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민호 칼럼]새해엔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

방민호

발행일 2018-01-09 제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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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이 상상하는 모든 슬픔
기쁨이 들어 있는 놀라운 삶
입신양명·돈 벌기도 중요하지만
지금은 풍요롭고도 절박한 시간
올해엔 미래 기약할 수 없는
나에게 '은총' 가득하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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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민호 문학평론가·서울대 국문과 교수
또 새로운 한해가 열렸다. 이 개띠 해도 벌써 열흘 가까이 흘러갔다. 이 새해에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 생각해 본다.

지난 몇 년 동안 텔레비전을 보지 않았다. 마지막 몇 년은 팟캐스트만 끼고 살았다. 세상에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는 직장에 배달되는 신문 헤드라인으로만 알았다. 정부 입맛에만 맞추는 방송 언론에 대한 혐오에서 비롯된 습관이었다.

좋은 점이 없지 않았다. 시장 논리가 겨냥하는 것, 대중들이 원하는 것을 아예 모르게 되다시피 했다. 무슨 새 물건이 나왔는지, 어떤 가수가 인기를 끄는지, 무슨 영화가 수입됐는지 알지 못했다. 아이들이 바다에서 무참하게 죽어가는 세상에서 아무렇지도 않은 척 벌어지는 일들을 알지 않아도 되었다.

정부가 바뀌고 방송사들이 달라져서일까. 이제 겨우 브라운관에 눈을 주게 된다. 아직도 드라마 같은 것은 무엇을 하고 있는지도 알지 못한다. 그래도 잠깐씩이라도 앉아 뉴스 화면도 본다. 내가 원하는 세상만이 아닌, 뭇사람들의 세상에도 관심을 '표명'해 본다. 그러다 알게 된 것 하나가 교육방송에서 하는 의학 관련 논픽션 프로다. 아픈 삶을 그리는 것으로 그중 많은 사람들이 기약 없는 투병 생활을 하기도 한다. 끝내 삶의 마지막 국면에 다다르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있다. 새로 시작한지 그리 오래된 것 같지 않다.

이상한 일은, 사람들이 병에 걸려 신음하는 상황을 지켜보는 일이 위안을 준다는 사실이다. 왜 그럴까? 자신은 아직 살아 있다는 안도감 때문일까? 남의 불행을 보고 쾌감을 느끼는 잔인한 심리가 작동하기 때문일까? 그런 것도 없지 않을 것이다. 인간은 확실히 이기적이다 못해 철면피한 요소를 가진 존재다.

그것만은 아닐 것이다. 사람들의 고통과 불행 속으로 들어가는 심리에는 다른 선한 면도 작용할 것이다. 사람들은 더 깊이 들여다보면 자기 아닌 존재를 향한 이해와 동정의 마음을 가진 존재인 것이다. 텔레비전 화면 속의 사람들 때문에 눈물을 흘릴 때 우리에게는 자기도 모르게 선량한 심성이 작동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타자' 이해와 동정의 더 깊은 바닥에는 우리 자신도 그들과 다를 바 없는 운명을 타고난 존재라는, 본능적 감각이 작동하고 있는 것도 같다. 그것을 가리켜 고대 그리스의 한 비극은 "죽어야 할 운명을 타고난 존재"라고 정의했다.

인간은 이 땅에 태어나 삶이라는 것을 만들어 가다 어느 지점에 다다르면 그것을 끝내야 하는 한시적 존재다. 그로부터 사람들의 삶을 좌우하는 모든 문제가 생겨났고 그 가장 중요한 현상이 바로 종교다.

사람들은 종교를 믿는다. 그 이유는 영원히 살기 위해서다. 지상에서 불멸할 수 없는 사람들이 천상에서의 불멸을 꿈꾸는 것. 죽어 육신을 땅에 묻어야 할 사람들이 영혼만은 살아 영원에 귀속될 것이라 믿는 것. 이것을 가리켜 종교적 염원이라 할 것이다. 세상에는 불멸을 지향하는 다양한 형태의 종교들이 있고, 그 어느 것에나 신심이 깊은 사람들은 그 속에서의 신이, 아니, 믿음이 그로 하여금 불멸에 들게 하리라 믿는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 깊은 믿음 속에서도 비록 순간적일지라도 두려움과 슬픔에 잠길 때가 있다. 이를 가리켜 의심이라고, 회의라고 할 수도 있다. 그렇더라도 이것은 이 땅과 대지에 결부된 삶의 기쁨과 즐거움과 행복이 죽어서는, 다시 말해 영혼의 불멸과 영원성 속에서는 다시 주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에 대한, 어떤 실물적 감각에서 오는 것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의학 프로그램에 나오는 고통스러운 사람들의 삶 속에서 사람들은 자신들의 삶의 본질을 느끼고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 건강하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해도 어느 일정한 시점이 되면 그 삶에 죽음이 깃들기 마련이다. 뜻하지 않게 암이나 희귀한 병에 걸려 고통 받는 사람들은 바로 우리들 자신의 삶의 말로이기도 한 것이다.

독일 철학자 니체는 이러한 필멸의 운명을 종교에 바치는 것에 반대하여 그 삶을 그 필멸 때문에 사랑할 것을 가르쳤다. 모든 종교도 삶을 사랑하라 하지만 그는 그것이 필멸하는 삶에 대한 근본적인 혐오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느꼈다. 만약 이 지상에서의 삶의 모든 것이 신의 뜻에 바쳐지는 것이라면 그것은 삶 자체에 대한 혐오를 의미하는지도 알 수 없기는 하다.

그러나 새해 벽두를 논쟁으로 끌어가지는 않도록 하자. 여기서 중요한 것은 우리들의 이 지상에서의 삶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이 삶 속에 우리들이 상상하는 모든 슬픔과 기쁨이 들어 있다. 그 놀라운 복합물이 바로 우리들의 삶이라는 것이다.

정치도, 문화도, 국가 대사도, 입신양명도, 돈을 버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그보다 우리는 그처럼 풍요롭고도 절박한 삶을, 삶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올해에는 이 사실을 하루도 잊지 않기로 한다. 그리하여 미래를 기약할 수 없는 '나'의 삶이 그 삶의 '은총'으로 가득하기를 기원해 본다.

/방민호 문학평론가·서울대 국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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