쟁거점산업을 육성하기 시작한다. 실크 못지 않게 제약산업이 유명했던 리옹은 '리옹바이오폴(Lyonbiopole)'이라는 혁신지구를 만들고 이 곳에 기업과 연구기관, 대학 등을 대거 유치했다.

그 결과 사노피 파스퇴르 등 세계적 위상을 갖춘 제약회사들이 리옹에 본사를 두고 활동을 하고 있다.

리옹은 지방분권 개헌 이후 성공적인 도시재생산업을 통해 자국민은 물론 외국인 관광객까지 대거 유치하고 있다. 리옹은 지난 1998년 자체적으로 개발기본계획을 수립, 민간 기업과 합작한 도심정비회사를 만든다.

실크 산업의 중심지였던 수변지구, 이른바 '콩플뤼앙스' 지역의 쇠퇴 현상을 더이상 방치할 수 없다는 판단에서였다. 성매매가 성행하던 슬럼가는 10여 년에 걸친 노력 끝에 유네스코가 정하는 창조도시에 선정될 정도로 눈부신 변화를 체험했다.

도시재생산업이 이처럼 성공적으로 진행될 수 있었던 데에는 지자체가 사업을 주도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손강(Saone)을 따라 50㎞에 걸쳐 산재한 14개의 코뮌이 이 사업에 주체로 참여했고, 그 결과 주택, 사무실, 공공용지 등이 편중 현상없이 골고루 분산배치됐다.

지자체가 힘을 모아 콩플뤼앙스에서 매년 연말 개최하는 '빛의 축제'는 프랑스의 대표 축제로 자리매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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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자체들의 협의체인 프랑스 얼베인(FRANCE URBAINE) 소속 회원들이 회의를 마치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메트로폴 리옹·프랑스 얼베인 제공

■프랑스 지방분권형 개헌의 역사

프랑스에서 지방분권의 바람이 불기 시작한 건 1982년부터다. 좌파인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이 집권하면서 지방분권형 개혁에 강한 드라이브를 걸었다. 1982년부터 2003년까지 20년간 정권에 관계없이 지방분권과 관련한 법률만 40여 개가 제정됐다.

하지만 중앙 정부가 지자체를 간접적으로 간섭하는 경우가 여전히 종종 있었고, 지방재정의 확충이 당초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선에 머물렀다. 이에 2003년 우파인 자크 시라크 대통령은 지방분권을 보다 확고히 하기 위해 개헌을 추진했다.

개정 헌법 1조는 '프랑스는 단일공화국으로서 그 조직이 지방분권화된다'고 선언적으로 명시한다. 개정헌법 72조는 '지자체는 그 수준에서 가장 적합하게 행사할 수 있는 모든 권한에 대한 결정할 자격을 가진다'며 보충성의 원리를 적용했다.

지자체가 모든 성질의 조세수입 전부 또는 일부를 징수할 수 있고, 과세표준과 세율까지 정할 수 있도록 지자체의 재정자주권을 헌법에 명시했다. '지자체가 스스로의 권한을 행사하기 위해 명령권을 가진다'고 규정하며 자치입법권을 부여하기도 했다.

■"지방분권 개헌 결실 맺으려면 지역 간 연대가 중요"

지방분권형 개헌은 중앙에 집중됐던 막대한 권한을 지자체로 분산시키는 것이다. 잘 사는 도시에게 지방분권형 개헌은 약이지만, 못 사는 도시에게는 독이라는 지엽적 비난이 일각에서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우리보다 먼저 지방분권형 개헌을 실천한 프랑스는 지역과 지역 간의 연대를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하고 있었다.

조세수입 징수등 재정 자주권에 자치 입법권까지 부여
'탄탄한 분권' 바탕 빈집·실업 넘치던 도시 '리옹' 부활
지자체 주도로 제약산업 활성화·도시재생 눈부신 변화
시민단체 주축 '지역연대협의체' 중소도시 균형발전 보완
전문가 "국익 위해 정권·정파 상관없이 지속 추진" 제언


프랑스 얼베인은 진정한 지방분권과 지방자치를 실현하기 위해 시민단체가 주축이 돼 지방정부들을 회원으로 하고 있는 협의체다. 리옹, 마르세유, 니스 등 대규모 도시는 물론이고 중·소도시까지 101개의 지자체가 프랑스 얼베인에 회원으로 등록돼 있다.

해당 지자체장, 지방의원 등 고위 공직자가 회원으로 참여하는 방식이며, 주민으로 따지면 프랑스 인구의 절반정도인 3천만명이 소속돼 있는 셈이다. 지자체가 걷은 주민세 중 일부를 협의체 운영비로 쓰고 있다.

프랑스 얼베인의 올리비아 랜댈 회장은 "지방분권형 개헌 이후 척박한 여건을 가진 지역의 중소도시들은 제대로 된 목소리를 내지 못하거나 광역도시권의 현안에서 소외될 위협에 처했다"며 "프랑스 얼베인이 만들어진 것은 크고 작은 도시들 간의 협력과 소통을 통해 진정한 지방분권이 실현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회의는 여러 지역에 걸친 공통된 안건이 있을 경우 수시로 열린다.700~800명의 지역의회 의원 및 관계자가 참석해 협의점을 도출할 때까지 며칠 밤을 새워가며 토론회가 진행된다.


■정파 가리지 않고 개헌 이뤄낸 프랑스 롤모델 삼아야

"프랑스는 정권 변화에 관계없이 지방분권을 추진했습니다. 국익을 위해서라면 우리 정당들도 정파 다툼이 아닌 화합하는 모습을 보여야할 때입니다."

경성대 배준구 교수는 좌우 정당을 가리지 않고 개헌을 이뤄낸 프랑스를 우리의 롤모델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배 교수는 지방분권형 개헌이 특정 정부의 성격이나 의지와 관련 없이 국민적 합의를 바탕으로 도출된 과제이니만큼 여야가 뜻을 하나로 모아야 한다고 밝혔다.

좌파 정권에서 지방분권형 개헌을 시도해 우파 정권에서 이를 마무리한 프랑스의 사례는 좋은 본보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배 교수는 또 개헌을 할 때 권한과 함께 재원의 이양도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자체의 권한은 돈과 직결된 문제기 때문이다. 2014년 기준으로 프랑스 지방정부의 자체세입비중은 72.1%인데 비해 국내 지자체의 자체세입비중은 42%로 OECD 30개 국가 중 22위에 머물렀다.

개헌에 '지방자치단체에 의한 실험법'을 명시해야 한다고도 강조했다. 지자체가 추진한 정책이 결과적으로 실패에 가까운 결과를 낳더라도 중앙 정부가 이에 대해 책임을 묻지 않도록 보호하는 것이다.

프랑스는 2003년 개헌을 추진할 때 이 법을 제정했다. 배 교수는"프랑스는 중앙 정부와 지자체가 동등한 계약 관계를 맺는 '계획계약제'를 실시하고 있어 지방에 대한 개입이나 통제가 적다"며 "지방분권형 개헌을 반드시 성사시켜서 진정한 지방자치가 이뤄져야 할 때"라고 덧붙였다.

프랑스 리옹/한신협 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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