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광장]시간을 잃어버린 세계에서

채효정

발행일 2018-01-03 제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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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연시 되면 성과 달성했는지
대차대조표가 삶 성찰 대신한다
그러면서 우리는 때를 모르고
밤낮없이 무시간적 존재가 되어
자본의 시간속으로 빨려 들어가
어떻게 살 것인지 생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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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효정 정치학자·오늘의 교육 편집위원
새해에는 누구나 새해 계획을 세운다. 자연의 시간은 시작도 없고 끝도 없지만 그런 시간의 마디를 끊어서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인간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우리에겐 해가 있고 달이 있고 절기와 주기가 있다. '시간 앞에 선 존재'라는 말은 그런 의미다. 시간을 사유할 수 있는 존재란 뜻이고, 시간이라는 자기의식을 갖는 존재란 뜻이다. 살아있는 모든 존재들이 시간 속에서 살아가지만 인간만이 시간을 의식하며 시간 속에서 산다.

시간적 존재란 말의 의미는 곧 성찰적 존재란 뜻이기도 하다. 지난 한 해를 돌아보며 새로운 한 해를 계획하고, 지난 겨울을 생각해보면서 올 해 겨울을 비축한다. 앞날을 계획할 때 항상 우리는 지나온 길을 좌표로 삼는다. 지나온 시간 속에 쌓여있는 실패와 성공의 경험을 반성하고 정리하면서 말이다. 그런 점에서 지금까지 대부분 인류에게 가장 중요한 시간은 '과거'라는 시간이었다. 과거는 축적된 시간이며 다시 되돌아오는 시간이다. 그런데 오늘날은 이 과거라는 시간성을 급격하게 상실하고 있는 시대가 되었다. '혁신'에 의해서다. 혁신(innovation)이란 말은 '새로움 속으로(into-novus)', 새로움을 향해서 간다는 말이다. 새로움을 향해서 간다는 것은 낡은 것을 버리고 간다는 뜻이다. 그래서 그것은 늘 '창조적 파괴'이며 '파괴적 혁신'이다.

혁신에서 중요한 시간은 과거가 아니라 미래다. 새로운 것은 오직 미래에만 존재하기 때문이다. 미래를 예측하며 움직이라는 요구는 시간의 준거점이 과거에서 미래로 이동했음을 보여준다. 과거는 지식과 지혜의 보고가 아니라 단지 '낡은 것'이 되어버렸다. 대신 미래가 새로운 지식과 정보의 보고가 되었고, 누가 더 빨리 그 미래에 도달할 것이냐에 대한 경쟁은 과거를 돌아보지 않고 앞만 보며 달려가게 만들고 있다. 오늘날 미래는 마치 미지의 신세계와 같은 의미로 다가온다. 콜럼버스가 찾고자 했던 인도처럼. 15세기의 해상무역단이 찾고자 했던 신대륙이 자원의 보고, 금과 은이 쏟아지는 땅으로 여겨졌듯이 오늘날 '미래'라는 신대륙도 그러하다. 미래는 현재의 식민지다. 쌓이지도 돌아오지도 않는 시간, 미래는 끝없이 앞으로만 확장될 뿐이다.

내가 어릴 적에 세웠던 방학계획표는 보통 일일계획표였다. 하루를 24시간으로 나눈 원형의 시간판 속에 일어나는 시간, 밥먹는 시간, 공부하는 시간, 노는 시간, 잠자는 시간 등을 그림과 함께 그려 넣었다. 밥먹는 시간에는 모락모락 김이 나는 밥그릇을, 노는 시간에는 신나게 노는 내 모습을, 잠자는 시간에는 달님과 함께 꿈나라에서 곤히 잠든 모습을 그리곤 했다. 그 계획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건강하고 규칙적인 생활습관이었다. 제 때 자고, 제 때 일어나고, 제 때 밥을 먹고, 제 때 일하고, 제 때 노는 것. 진부한 것 같지만 생각해보면 그 시간상 속에는 가장 중요한 삶의 리듬에 대한 감각이 담겨있었다. 하루의 리듬은 달의 리듬으로 해의 리듬으로 다시 반복되었다. 할머니의 하루는 씨앗을 뿌리고 거두는 농사절기와 함께 한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을 의식하고 비오는 때와 눈 오는 때 해야 할 일을 안다.

하지만 지금은 아무도 그런 계획표를 세우지 않는다. 대신 정해진 시간 동안의 목표치를 설정한다. 미래는 읽어야할 책, 풀어야할 문제집, 벌어야할 돈, 가야할 곳, 만나야할 사람, 처리해야할 일 등등으로 가득 찬 '버킷리스트'가 되어 빈 양동이(bucket)를 채우듯이 각자의 할 일을 각자의 시간 속에 채워 넣는다. 미래로부터 역산해서 지금부터 해야 할 일의 양을 산출하고, 스스로 성과지표를 부과하고 달성해가는 것이 꿈이 되고 계획이 되었다. 마치 기업이 연간생산량과 수익률을 계획하듯이 개인도 자기의 연간생산량과 목표량을 설정한다. 연말연시가 되면 성과를 달성했는지에 대한 대차대조표가 삶에 대한 반성과 성찰을 대신한다. 그러면서 우리는 때를 모르는 인간, 밤도 낮도 없이 살아가는 무시간적 존재가 되어 표준화된 자본의 시간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새해 아침에, 시간을 잃어버린 세계를 생각한다. 어떤 시간을 살 것인가를 생각한다.

/채효정 정치학자·오늘의 교육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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