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창]'프라하의 봄' 50주년, 지휘자 쿠벨리크

김영준

발행일 2018-01-03 제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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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준 인천본사 문화체육부 차장
지난달 28일에 개봉한 영화 '1987'(감독 장준환)이 신년 연휴 기간에 30%에 달하는 높은 예매율을 보이며 누적 관객 200만명을 넘어섰다. 다수의 관객에게 "지금까지 본 한국 영화 중 가장 울림이 큰 영화"라는 극찬을 받고 있다.

50년 전 동유럽의 체코슬로바키아에서도 민주자유화운동이 일어났다.

구 소련의 스탈린 체제를 신봉하던 체코슬로바키아 정부에 대항해 1960년대 지식층이 중심이 돼 민주자유화의 실현을 위한 조직적인 운동을 펴기 시작했으며, 이러한 활동의 결실로 1968년 4월 체코슬로바키아 공산당 총회에서 민주자유화 노선의 강령을 채택하게 된 것이다. 이를 '프라하의 봄'이라고 일컫는다. 비록 그해 8월 소련의 무력 진압으로 '프라하의 봄'은 좌절되지만, 이후 자유의 꽃이 피는데 밑거름이 된다. '프라하의 봄'은 세계적인 음악 축제의 명칭이기도 하다.

'프라하의 봄 음악제'는 해마다 체코 민족 음악의 창시자랄 수 있는 스메타나의 기일인 5월 12일에 시작돼 3주 동안 진행된다. 축제는 매년 프라하 시민회관(오베츠니 둠)에서 스메타나의 교향시 '나의 조국'으로 막을 올린다. 드보르자크와 야나체크 등 체코의 위대한 작곡가들의 작품이 연주되며 세계 정상급 단체와 연주자들도 대거 초청된다.

축제는 제2차 세계대전 직후인 1946년 시작됐다. 1946년은 체코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창단 50주년을 맞는 해였다. 축제는 당시 체코 필의 상임 지휘자였던 라파엘 쿠벨리크(1914~1996)에 의해 창설됐다. 하지만 쿠벨리크는 조국이 공산화된 1948년 영국으로 망명을 택한다.

오랜 기간 서방에서 망명 생활을 하다 소련이 붕괴하고 체코가 민주화된 1990년 조국으로 돌아온 쿠벨리크는 그해 열린 '프라하의 봄 축제' 개막식에서 '나의 조국'을 지휘했다. 당시 지휘자와 프라하 시민, 하벨 대통령 모두 눈물을 흘렸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프라하의 봄' 50주년인 올해 영화 '1987'과 함께 쿠벨리크가 지휘하는 '나의 조국'을 감상해 보면 어떨까. 쿠벨리크는 '나의 조국'을 대략 6차례 음반으로 남겼다. 연주의 질과 함께 비교적 구하기 쉬운 연주를 추천하면 보스턴 교향악단 음반(DG·1971년)과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 음반(오르페오·1984년)이다. 1990년대 체코 필과 남긴 실황 녹음은 연주 외적 가치도 함유한다.

/김영준 인천본사 문화체육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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