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신년특집

[한신협 공동 신년기획 '분권개헌 내 삶 바꾼다']②스위스 헌법의 힘

2천여개 지방정부 '잘살기 경쟁'이 국가발전 '원동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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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체른 시내 입구를 관광버스가 가로 막고 있는 모습. 뿐만아니라 시민들은 관광버스가 도시 공기의 질을 악화시킨다며 불만을 표했다. /한신협 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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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성옥희기자 okie@kyeongin.com/아이클릭아트
19세기 굶던 나라가 150년만에 세계 최고 '번영'
1848년 강력한 '자치제도 보장' 헌법 제정 계기
종교·언어등 다른 지역별 '맞춤해법' 갈등 풀어

26개 칸톤 2324개 코뮌 입법·행정·조세권 가져
'낮은 세금 높은 공공서비스' 끊임없는 정책 대결
관광객 폭증 교통문제 관련세 만들어 바로 해결
주민총회로 재정 점검 동계올림픽 유치 포기도

"고도의 자치권·권력공유 개헌 벤치마킹" 지적




'국가경쟁력 세계 1위, 1인당 국민소득 8만달러, 빈곤율 영국·독일·미국의 절반인 7.6%. 이처럼 화려해 보이는 온갖 수식어를 모두 차지한 스위스는 19세기까지만 하더라도 굶어 죽는 이들이 속출하는 나라였다. 남성들이 다른 나라의 용병이 돼 식구들을 먹여 살려야 했을 정도다.

불과 150년 만에 세계 최고 번영을 이룬 스위스의 경쟁력은 강력한 지방분권을 보장한 헌법에 있다. 스위스는 1848년 하나의 통일된 국가가 되도록 중앙정부를 두되 각 주의 자치제도를 살려 자기 일을 스스로 해결할 권리를 가진 헌법을 제정했다.

이는 스위스 지역의 강한 지방분권 전통, 보수적인 구교지역과 진보적인 신교지역의 갈등을 봉합하기 위한 해결책으로 탄생한 것이다. 언어와 종족, 종교집단이 모두 달랐던 스위스에 분권을 강조한 헌법은 갈등 봉합을 위한 유일한 대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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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겐스베르크 주민총회에 참석한 시민들과 주민 대표. 이날 주민총회에서는 '방과 후 음악학교 통합' 안건을 두고 1시간 가량 주민들이 치열한 토론을 벌였다. /한신협 공동취재단

스위스 연방헌법 제3조, 제31조, 제47조, 제51조 등을 통해 칸톤(우리나라 도·광역시에 해당하는 스위스 행정단위)은 독자적인 법인격과 자치권을 보장받고 있다. 26개로 나누어진 칸톤과 2천324개의 코뮌(칸톤보다 한 단계 아래의 행정단위)은 행정, 입법은 물론 조세권까지 갖는다.

이렇다 보니 스위스의 26개 칸톤은 서로서로 '낮은 세금·높은 공공서비스'를 주장하며 유럽 내 기업을 유치하기 위해 경쟁한다. 또 마을의 갈등을 해결하고, 세금을 얼마나 거둘지 결정하고, 법을 만드는 모든 과정이 주민 총회를 통한 주민들의 찬반 투표로 이뤄진다.

주민들은 세금을 낭비하는 정책 통과를 저지하고 매해 세금을 낮춰 효율적으로 쓰는 방안을 검토한다. 스위스 경제학자 르네 프라이 교수는 "스위스는 2천300여 개의 지방정부가 서로 더 잘 살기 위해 끊임없이 경쟁하니 잘 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주민 동의 없으면 올림픽도 포기

한국은 1국가 1조세 주의다. 국가에서 세금을 걷어 지방에 내리꽂는 식이다. 그러나 헌법에 칸톤의 자치재정권(수입 자치·지출 자치·예산 자치)이 명시된 스위스는 코뮌과 칸톤이 스스로 세금을 거둬 자신의 살림을 운용한다.

1년에 3~4회가량 열리는 주민 총회에서는 3만 스위스프랑(3천270만원) 이상의 사업에 주민들의 동의를 구하는 재정 주민 투표가 이루어진다. 재정 상황에 따라 자신이 내는 세금이 달라지다 보니 주민들은 지자체 살림을 꼼꼼히 점검할 수밖에 없다.

한해에 157억원의 경기장 유지비를 남긴 인천 아시안게임, 향후 활용 계획이 불투명한 평창올림픽 경기장 등 한국의 '유치 우선' 정책은 스위스에선 보기 힘들다.

2002년 9월 스위스 베른 시는 2010년 동계 올림픽 개최지 선정을 앞두고 있었다. 베른 시는 대회 유치를 위해 2천200만 스위스프랑(239억8천700만원)이 필요하다는 계획안을 들고 주민투표를 통해 주민 동의를 얻어야했다.

2002년 9월 22일 주민투표 결과 올림픽 경기장 건설사업과 대회준비 사업은 77.6%와 78.%의 압도적 다수로 거부됐다. 베른 시는 이미 국제 올림픽 위원회(IOC)에 10만 달러를 납부한 상태였지만 주민들의 뜻에 따라 대회 신청을 철회했다.

당시 베른과 함께 경쟁한 뒤 재수 끝에 2018년 동계올림픽 개최지로 선정된 평창의 경우는 어떨까. 당시 중앙정부는 동계올림픽 유치를 한다면 강원도에 3조6천억원의 자금을 지원하겠다는 보증을 약속했다.

이렇듯 천문학적인 돈을 투입했지만 이번 올림픽이 끝나고 나면 경기장 유지비로만 연간 101억원의 적자가 날 것으로 예상된다. 동계올림픽 유치경쟁 속에 주민은 배제됐고 중앙정부의 '하사'만을 바라보는 지방정부의 태도는 답습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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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해 12월 14일 시자크 주민총회에서 주민들이 안건에 대해 찬성 의견을 표시하고 있다. /한신협 공동취재단

■갈등 터지기 전에 '세금·정책' 맞춤해법

스위스 헌법 제3조에 명시된 칸톤 주권에 따라 이뤄지는 고도의 자치는 지역이 당면한 갈등을 가장 빠르고 쉽게 해결할 수 있게끔 해준다.

2013년에 '꽃보다 할배'의 배경이 되며 관광객들이 폭증하고 있는 스위스 루체른 시. 인구 8만명의 조용한 동네였던 루체른 시는 최근 한국인과 중국인 관광객이 폭증하며 마을 주민들이 불편을 호소하고 있다.

특히 대형 관광버스가 하루에도 수십여대 오가며 주차난과 대기오염을 가중시키고 어린이들의 안전까지 위협하면서 주민들의 불만이 고조된 것이다.

이에 대해 줄스 구트(Jules Gut) 루체른시 시의원(녹색자유당)은 "시민들의 불만이 날로 커져 바르셀로나처럼 관광객 거부 운동이 벌어질 정도였으나 최근 주민총회를 통해 '관광세 도입'으로 문제를 해결했다"면서 "여행사와 대형 버스에 일정 세금을 부과하고 그 세금으로 관광버스 전용 주차장을 지을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구트 의원은 "자체적으로 조세권이 없다면 해결책을 찾기 힘들었을 것"이라며 "우리는 다른 문제들 또한 세금을 부과하고 그 세수를 갈등해결에 사용하는 방식으로 쉽고 빠르게 해결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역사정에 맞지 않은 연방정부 정책도 지역에 맞게 소화 가능하다. 중앙정부가 최근 주택에 태양광 발전 시설을 설치하면 보조금을 주는 정책을 폈지만 루체른 시는 100년 이상 된 고택이 지역주택의 80% 가량 차지해 새로 발전시설을 설치하기가 힘들었다.

이에 루체른 시는 오래된 고택을 방수·방풍·조명 등을 수리해 '에너지를 덜 쓰는 주택'으로 개조할 경우 지원을 해주는 방식으로 지역의 사정에 맞는 에너지 정책을 수립했고, 중앙정부에 이를 통보했다. 지역이 자신의 상황에 맞게 갈등의 해결책을 찾고 새로운 정책까지 제시하기에 이른 것이다.

대전대학교 안성호(행정학과) 교수는 "한국이 재도약하기 위해선 스위스처럼 고도의 자치권을 보장하는 개헌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지방분권개헌국민행동 공동대표인 안 교수에게 다가올 개헌의 방향에 대해 물었다.

안 교수는 "우리나라의 헌법 개정 과정은 지배하는 권력이 어떻게 바뀌는지에만 중점을 두었다"면서 "헌법이란 더불어 사는 인간들의 관계를 설정해 주는 것이므로 헌법에는 타자와 동료관계를 형성하는 공유권력이 들어가야 하고 시민 주권이 실현되는 진정한 헌법을 만들려면 이 공유권력에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안 교수는 다가오는 개헌이 피라미드식으로 정치권력을 재배치하는 것이 아니라 ▲다수와 소수의 권력 공유 ▲중앙과 지방의 권력 공유 ▲엘리트와 시민의 권력 공유가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안 교수는 "기존 1987 체제 헌법의 문제점이 승자독식 다수제와 과도한 중앙집권"이라고 덧붙였다.

안 교수는 "국가사무와 지방사무가 7 대 3, 국세와 지방세가 8 대 2에 머물며 풀뿌리 민주주의가 제대로 실현되지 못한 점을 개선하기 위해 지방입법권과 지방과세권이 보장돼야 한다"고 말했다.

개헌을 통해 스위스처럼 지방의회가 법률을 제정해 스스로의 권리와 의무를 정하고 지방세의 부과와 벌칙도 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안 교수는 "이렇게 되면 지방정부는 중앙정부에 종속된 기관이 아니라 시민의 행복과 번영을 선도하게 되며 지자체 간 정책경쟁도 치열해져 시민 공화주의를 북돋울 수 있다"고 말했다.

스위스/한신협 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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