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공감]사재 털어 '세터상' 만드는 프로배구 신영철 한국전력 前 감독

"후배들에 희망 주는 일, 아마추어 배구계 힘이 됐으면"

김종화 기자

발행일 2018-01-10 제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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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구 신영철7
'명세터·명감독' 출신인 신영철 전 수원 한국전력 감독이 굴곡진 40여년의 배구 인생을 담아 세터상을 만들었다. 신 전 감독은 '발전하는 배구, 팬들과 함께하는 배구'를 위한 첫 걸음이며 2018년 시작과 함께 배구계에 '나눔'과 '관심'으로 후배양성에 온 힘을 쏟고 있다. /강승호기자 kangsh@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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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한국전력 신영철 전 감독은 배구팬들에게 80년대 한국 남자배구 최고의 세터로 평가 받는다.

지도자로서도 인천 대한항공의 2010~2011 V리그 정규리그 우승을 이끌어 명장 반열에 올라섰다. 대한항공이 정규리그 우승을 차지한 건 2010~2011시즌이 처음이다. 또 만년 하위권팀으로 인식 되어 있는 한국전력도 4시즌 동안 사령탑을 맡아 정규리그 3위 2번 KOVO컵 정상 1번 등을 일궈내며 신흥 강호 대열로 이끌었다.

모교인 경기대에서 배구 트레이닝에 관한 박사 학위를 받으며 공부하는 지도자로도 알려져 있다. 명세터, 명장이라는 호칭으로 불리는 신 감독에게 별명이 하나 더 추가될 것 같다.

# 후배들에게 기회를 주는 선배가 되고 싶은 신영철

신 전 감독은 2018년 시작과 함께 한국 배구계와 스포츠계에 화두를 던졌다. 그가 배구계와 스포츠계에 던진 화두는 '나눔'과 '관심'이다.

그는 지난해 세터상을 만들기 위해 사재를 내놓기로 결심하고 대한배구협회 산하 단체인 한국중고배구연맹(이하 중고연맹)과 협의를 마쳤다.

신 전 감독은 "이름을 알리기 위해 그런건 아닌데, 관심을 가져 주시니 너무 감사하다"며 손사래를 쳤다.

사실 신 전 감독이 세터상을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한건 대한항공의 사령탑을 맡고 정규리그 정상에 오른 2011년 봄이다.

당시 여러가지 상황상 생각을 실천으로 옮기지 못했고, 이후 한국전력 감독 시절에도 꾸준히 준비하고 있었다.

그리고 지난해 한국전력 감독에서 물러난 후 생각을 실천으로 옮기기로 했다.

신 전 감독은 "배구 선배로서 유망주들에게 선물을 해 주고 싶었다. 프로선수를 꿈꾸는 유망주들에게 동기 부여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 중고연맹과 논의를 거쳐 올해 대통령배 대회부터 세터상을 만들게 됐다. 상금은 중고연맹과 협의해 금액을 정하려 한다"고 전했다.

이어 신 전 감독은 "제가 만든 세터상은 남고생들에게 주는 상이다. 제가 이 상을 운영하다 보면 다른분들도 여고생들을 위한 상을 만들어 주실거라고 생각한다. 많은 분들이 아마추어 유망주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일에 나서 주실거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배구인이 사재를 털어서 상을 만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다른 종목을 봐도 흔치 않은 일이다.

신 전 감독은 "제가 선수로서 받았던 팬들의 사랑, 그리고 지도자로서 받았던 관심과 사랑을 후배들에게 돌리기 위한 방법을 고민하다 세터상을 만들게 됐다. 열악해져 가는 아마추어 배구계에 작지만 힘이 되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이어 신 전 감독은 "가족들 모두 세터상을 만든거에 대해 기뻐해 주고 있다. 아이들 제가 죽으면 자기들이 상을 이어가겠다는 말을 한다"고 귀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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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굴곡 많은 선수시절과 지도자 시절

신 전 감독이 배구를 시작한 건 고향인 울진에서다.

울진 후포동부초등학교 재학시절 남들보다 키가 커 배구를 시작하게 됐고 각종 지역 대회에서 두각을 나타내 대구 수성초등학교로 스카우트돼 전학가게 됐다.

배구를 위해 대구 유학을 시작한 신 전 감독은 각종 전국대회에서 우승과 준우승을 독식하며 경기대에 입학했다.

순탄할거 같던 신 전감독의 배구 인생은 대학 진학부터 삐끄덕됐다. 신 전 감독은 "경북사대부고에서 함께 운동하던 동기들과 함께 대학에 진학하고 싶었다. 특히 동기인 노진수 전 LG화재(현 KB손해보험) 감독과 함께 운동하기로 하고 성균관대 진학을 원했지만 여러가지 이유로 경기대에 가게 됐다"고 전했다.

경기대에서도 신 전 감독은 한국 배구를 이끌 세터 자원으로 인정 받았다.

이로인해 경기대 4학년 시절 금성과 현대자동차 등 4개팀이 스카우트전에 뛰어들었다.

신 전 감독의 몸값이 폭등하자 이들 4개팀이 영입을 하지 않기로 합의해 배구선수로서의 삶을 위해 한국전력 유니폼을 입었다.

그는 "일부팀에서는 강남에 아파트 3~4채 살 수 있는 돈을 제시하기도 했다. 하지만 돈 보다는 함께 뛰고 싶은 선수와 함께할 수 있게 해 달라고 했다"며 "이런 문제들이 내 발목을 잡은거 같다.그러나 한전에 입단해서도 좋은 기회가 많았다"고 전했다.

비록 약체 한전 유니폼을 입었지만 세터로서의 기량은 줄지 않았고 국가대표로 발탁돼 활약했다.

또 1996년에는 신치용 감독을 따라 삼성화재로 옮겨 플레잉 코치로 활약한 후 은퇴했다.

대한항공과 한전에서 좋은 성적을 냈던 신 전 감독은 감독으로 처음 맡았던 구미 LIG손해보험(현 KB손해보험)에서는 선수 폭행으로 6개월간 자격 정지 처분을 받았다.

신 전 감독은 "사실이다. 당시 선수단에 경각심을 주기 위해 제가 감독으로 가면서 영입한 선수 2명에게 각각 엉덩이 1대씩 때렸다. 때린건 사실이지만 본질은 그게 아니었다"고 말했다.

이어 신 전 감독은 "구단과의 마찰이 있어서 더 크게 부각됐던거 같다"며 "선수들에게 열정적인 플레이를 요구한다. 프로선수들이고, 성인이기에 자신의 플레이에 책임을 지게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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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각하는 지도자, 팬의 사랑을 잊지 않는 선수

신 전 감독은 "중고교 시절 선수 치고는 작은 키로 고민을 했다. 하지만 '하면 된다'라는 문구를 써 놓고 계속 노력했다. 안되면 될때까지 노력했다. 경기에서 안좋은 상황이 나오면 동료들에게 책임을 넘기기 보다는 나 스스로를 돌아 보고 개선해 나가려고 했다"고 전했다.

그는 "지도자 생활을 하면서는 '열정', '신뢰', '책임감', '역지사지'를 항상 마음속에 새기며 생활하고 있다. 상대방의 입장에서도 생각해 보고, 선수들과 신뢰를 쌓으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코트에서 팬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열정적인 경기를 보여 주려고 한다"고 말했다.

배구를 위해 초등학생 시절부터 객지 생활을 했던 신 전 감독에게 운동 외에 또다른 관심은 책이었다.

특히 신 전 감독은 중학교 재학시절 우연히 읽게 된 '철마는 달리고 싶다'라는 책을 보며 "나한테 철마는 다리다. 남들 보다 잘하려면 열심히 러닝을 해야 한다"고 결심하게 됐고 선수 시절 단체 운동을 시작하기 전 개인 훈련으로 러닝을 꾸준히 했다.

신 전 감독은 "배구를 하면서 후회하지 않는 선수 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자기 관리가 중요하다. 자기계발에도 게을러서는 안된다"며 "선수나 지도자나 운동을 하면서 자기계발을 위해 공부를 해야 한다.내가 왜 이 운동을 하는지, 나에게 필요한게 무엇인지 고민하고 공부를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팬이 없는 스포츠는 의미가 없다. 코트 안에서 멋진 경기를 보여줄때 팬들이 박수를 보낸다"며 "항상 발전하는 배구, 팬들과 함께하는 배구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글/김종화기자 jhkim@kyeongin.com 사진/강승호기자 kangsh@kyeongin.com

■신영철 감독은?

▲경북 울진 출생(1964년)

▲경북대학교 사범대학 부속고등학교 

▲경기대학교(박사) 

▲1988~1996 한국전력 선수 

▲1996~1999 삼성화재 선수 

▲1999~2004 삼성화재 코치 

▲2004.02 ~ 2007.03 구미 LIG 손해보험 그레이터스 감독 

▲2009.12 ~ 2010.02 인천 대한항공 점보스 감독대행 

▲2010.02 ~ 2013.01 인천 대한항공 점보스 감독 

▲2013.04 ~ 2017.3 수원 한국전력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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