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국가가 인천에 진 빚

정진오

발행일 2018-01-04 제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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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들어진 간첩' 최종길 교수 투신자살 사건
'동일방직 똥물 투척사건' 중정의 조작 탄압
이제는 '평화도시'로 지정 지원하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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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오 인천본사 정치부장
6년제 인천중학교, 그러니까 지금의 제물포고등학교는 간첩 양성소로 취급받던 때가 있었다. 1970년대 초반이 그랬다. 당시엔 유신체제를 떠받치기 위한 간첩 조작 사건이 횡행했다. 남자를 여자로 바꾸는 것 말고는 모든 일을 할 수 있다던 중앙정보부가 주도했다. 대표적 사례가 서울대 법대 최종길 교수 사건이다. 최종길 교수는 독일에 유학한 민법 전공자였는데, 1973년 간첩으로 몰려 억울한 죽임을 당했다. 의문사 1호로 불렸다. 중정은 조사받던 중 간첩죄를 실토하고 7층에서 뛰어내려 자살했다고 발표했다. 그의 동생이 당시 중정 요원이었다. 언뜻 납득이 가지 않는다. 중정 요원의 가족이 간첩이라니. 인천중학교를 나왔다는 게 사건의 발단이었다.

인천중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최종길 교수는 서울대 법대에 진학했고, 독일 유학을 갔다. 최 교수의 인천중학 동기동창 중에 이재원이란 인물이 있었다. 유럽 거점 간첩 총책으로 중정이 몰던 사람이었다. 덕적도 출신인 그의 동생 이재문도 제물포고를 나왔는데 형제 간첩으로 중정은 가닥을 잡아가고 있었다. 파리 유학생 출신의 노봉유란 인물도 중정은 유럽 간첩단의 주요 조직책으로 그려넣고 있었다.

그 노봉유 역시 인천중학을 나왔다. 중정은 친동생이 중정 요원으로 있는데도 불구하고 최종길 교수가 인천중 출신이란 이유로 간첩으로 둔갑시켰다. 같은 학교 동창생들이어서 그럴듯한 그림이 나온다고 중정은 생각했다. 나중에 밝혀진 바로는 중정의 간첩 조작 사건이었고, 그 과정에서 고문에 의해 최 교수는 사망한 거였다.

작년에 나온 책 '만들어진 간첩'은 최종길 교수 사건을 다루고 있다. 최종길 교수의 동생이자 중정 요원이기도 했던 최종선은 사건 직후 정신병원에 입원했다. 동료 요원들의 감시를 피해 당시 상황을 기록할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 정신병원이라고 판단해서였다. 이 기록이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파헤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만들어진 간첩'에는 인천중학 동창생 간첩단 사건이 중정에 의해 조작되었다는 것 말고도 1970년대 후반 대한민국 노동운동사에 신화처럼 등장하는 '동일방직 똥물 투척 사건'도 중정의 공작에 의한 거였다는 사실도 폭로하고 있다. 동일방직 사건 당시 최 교수의 동생 최종선은 중정 경기도지부에 근무하고 있었다. 사무실이 바로 인천 남동구 간석동에 있었다. 최종선은 중정이 어떻게 동일방직 노동자들을 탄압했는지 그 현장에서 지켜봤던 그대로 진술하고 있다.

'만들어진 간첩'을 읽으면서 인천중학을 나온 그 '간첩'들이 간첩으로 몰리지 않고 정상적인 생활을 계속했더라면 어땠을까 생각해 봤다. 분명 우리 사회가 더 나아졌을 거라고 믿는다. 최종길 교수 사건과 동일방직 사건은 국가 기관에 의한 조작이고 탄압이었다. 이 두 사건 말고도 인천에 국가가 행한 수많은 잘못이 있다. 조봉암을 간첩으로 엮어 죽인 것이 대표적 사례다. 인천은 근대화란 미명 아래, 그리고 서울의 발전을 위해 온갖 혐오시설을 떠안아야 했다. 한반도에서 벌어진 전쟁의 역사를 보노라면 국가가 인천에 진 빚이 참으로 많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이제는 국가가 인천에 진 빚을 갚을 차례다. 분단의 현장 도시이자 유신의 억울한 피해 도시인 인천을 '평화 도시'로 지정하고 지원하면 어떨까.

/정진오 인천본사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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