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의 고전을 들여다보면 자연 현상에 빗대어 인생의 지혜를 이야기한 내용이 많다. 서대승이란 이가 편집했다고 전해지는 명리학 서적인 연해자평에 보면 수화목금토라는 오행이 상생상극으로 상호작용하는 양상을 자연현상에 빗대어 말하였다. 그 중에 둑은 흐르는 물을 막을 수 있지만(土能克水) 물의 흐름이 거세면 거꾸로 둑이 무너진다(水多土流)는 표현이 있다. 기본적으로 흙더미가 뭉친 둑은 흐르는 물을 막는 능력과 기능을 한다. 그러나 현실에서도 볼 수 있듯이 홍수가 범람하는 시절에는 오히려 댐의 문을 열어둔다. 이는 댐이 물을 막는 능력과 기능을 상실했기 때문이 아니다. 수압의 정도가 지나칠 때는 오히려 물길을 터주어야 댐도 무너지지 않고 물도 자기 길로 흘러서 빠져나간다.
고전에서 물의 흐름은 도도하게 흐르는 시대적 흐름을 뜻하기도 한다. 그런데 최근의 시대흐름은 제대로 읽고 대처하려하면 이미 늦을 정도로 너무 빠르다. 빠르긴 해도 그 근저에서 작동하는 것은 디지털이다. 국가의 정책을 만들고 집행하는 입장에서 보면 국민들의 수요와 지향이 바로 물의 흐름이다. 이 물의 흐름이 거센데 억지로 막으려하면 오히려 둑이 무너진다. 도도한 흐름이 거셀 때는 막으려고만 하지 말고 길을 내서 잘 터주어야 한다. 옛날 우임금의 치수사업도 이런 원리를 깨달았기에 성공적이었다고 전해진다. 어떤 정책이든 먼저 길을 터주고 나서 규제를 생각해야 한다.
/철산(哲山) 최정준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미래예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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